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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미술관 -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로 만나는 문화 절정기 조선의 특별한 순간들
탁현규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2월
평점 :
문화 절정기 조선의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를 한 권에 담아낸 책이다. 기획하는 전시마다 대박을 터트리고 매 강연 청중의 감탄을 자아내는 고미술 최고 해설가 탁현규가 집필했다. 신윤복, 정선, 김홍도를 비롯한 조선의 천재 화가들 7인의 작품과 더불어 태평성대를 누린 숙종과 영조대의 기록화첩도 소개하고 있어 보는 즐거움이 배가 되는 특별한 미술책이다.
저자는 조선시대 화가들의 뛰어난 연출력을 현대의 기준으로 재해석해 새롭게 들려준다. 신윤복 그림에서 ‘붉은색과 푸른색 옷의 대비, 담장 바깥 높은 곳에서 집 안 들여다보기, 열린 방 안과 마당을 이어주는 마루를 무대로 삼기, 눈빛으로 심리 상태 연출하기’ 등 현대 영화나 드라마에 적용해도 손색없는 특유의 연출법을 발견해내는가 하면, 정선과 김홍도 그림에서 ‘다 그리면 재미없다’는 진경산수화 제1법칙을 찾아내기도 한다. 저자의 예리한 해석으로 옛 화가의 가치가 새로이 드높아지는 순간이다.
그림은 사진이 도입되기 전부터 시대를 읽어내는 중요한 단서이자 좋은 사료(史料)였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태평성대를 누렸던 조선 후기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 그림 50여 점을 선별해 이 책에 수록했다. 백성의 다채로운 일상을 담은 풍속화부터 왕실과 상류사회의 경사스러운 행사를 그린 기록화까지, 아름다운 옛 그림을 감상하는 동시에 생생한 역사도 만날 수 있는 『조선 미술관』으로 지금 입장해보자.
<인터넷 알라딘 제공>
달도 차면 기우는 법, 19세기이후로 노쇠해진 조선 문화는 조선말과 일제 때 사진 속 모습처럼 그렇게 기운을 잃어 갔다. 사진 속 모습이 문화 말기 현상임을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17~18세시 문화 절정기에 그려진 풍속화와 기록화 덕분이다. 풍속화가 사생활이라면 기록화는 공공생활이고 풍속화가 드라마라면 기록화는 다큐멘터리다. 그래서 『조선 미술관』에서는 궁궐 밖의 사생활을 담은 1관과 궁궐 안의 공공 행사 기록을 담은 2관으로 나누어 전시를 기획했다. 뛰어난 관찰력과 묘사력을 갖춘 화가들이 펼쳐낸 조선 후기 문화 절정기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보자. p9
<밀희투전>은 김득신 풍속화첩에서 사건 장소가 실내인 유일한 그림이다. 역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야외에서 놀이를 즐겼고 이런 도박만이 남의 눈을 피해 실내에서 몰래 이루어졌다. 방 안 벽에는 창문틀만 그리고 바깥은 막아놓아 창문으로 남이 엿볼세라 조심하는 은밀한 광경이 되었다.
이날 방에 모인 노름꾼 네 명은 모두 집에서 편하게 쓰는 모자인 탕건을 썼는데 투전 놀이판의 유니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자는 같은 것으로 썼지만 두 사람은 옥색 도포, 한 사람은 흰색 도포, 마지막 한 사람은 흰색 도포에 옥색 덧옷을 입었다.
안경 쓴 이가 패 하나를 내놓는 순간 방 안에 깊은 긴장감이 감돈다. 맨 왼쪽 인물은 다음이 자기 차례인지 패를 고르고 있다. 패를 고르는 사람의 오른쪽 인물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놓았고 맨 오른쪽 인물은 두 손으로 패를 감추었다. 네 명 모두의 손짓이 다르니 이것이 화가의 연출력이다. 같은 자리에 앉았지만 각자 다른 마음속을 각자 다른 손짓으로 보여주었다. 모두 도박판에서 상대방의 돈을 따야 하는 상황. 도박은 협업이 아닌 제로섬 게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p53~54
담장 바깥에서 안으로 가지를 늘어뜨린 벚꽃 나무가 흐드러지게 핀 이때는 모든 여인들의 마음이 흔들린다는 봄날의 한가운데다. 좋은 날 바깥출입을 못 하는 과부가 몸종과 소나무 둥치에 걸터앉아 봄빛을 즐기며 신세 한탄을 하던 이때, 담장 개구멍으로 들어온 개 한 마리가 과부가 키우던 개와 짝짓기에 들어가니 과부에게 벚꽃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버렸다. 이는 과부의 춘정에 불을 지핀 사건이니 반쯤 풀어져 게슴츠레한 과부의 저 눈빛을 보아라.
