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탐구 생활 - ‘진짜 취향’으로 가득한 나의 우주 만들기 프로젝트
에린남 지음 / 좋은생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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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이 확실한 사람이 매력적이다’는 이야기가 통용되고, 취향으로 돈을 벌거나 콘텐츠를 큐레이션하는 일명 ‘취향 존중의 시대’. 그러나 의외로 “내 취향을 모르겠어!” 혹은 “내가 좋아하는 건 보잘것없어서 남들에게 보여 주기 부끄러워!”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이들을 위해, 인기 라이프 스타일 유튜버 에린남이 물욕보다 매력적인 ‘진짜 취향’을 찾고, 좋아하는 것으로 자신의 우주를 채워가는 기쁨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뜨개질이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뜨개질은 실수나 계획 변경에도 너그럽다. 잘못됐다 싶으면 언제든 풀어 다시 만들 수 있다. 새로운 쓸모를 가진 물건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수정할 기회가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는 겪어 본 사람만이 안다. 쓸모를 고민하고 움직이는 사이 자신에 대한 믿음이 견고해진다. 이 정도까지 해냈으니, 다시 하면 더 잘할 수 있다는 기대도 생긴다. p27

집에 물건을 들일 때마다 신중하게 고민하지만, 막상 사고 나면 기대와 다른 경우가 많다. 기대에 못 미치는 전자 제품, 예상과 다른 느낌의 가구 등 손이 가지 않는 물건도 있다. 그때마다 물건을 버리고 새로 살 수는 없다. 더 나은 물건을 기대하며 바꾼다 해도 만족스럽다는 보장도 없다. 오랜 시간 고민한 물건이라도 마음에 꼭 든 적은 별로 없었다. 어쩌면 우리를 만족시킬 완벽한 물건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 사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나는 사지 않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아쉬운 마음이 든다면, 대체품을 찾는 대신 내 손으로 취향에 맞게 바꾸고 싶다. 삐뚤삐뚤 허술한 손길이라도 괜찮다는 관대한 마음으로. p41

내 크리스마스는 10월 말부터 시작된다(시기가 점점 빨라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사실 언제 시작하든 상관없다. 빨리 시작할수록 크리스마스를 길게 보낼 수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정한 순간부터 매일 캐럴을 듣는다. 틈날 때마다 산타클로스가 주인공이거나 크리스마스 연휴가 배경인 책과 영화를 찾아서 본다. 빨간 옷을 입은 산타와 그를 돕는 엘프, 루돌프, 썰매, 그리고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까지! 크리스마스가 아니었다면 존재하지 않알을 것들을 최대한 즐기려 한다.

하지만 단 하나, 하지 않는 일이 있다. 집 안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는 작은 조명 하나, 리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상태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지 올해로 3년째다. 집을 꾸며 놓으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욱 흠뻑 느낄 수 있지만, 잘 꾸며진 길거리 장식에 만족하며 기뻐하기로 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p154~155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물건과 좋아하는 물건만 가지고 가볍게 살고 싶다’는

저자가 직접 쓰고 그린

'진짜 취향'으로 가득한 나의 우주 만들기 프로젝트

에린남의 '취향 탐구 생활'을 읽고 있다.

아픈만큼 성숙한다고 하지.

이번에 아프며 성숙은 잘 모르겠고

내일 죽어도 괜찮을 정도의 주변정리는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책을 읽는 동안

아마 이번 정리는 예전보단 훨씬 과감하고(?) 적극적일꺼란 다짐...

취향(趣向) :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방향

그림, 태블릿그림, 기타, 피아노, 칼림바, 사진, 커피 바리스타 등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았었는데 막상 아프니 다 내려놓게 되었다.

건강이 회복되면 요가를 배워보면 어떨까 싶긴한데 운동과는 정말 안 친해서

안가게 될 확률이 솔직히 더 높다. ^^;

나만의 취향 리스트

☆ 내가 좋아하는 단어 : LUCKY

☆ 카페에 가면 항상 마시는 것 : 아메리카노

☆ 가장 좋아하는 색 : BLUE

☆ 슬플 때 보게 되는 영화 : X

☆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을 때 하는 일 : 코믹한 영화보기

☆ 요즘 빠져 있는 음악 : 클래식과 친해지는 중

☆ 가장 좋아하는 산책코스 : 시민의 강

☆ 나만의 크리스마스 의식 : 러브 액츄얼리를 시작으로 크리스마스 영화보기

☆ 생일에 꼭 먹는 음식 : 스테이크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 : 카페 구석자리

내 취향을 알아볼겸 저자가 제시한 나의 취향 리스트를 채워보았다.

