바다는 잘 있습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503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

사람이 죽으면
선인장이 하나 생겨나요

그 선인장이 죽으면
사람 하나 태어나지요

원래 선인장은 널따란 이파리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것이 가시가 되었지요
찌르려는지 막으려는지
선인장은 가시를 내밀고 사람만큼을 살지요

아픈 데가 있다고 하면
그 자리에 손을 올리는 성자도 아니면서
세상 모든 가시들은 스며서 사람을 아프게 하지요

할 일이 있겠으나 할 일을 하지 못한 선인장처럼
사람은 죽어서 무엇이 될지를 생각하지요

사람은 태어나 선인장으로 살지요
실패하지 않으려 가시가 되지요

사람은 태어나 선인장으로 죽지요
그리하여 사막은 자꾸 넓어지지요

사랑이 끝나면 산 하나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퍼다 나른 크기의 산 하나 생겨난다.

산 하나를 다 파내거나
산 하나를 쓰다 버리는 것
사랑이라 한다


- <사랑의 출처> 중에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