신윤복 화첩 속에서 선비와 기녀가 여러 번 나왔어도 항상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나온 것은 선비였는데 이 장면에서 그 법칙이 깨지고 말았다. 더군다나 사대부 여인을 이렇게 민망하게 만들고 말았으니 감정 표현을 더욱 절제할 수밖에 없었던 사대부 여인들의 ‘진솔한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평민 과부가 아닌 양반 과부를 주인공으로 택한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화가는 조선시대 ‘열녀 이데올로기’에 과감히 반기를 들었다고 봐야겠다. 열녀 수절이라는 명분으로 자연스런 욕망을 억압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극단의 연출을 꾀한 것이다. p105~107
김홍도가 평생 그린 풍속화 가운데 가장 많은 인물이 등장한 이 그림이 김홍도 마지막 풍속화가 되었다. 개성 노인들이 이백년 만에 기로회를 대규모로 연 것은 김홍도로 하여금 진경풍속화의 대미를 장식하려는 하늘의 뜻이 작용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1806년 김홍도가 생을 마감하고 진경산수화와 풍속화는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며 조선화단의 찬란함도 빛을 잃어갔으니 <기로세련계도>는 진경시대의 종막을 알리는 기념비와 같은 그림이 되었다. p274~275
옛 그림의 매력을 담아 즐길 수 있는 단 한권의 미술관
'조선 미술관'
몇해전,
간송문화전과 용산기념관에서 전시되었던 김홍도 Alive전을 통해
김홍도의 그림들을 감상한 적이 있다.
그 당시 고미술들을 즐겨 찾는 것도 아니었고 알고 있던 작품들도 많지 않아
이내 잊고 지냈는데 이번에 미술 해설가 탁현규작가의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조선 미술 입문 도서
'조선 미술관'을 읽고 나니 그 당시 이 책을 읽고 갔다면
작품을 보는 내 눈이 좀 더 반짝였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
이 책이 아니었다면 더운 날씨에 책이 눈에 들어 오지 않은 조선의 선비들이
바둑, 장기, 쌍륙놀이를 하며 여름을 보냈다는 걸 어찌 알았겠는가?!...
그리고 이렇게 놀이 하는 선비들을 그린 그림을 '현이도'라고 부른다는 것도...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다
'마상청앵'처럼 어쩌다 아는 작품이 나오면 더 반갑다.
기다란 화폭에서 숨은 꾀꼬리 찾기
새소리에 마음을 빼앗긴 선비의 여유로움이 담겨 있는 김홍도의 전신 초상이라 적혀 있는데
그 선비의 시선을 따라 버드나무 가지 사이의 꾀꼬리 한 쌍을 찾는 일은
독자의 즐거움이지 않을까 싶다.
밤배에서 달빛에 취하다
김화겸의 그림 '야주취월' 을 보는데 김씨가 떠오르는건?!..
팔다리는 점점 가늘어지고 볼록 나온 배가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 같은
김씨의 배가 연상되는 건 어쩜 당연한 일이지 않았을까?...(김씨 미안^^;)
강가에서 물고기 잡고 사는 어부는 물 위가 삶의 터전이기에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배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어부의 모습이 퇴근후 리클라이너에 기대 앉은 김씨의 모습과
심히 닮았다는 결론! ㅋ
단원 김홍도 개성 경로잔치를 그리다
'기로세련계도'
김홍도의 마지막 풍속화라는 이 작품도 눈길을 끌었다.
64명의 노인들...
작가는 무수한 선비들과 아이 가운데 단 한명의 걸인 찾기를 제안했는데
내가 찾은 걸인이 그가 맞는지 아직도 자신이 없다. >.<
평소에 자주 접하지 못했던 미술작품들과
위트있는 글로 작품을 소개해준 작가덕에 즐거운 조선 미술관으로
나들이를 한 기분이다.
컨디션 좋아지는데로 리움미술관에 한 번 더 가보는걸로...

** 이 책은 출판사 블랙피쉬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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