내 벨소리 곡명이기도 한 'LUCKY'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색은 우울을 의미하기도 하는 'BLUE'

카페에서 항상 마시던 건 무조건 아메리카노였는데

커피는 피하라고 하셔서 당분간은 따뜻한 티를 마셔야 할 듯...ㅠ.ㅠ

슬플땐 영화보단 음악을 듣고, 아무 생각없이 웃고 싶을 때 코믹한 영화를 본다.

지난달 모그모임때 베아트리체님 선곡해 주신 곡들이 좋아진이후

요즘 클래식 음악과 친해지는 중이다.

산책은 시민의강을 지나 호수공원까지 한바퀴 돌고 돌아오는 산책코스를 좋아한다.

나만의 크리스마스 의식은 러브 액츄얼리를 시작으로 크리스마스 영화보기...

생일에 꼭 먹는 아니 먹고 싶은 음식은 아웃백 스테이크

하지만 김씨가 사온 검정 비닐 봉다리속 한우를 먹을 때가 더 많다. ^^;

내가 좋아하는 장소는 조용히 책읽기 좋은 카페 구석자리...

오롯이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좋아하는 일로 행복해 지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일단은 건강부터 찾자. ㅠ.ㅠ

이 책은 내 우주를 풍족하게 만들어 주는 취향에 관한 이야기다.

미리 말해 두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대부분 사소하고, 어떤 건 하찮기까지 하다.

그러나 내 취향을 더 멋지게 만들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멋없고 싱겁고 귀여운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나와 꼭 닮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욱 나답기를 바란다.

그럴싸해 보이지 않아도,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지는 ‘진짜 취향’으로만 내 우주를 가득 채우고 싶다!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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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죽음 - 살아 숨 쉬는 현재를 위한 생각의 전환
헨리 마시 지음, 김미선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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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의사로 알려진 남자가 있다. 까다롭고 어렵다는 뇌수술을 하며 30년이 넘는 의사 생활을 해온 헨리 마시. 그가 접한 삶과 죽음의 경계, 인생의 깨달음을 글로 써낸 이야기가 《참 괜찮은 죽음》에 있다.

출간 즉시 영국의 장기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선정한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으며 영국에서 가장 독자들이 신뢰하는 문학상인 PEN Ackerley Prize를 수상할 만큼 글이 아름답고 빼어나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뇌 전문 외과 의사의 삶은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고 깊은 보람도 느낄 수 있지만, 거기에는 합당한 대가가 따른다. 외과 의사는 때로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를 한다.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무시무시한 결과와 함께 사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런가 하면 대상을 객관적으로 보면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는 법 또한 배워야 한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초연함과 연민 사이에서, 그리고 희망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외과 의사의 시도와 실패에 대한 것이다. 뇌를 수술하는 외과 의사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려고 내 실패담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이 책으로 의사와 환자가 만날 때 서로가 느끼는 인간적 어려움을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P9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일이 잘못되었을 때 실수를 숨기거나 부인하지 않으면 의외의 결과가 기다리는 잠깐의 행복을 맛볼 수 있다. 환자와 그의 가족이 진심으로 괴로워하는 의사의 마음을 알아준다면 그리고 정말 운이 좋다면, 그 의사는 용서라는 귀한 선물을 받을지도 모른다.

대런의 어머니는 그날 이후 항의를 계속하지 않았다.그녀가 온전히 이 일을 내려놓았다면 다행이지만 반대로 마음 한구석에 영원히 어두운 그림자를 지닌 채 살까봐 나는 두렵다. 그녀가 아들을 돌본 의사들을 요서할 마음이 없어, 아들이 내질렀던 단말마의 외침에 영원히 시달리며 살게 될까 봐. P250

신경과학에 따르면 우리에게 영혼이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은 신경세포가 전기 화학적으로 지껄인는 것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아, 느낌과 생각, 타인에 대한 사랑, 희밍과 야망, 미움과 공포 모두 우리의 뇌가 죽으면 같이 죽는다. 많은 사람들이 영혼을 대하는 이러한 관점에 분개한다는 걸 잘 안다. 우리에게서 사후의 삶에 대한 생각을 빼앗고 인간의 생각을 단순한 전기화확적 반응으로 격하시킨다는 생각은 열 받을만 하다. 스스로를 단순한 자동인형이자 기계로 생각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니까. P276

살아 숨 쉬는 현재를 위한 생각의 전환

'참 괜찮은 죽음'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때만해도

내가 위통증으로 응급실에 다녀오고

패혈증으로 중환자실에 갈 수도 있다는 얘길 들으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랬으니 책표지와 맞춘다고

평소에 잘 안먹는 말차프라푸치노를 주문했었겠지... ㅠ.ㅠ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신경외과 의사이자

섬세한 문필가라는 헨리 마시의

뇌수술로 목숨을 건진 사람,

세상을 떠난 사람,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중

가장 마음에 오래 남았던 건 아무래도 암투병중이시던 그의 어머님의 죽음이었던 것 같다.

본인도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린 의사지만

더 이상 손 쓸 수 없게 된 어머니의 곁에서 그저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던 2주간의 시간...

"사랑에 둘러싸여 있다는 건 아주 특별한 느낌이야"

"난 지금 좋았던 일들을 떠올리고 있단다."

건강하게 장수한 끝에 내 집에서 고통없이 빠른기간에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며 맞이하는 죽음

저자는 어머니와의 이와같은 이별을 완벽한 죽음이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비오고 바람부는 새벽

혼자 찾은 응급실 풍경

잔뜩 겁이난 아이들의 울음소리

뭔가 화가난 아저씨의 호통

침대 끌리는 소리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도 이가 딱딱 부딛칠 정도로 파고 들던 한기...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언젠든 다시 입원할 상황이 올찌도 몰라

김씨 들고가기 편하도록 가방을 꾸려 놓았지만

주위의 걱정과 기도로 기운만 없을 뿐

아직까진 별다른 이상없이 잘 지내고 있다.

이번일과 이 책을 계기로 한층 죽음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게 된 듯 하다.

나또한 참 괜찮은 죽음을 맞기 위해

더욱 건강도 챙기고

지금 주어진 삶을 후회없이 열심히 살아야 겠다고...

괜찮은 죽음의 조건은 무엇일까?

물론 고통이 없어야겠지만 죽음에서 고통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대부분의 의사들처럼 나도 온갖 형태의 죽음을 봐왔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어머니가 그런식으로 돌아가신건 정말이지 커다란 복이었다. 내가 죽는다면 나는 심장마비나 뇌졸중으로 기왕이면 자는 동안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그런 복은 그리 쉽게 오지 않으리란 걸 잘 안다. 목숨만 간신히 붙어 있어 오늘 내일하며 얇은 끈처럼 시간을 보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어머니는 교회를 다니셨지만 나는 신앙도 없다.

순간적으로 소멸하는 죽음을 끝내 이루지 못한다면 내 삶을 돌아보며 한마디는 남기고 싶다. 그 한마디가 고운 말이 되었으면 하기에, 지금의 삶을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 의식을 차렸다 잃었다 하는 동안 모국어인 독일어로 이렇게 되뇌셨다.

“멋진 삶이었어. 우리는 할 일을 다했어."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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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떻게 살래 - 인공지능에 그리는 인간의 무늬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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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지성’, ‘창조의 아이콘’ 이어령. 그가 삶을 마무리하며 천착했던 테마는 인공지능(AI)이다. 2016년 알파고의 등장 이후 영면에 들기까지 저자는 대부분의 시간을 AI에 대한 원고를 집필하는 데 몰두해왔다. 그 결과물 《너 어떻게 살래》가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세 번째 책으로 출간된다. 한국인의 ‘출생의 비밀’과 그 의미를 밝힌 《너 어디에서 왔니》, 젓가락에 담긴 한국인의 문화유전자를 조명한 《너 누구니》에 이은 책이다.

저자는 이미 60대부터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슬로건을 내걸며 IT 강국의 정신적 기반을 다진 선각자였고, 70대에는 과학과 인문의 세계를 통섭하는 ‘디지로그 선언’으로 우리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던 프런티어였다. 그뿐 아니다. 우리의 IT 기술을 이용해 새 밀레니엄의 첫새벽에 즈믄둥이의 출생을 전 세계에 생중계하고, 평창의 상공에 드론을 띄워 오륜기를 그리던 초유의 하이테크 연출가이자, 최신 디지털 장비라면 가장 먼저 사용해보는 ‘얼리어댑터’, 여러 IT 기업에 조언을 아끼지 않던 멘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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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무 이유도 묻지 맙시다. 이야기를 듣다 잠든 아이도 깨우지 맙시다. 누구나 나이를 먹고 늙게 되면 자신이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를 이제는 아이들에게 들려주려고 합니다. 천년만년을 이어온 생명줄처럼 이야기줄도 그렇게 이어져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인생 일장춘몽이 아닙니다. 인생 일장 한 토막 이야기인 거지요.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선녀와 신선을 만나 돌아온 나무꾼처럼 믿든 말든 이 세상에서는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옛날이야기를 남기고 가는 거지요. 이것이 지금부터 내가 들려줄 ‘한국인 이야기’ 꼬부랑 열두 고개입니다. p12

AI(인공지능). 그 녀석들이 누군지 나는 잘 안다. 벌써 16년 전부터의 일이다. 대학 강당에서, 네이버 〈지식 프로모션〉에서, 그리고 새천년 행사장에서 수없이 이야기해온 화두다. 더구나 알파고는 내가 특별히 잘 아는 녀석이다. 출생의 비밀까지도 알고 있다. 출생의 비밀, 그건 한국 TV 드라마의 단골 메뉴가 아니냐. 입이 근지러워서라도 못 참는다.

알파고, 언젠다는 한국에도 올 줄 알았지만 이렇게 일찍, 그것도 내가 은퇴를 결단하자마자 닫아 놓은 문짝을 두드릴 줄이야. 은둔자의 문을 두드린 게다. 조금 전 안드로이드가 내 호주머니 속에서 진동할 때의 그 느낌처럼 말이다. p16

아이를 키우는 주부들은 용감하고 실전에 강하다. 아이가 알파고에 대해 질문을 했을 때 어느 어머니가 신문 톱기사처럼 인류 멸망을 말하겠는가. 아이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서도, 그리고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도 내가 농담한 것처럼 말했을 거다.

그렇지. 알파고에 이세돌이 졌다고 해서 간단히 물러날 한국 주부들이 아니지. 암탉이 병아리를 지킬 때 매를 무서워하던가. 한국의 주부들은 매도 무서워 피한다는 그 맹모계인 게다. 문제는 식자우환 지식인들이다. 바로 그 조금 전 기자들 앞에서 인터뷰를 하던 내 자신의 모습인 게다. p45

이제 내 이야기는 끝났어. 이젠 내가 물을 차례야. 너희들이 대답해. 어떻게 하겠니. 앞으로 알파고와 사이좋게 지낼래, 아니면 코피 터트리며 싸우면서 이길 거니. 그것도 아니면 모든 걸 알파고의 뜻대로 고분고분 따르면서 그 밑에서 살아갈 거니. 이건 너희들의 선택에 달렸어. 그리고 앞으로 너희들이 엄마 아빠에게 들려줄 이야기야. 공부는 안 하고 밤낮 밥 먹고 게임만 한다고 야단치는 엄마 아빠에게 말이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처음 본 로봇은 일본에서 만든 TV 만화영화의 주인공이었찌. 이름은 아톰, 너희 엄마 아빠한테도 물어보면 알 거야. 그 녀석은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힘을 가지고 하늘을 날아다녔어. 별명은 '철완 아톰'이었는데, 철완은 쇠로 된 팔이라는 뜻이고 아톰은 원자라는 뜻이야. 아톰의 원자의 에너지로 무쇠 팔을 휘두르는 로봇인 거지. 몸뚱아리가 센거야. p93

밤하늘을 인간의 눈으로 올려다보면 성좌들이 나타난다. 컴퓨터 0과 1의 수치로 인지하고 표현하는 컴퓨터가 제일 못하는 것이 바로 그 북두칠성 찾기, 패턴 인식이다. 패턴화라는 것은 사물의 특징을 추출하고 표현한다는 뜻으로, 사물을 독립된 부분으로 쪼개는 것이 아니라, 관계있는 사물들끼리 모아 한 의미로 만드는 것이다. 이 마음의 성좌, 의식의 별자리에서 생겨나는 이야기들, 그 신화와 전설이 인간의 지능이요 감정이요 의식이다. 밤하늘에 빛나는 바다와 교신하는 영성이다.p162

인터페이스란 인간(아날로그)과 컴퓨터(디지털)의 접촉면이다. 어려운 이야기 할 것 없다. 찻잔이 뜨거워 만질 수 없을 때 손잡이를 달아주면 해결된다. 쥘 수 없는 뜨거운 잔과 나 사이의 경계를 사라지게 하는 손잡이가 바로 인터페이스다.'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으로 시작하는 옛 유행가의 그 '바다', 또는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이별한 아버지와 딸을 이어주는 '책장'이 곧 인터페이스다. p320

그날, ‘알파고’라는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내려앉은 거다. IMF, 리먼 쇼크, 메르스…. 그동안 내 가슴속에서 멍들어 있던 문자들이 한꺼번에 내출혈을 일으킨다. 누가 이 땅을 일러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했는가. 아니다. 우리는 밥을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충격을 먹고 산다. 어제까지 AI라고 하면 ‘조류독감’인 줄 알고 알파고라고 하면 무슨 특목고 이름인 줄 알았던 한국인들이다. 그들이 하루아침에 또 낯선 영문자의 충격파에 휩쓸린다. p360

한국인의 ‘출생의 비밀’과 그 의미를 밝힌 '너 어디에서 왔니',

젓가락에 담긴 한국인의 문화유전자를 조명한 '너 누구니'에 이은

고 이어령교수의 한국인 시리즈 세번째 책 '너 어떻게 살래'를 읽고 있다.

'우리 시대의 지성'으로 불리웠던 이어령교수...

여러 매체를 통해 최신 디지털 장비라면 가장 먼저 사용해보는 '얼리어댑터'라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온국민이 관심과 충격을 안겨준 알파고를 비롯해서

AI에 관련해 풀어주시는 방대한 이야기들은 대단하다고 밖엔 달리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했다.

난, 컴퓨터학원에서 대학생들과 취업준비를 하는 성인들 대상으로

자격증관련 강의를 하는 컴퓨터강사였다.

나역시 주부지만 초등학교부터 아니 그 훨씬 어린아이시절부터

컴퓨터와 휴대폰에 익숙한 젊은 청년들과 달리

디지털 용어부터 어려워하는 주부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는 쉽지 않았었는데

아이들도 이해해야 한다며 다양한 분야의 관련 이야기를 비교적 쉽게 풀어주신 덕분에

훗날 다시 강의를 하게 될 때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

AI, 인간, 로봇...

얼마전 읽은 '작별인사' 속 철이를 보면서도

나도 모르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스며 들었었는데

15년전 쓰셨다는 '디지로그'를 진작에 읽었다면

조금은 덜 두려웠을까?!...

본문의 내용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론 안드로이드 로고에 관련 된 이야기,

페르시아 수학자 마함마드 이븐 무사 알콰리즈미에서 유래 되었다는

알고리즘 이야기 등이 담겨 있던

마치 부록 같던 '샛길'도 기억에 많이 남을 듯 하다.

나는 그 옛날 "산업화는 뒤졌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고 외쳤다. 그런데 이제는 외칠 필요가 없다. 노래하는 거다. 새로운 4차 산업혁명 시대, 융합의 시대에는 '미닫이'라고 이름 붙일 줄 아는 융합의 한국인이, 로봇과 인공지능이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따뜻한 가슴의 인(仁)을 가진 한국인이, 세계 어느 국민보다 넘치는 창의력을 가진 한국인이 세상을 앞서가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2006년 《디지로그》에서 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두고보라.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대립하는 두 세계를 균형있게 조화시켜 통합하는 한국인의 디지로그 파워가 미래를 이끌어갈 날이 우리 눈앞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p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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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문구점 아저씨 - 좋아하는 일들로만 먹고사는 지속 가능한 삶
유한빈(펜크래프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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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디지털화되고 동네 문구점은 대형 온라인몰이 대체한 21세기에 문구점 창업기를 써내려가고 있는 한 명의 ‘문구 덕후’가 있었으니. ‘동백문구점’, 이름이나 위치만 보면 영락없는 초등학교 앞 문방구지만 각종 준비물이나 가위, 색종이, 줄넘기 등은 팔지 않는다는(복사나 스캔도 죄송하지만 안 된다는) 수상한 문구점 주인 아저씨(자칭)의 느리지만 유연한 삶의 이야기.

유한빈 작가는 매일같이 책을 읽고, 필사하고, 손글씨를 주제로 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온오프라인 글씨 교정 강의도 진행한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 ‘펜크래프트’라는 활동명으로 선보인 정갈하고 아름다운 손글씨로 주목을 받으며 관련 도서도 집필한 바 있다. 이 같은 활자 덕질은 문구 덕질과 나란히 발걸음을 같이해왔다.

십여 년간 전 세계 노트를 섭렵했지만, 마음에 쏙 드는 제품을 찾지 못해 ‘노트 유목민’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는 마침내 좋아하는 필기구를 직접 만들어, 마니아층에게 판매하고, 오롯이 자신의 취향만으로 완성한 공간을 꾸려가는 삶으로 들어섰다. 채 열 평도 되지 않는 그의 동백문구점은 양장 노트, 다이어리, 만년필, 잉크 등 직접 제작 및 엄선한 제품들로 가득하고, 아늑하다.

[알라딘 제공]

같은 시대에 부의 상징으로 통하던 펜이 있었으니……. 이름하야 ‘파이롯트 하이테크’ 되시겠다. 아마 다들 기억할 거라고 생각한다. 굉장히 센세이션하고 엘레강스하며 럭셔리하고 뷰티풀한 펜으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같은 회사에서 쥬스업이라는 볼펜(내가 생각하기에 하이테크의 완벽한 상위 호환 버전이다. 잉크 발색도 더 뛰어나고 색상도 다양하고 내구성도 좋고 노크식이라 쓰기도 간편하다. 그립부엔 고무가 덧대 있어 그립감도 좋다)이 나와서 그런지 대형 문구점에 가봐도 예전처럼 하이테크 앞에서 서성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아졌다. p35~36

만년필은 물론 다른 취미

를 갖고 있는 분들도 공감할 거라고 생각한다. 입문용이라고 해서 입문했다가 점점 더 좋은 제품에 눈이 돌아가서 하나둘 모으다 보면 ‘아, 그냥 하이엔드 끝판왕 하나 사서 오래오래 잘 쓸 걸……’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끝판왕을 산다고 해도 그걸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끝판왕 모델이 여러 개가 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철이 없었죠, 만년필에 빠져 몽블랑까지 사게 되다니. p51~52

이런 생활을 십 년 가까이 하니까 그냥 내가 만드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트를 만들 때 몇 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사이즈는 A5 언저리일 것. 둘째, 표지와 책등에 장식을 할 것. 셋째, 줄 간격은 8mm일 것. 넷째, 줄이 연해서 글씨를 쓰고 나면 눈에 띄지 않을 것. 다섯째, 코팅되지 않은 종이일 것. 크게 이런 다섯 가지 조건으로 파주, 일산, 을지로를 돌며 인쇄소를 알아봤다. 인쇄소 사장님들은 ‘노트 그거 돈 되지도 않는데 왜 하려는지 모르겠다’면서 대놓고 거절했다. p88

이곳저곳을 봤지만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나와 돌아다니는데 임대 문의가 붙은 건물이 보였다. 그것도 망원동 동교 초등학교 바로 앞에.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앞인데 초등학생이 쓸 문구를 팔지 않고 오히려 다 큰 어른들이 쓸 문구를 파는 문구점이라…… 미스 매치인데?

p92

우선 가장 중요시한 부분은 펜에 넣었을 때 필기감이 좋아지느냐다. 전적으로 필기감을 우선시해 제작하다 보니 색 분리가 된다거나 테가 뜬다거나 펄이 있다거나 하는 경우는 가장 먼저 배제했다. 이런 경우 필기감이 필연적으로 좋지 않을 수밖에 없는 구조기 때문이다.

글씨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만들기 때문에 가독성을 중요시해 발색이 대체로 선명한 편이다. 선명한 잉크와 그렇지 않은 잉크의 비율을 2 대 1 정도로 맞춰서 제작하고 있다. 당연히 잉크 색도 기존에 없던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유니크함과 오리지널리티는 소규모 개인 문구점의 큰 무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116

새로운 잉크병과 라벨 스티커까지 준비됐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제작을 해야 했다. 저녁 일곱 시 반 퇴근 후 열 시까지 잉크를 만들면 50~100병 정도를 만든다. 인기있는 검빨파 색상은 100병씩, 비교적 인기가 덜한 잉크는 50병씩 만든다.은근히 정교한 작업이라 집중력을 많이 요한다.

늦은 밤, 에너지가 고갈되어 택시를 타고 집에 가고 싶은 유혹이 강하게 든다. 하지만 아껴야 하기에 터벅터벅 지친 몸을 이끌고 십오 분을 걸어 지하철역으로 걸어간다. 사십 분 동안 지하철을 타고 환승한 뒤 삼송역에서 내려 십오 분을 걸어 집으로 향한다. 아침 열 시에 집을 떠났는데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니 밤 열한 시 반이다. 이런 삶이 반복되었다. p121~122

문구점이 학교 앞에 있다 보니 동교 초등학교 학생들이 자주 기웃기웃거린다. 초등학교 앞에 있기는 이상한 비주얼인가 보다. 그런 미스 매치를 노렸으니 어느 정도는 성공한 셈인가? 아이들끼리 놀다가 삼삼오오 모여 창 안을 들여다본다. 서로 눈치 보며 갈까 말까 이야기하다 결국 안 온다. 문구점에 오는 기자님들이나 손님들이 많이들 말한다. '여기 아이들도 많이 오겠어요.' 나는 아니라고 말씀드린다. 아이들도 쎄한 걸 느끼나 보다. 삼삼오오 모여 떠들다가 문구점이라는 걸 보고 들어가자고 했다가 내부를 보고 뒷걸음질친다. 옆에 있는 한 아이가 ‘여기는 우리가 가면 안 되는 곳’이라며 친구를 말린다. 들어와도 되는데 안 들어오는 걸 보면 귀엽기도 하다.

p165

이런 마인드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조언을 주위에서 많이 하지만 돈을 크게 벌지 못해도 이런 삶이 즐겁다.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백 가지 중 백 가지를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한 한 가지로 모든 것을 평가받으면 억울하지 않나. 그렇게 오늘도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쓴다. 끙차, 일어나자. 잉크 만들러 가야지. p183~184

                            

문구덕후였던 저자가 한 초등학교 앞에 이름도 심쿵한

동백문구점을 창업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앞이지만 초등학생은 오지 않고

복사나 스캔도 되지 않는

작지만 쥔장의 취향을 고스란히 담은 필기구를 파는 특별한 문구점...

표지와 책등에 장식을 한 A5 사이즈의 코팅되지 않은 종이의 노트

한 번 써 본 사람이 또 구입한다는 다이어리도 갖고 싶어진다.

스테들러 꿀벌 연필

지워지는 볼펜

이제는 국민볼펜

하이테크 대항마

최근에 구입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지워지는 프릭션 볼펜

필기할 일 별로 없는 요즘도 문구점에 가면

필기구 코너를 기웃거리는 내게

이 책은 묘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매일같이 책을 읽고 필사를 한다는 저자의 글을 읽다보니

오래 참고 있던 만년필 구매 욕심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블랙, 블루, 그린, 퍼플 등의 잉크를 채워

글씨도 쓰고 그림도 그려보면 어떨까 하는...

필압이 강해 만년필 촉이 상하고 종이가 일어나고

잉크를 교체하는 일을 귀찮아 하면서?!...^^;

결국 잘 되는 것을 포기 하게 된다. 포기하면 편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내려 놓으니 더 내려갈 곳이 있을까 싶어 마음이 편해진다.

아날로그를 좋아하고 불편한 것도 좋아하고

잘 안되면 마음이 편하다는 저자의 이야기들이

재취업을 고민하며 해도 안될꺼라는 불안과

내려놓지 못한 욕심으로 힘들었던 마음을 다독여 주는 듯 하다.

내게 혹은 친구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은 날

찾아가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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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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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가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9년 만에 내놓는 장편소설.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별안간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린 한 소년의 여정을 좇는다. 유명한 IT 기업의 연구원인 아버지와 쾌적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던 철이는 어느날 갑자기 수용소로 끌려가 난생처음 날것의 감정으로 가득한 혼돈의 세계에 맞닥뜨리게 되면서 정신적, 신체적 위기에 직면한다. 동시에 자신처럼 사회에서 배제된 자들을 만나 처음으로 생생한 소속감을 느끼고 따뜻한 우정도 싹틔운다. 철이는 그들과  함께  수용소를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떠나지만  그 여정에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작별인사』의 인물들이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는 명제를 두고 논쟁하는 장면은 김영하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메시지와 논리적 거울상을 이룬다. ‘나는 내가 알던 내가 맞는가’를 질문하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주인공의 모습은 김영하 소설에서는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기억, 정체성, 죽음이라는 김영하의  주제가 『작별인사』에서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새롭게 직조된다. 달라진 것은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 반드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죽음의 문제로 더 깊이 경사되었다는 것이다.  원고에서 핵심 주제였던 정체성의 문제는 개작을 거치며 비중이 현저히 줄었다. 대신 태어남과 죽음, 만남과 이별의 변증법이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자작나무숲에 누워 나의 두 눈은 검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한 번의 짧은 삶, 두 개의 육신이 있었다. 지금 그 두번째 육신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 어쩌면 의식까지도 함께 소멸할 것이다. 내가 겪은 모든 일이 머릿속에서 폭죽 터지듯 떠오르기 시작한다. 한때 회상은 나의 일상이었다. 순수한 의식으로만 존재하던 시절, 나는 나와 관련된 기록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기억을 이어 붙이며 과거로 돌아갔다. 그때마다 이야기는 직박구리가 죽어 있던 그날 아침, 모든 것이 흔들리던 순간에서 시작됐다.p9

“그건 마치 커피에 크림을 떨어뜨린 후에 정확히 어떤 모양으로 퍼져갈지를 예측하는 것과 비슷해. 예측할 필요가 없어서일 수도 있어. 노을 같은 무해하고 장엄한 카오스는 그냥 감상하면 그만이야. 뭐하러 예측을 하겠어? 노을이 우릴 죽이는 것도 아닌데.”

“정말 미래는 알 수 없는 거네요.”

“미래는 알 수 없다는 것도 확실한 사실은 아니야.”

“그게 무슨 뜻이에요? 그럼 미래를 알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건 ‘미래’라는 말이 뭘 의미하느냐에 달렸어.” p33

우리 둘은 부부 같기도 했고, 때로 모자 같기도 했다. 무엇이든 우리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선이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 모두 예감하고 있었다. 밤이면 시베리아의 광활한 밤하늘을 은하수가 가로질렀다. 나는 밖으로 나와 하염없이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럴 때면 『천자문』의 두번째 문장을 생각했다. ‘일월영측(日月盈?)하고 진수열장(辰宿列張)이라.’ 해와 달은 차고 기울며, 별과 별자리들은 열을 이루어 펼쳐져 있다. 나는 고대의 중국인들과 같은 하늘을 보며 그들이 적은 문장을 그대로 읊곤 했다. p285

“그 부분 다시 읽어줄래?”

“어디? ‘현실하고 다른 일을 상상해보신 적이 한 번도 없으세요?’ 이 부분?”

“그래, 그 부분.”

나는 앤의 대사를 다시 읽어주었다. 선이는 꿈을 꾸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어렸을 때 그 지하실에 동화책이 몇 권 있었다고 그랬잖아.”

“그래, 네가 『빨간 머리 앤』 얘기했던 거 기억나.”

“방금 든 생각인데, 그때도 나는 좀 전에 네가 읽어준 부분을 참 좋아했어. 그후로 나도 앤처럼 늘 현실하고 다른 일을 상상해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 눈에 보이는 게 전부일 수는 없다고, 그럴 리는 없다고 말이야. 그 덕분에 그래도 그럭저럭 살아남아서 여기까지 왔는지도 몰라. 다시 들으니 참 좋네…” p289

나는 그대로 거기 남았다. 그리고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죽거나 사라지는 것을 끝까지 남아 지켜보았다. 오래지 않아 내 몸 여기저기에도 서서히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지만 그대로 내버려두었다…가끔은 바다에서 날아온 갈매기가 거기 앉아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곤 했다…어느 날, 나는 오두막의 포치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공동체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문득 이 넓은 대지에 인간을 닮은 존재는 이제 나 하나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는 강렬한 확신이 들었다. p292

'살인자의 기억법'이후

9년만의 장편소설 '작별인사'

김영하작가의 신간,

그것도 제목이 '작별인사'라는 이유로 출간소식이 들리자 바로 데려왔는데

뜻밖의 만남이었던 미래소년(?) 철이를 쫓아 가는길은 예상외로 쉽지 않았다. ㅠ.ㅠ

스티브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가 떠오르기도 했던 이번 소설은

한 IT기업 연구원인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며

천자문을 공부하는 등 조금도 의심없이 인간이라 믿고 살아온 철이가

납치된채 수용소로 끌려가 위기를 만나며 혼돈속에서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위험을 감행하는 모습과 그가 만난 민이, 선이, 달마 등과 나눈 대화들을 통해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 고민하는 모습들이 담겨 있었는데

한동안 낯을 가리느라 책장 넘기기가 힘들다가

중반부를 지나면서야 속도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한 번의 삶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음을 맞아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 작별인사...

이제 겨우 낯을 익혔으니

그리 멀지 않은 날

조금은 여유있는 마음으로 천천히 다시 읽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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