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피아노 - 모든 것은 건반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무튼 시리즈 48
김겨울 지음 / 제철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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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가 있나요?” ‘아무튼 시리즈’가 마흔여덟 번째로 던진 물음에 작가 김겨울은 ‘피아노’라고 답했다. 지금까지 네 권의 단독 저서를 펴낸 작가로서뿐 아니라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 운영자, MBC ‘라디오북클럽’의 디제이 등 책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그의 정체성 일부분은 피아노와 피아노에 얽힌 무수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아무튼, 피아노』는 그런 저자의 피아노를 향한 지극한 발라드이자 “그것을 속속들이 싫어하고 낱낱이 사랑하게 된” 성실한 기록이다. 다섯 살 때 처음 피아노의 세계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 순간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그 낯선 세계가 삶을 가득 채웠다가 갑자기 썰물처럼 빠져나갔다가 다시금 밀려들어와 온몸을 적신 과정을 아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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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하는 사람보다 참여하는 사람이 그것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온몸으로 참여할 수가 없다. 혹은 온몸으로 참여하면 더 사랑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것을 속속들이 싫어하고 낱낱이 사랑하게 된다. 글을 읽을 때보다 쓸 때, 춤을 볼 때보다 출 때, 피아노를 들을 때보다 칠 때 나는 구석구석 사랑하고 티끌까지 고심하느라 최선을 다해 살아 있게 된다. 글이 어려운 만큼 글을 사랑하게 된다. 춤이 힘든 만큼 춤을 사랑하게 된다. 피아노가 두려운 만큼 피아노를 사랑하게 된다. 나는 피아노를 사랑하기 때문에 피아노가 두려운 것이다. p13

나의 세계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 다섯 살 이래로 음정은 언어의 자리에 슬며시 밀고 들어와 등나무처럼 결합했다. 나는 평생 소리와 함께 살았고, 지금도 무수한 소리를 듣는다. 소리는 음이 되고 음이름이 되어 뇌에 잠시 머물렀다 사라진다. 그것은 색이 되어 잠시 뇌를 물들이고 사라지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피아노의 유산이다. 나는 피아노를 배움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세계를 가진 인간이 되었다. p45

나는 클래식 음악이 내가 가진 마지막 벽이라고 느낀다. 내가 가진 유일한 마음의 집이 활활 타올라 서까래마저 불타 없어져도 홀로 불타지 않는 벽. 노래에도, 말소리에도, 대화에도, 그 어떤 것에도 기댈 수 없을 때 지친 몸을 끌고 가서 털썩 주저앉으면 기댈 수 있는, 푹신한 소파는 못 되지만 결코 무너지지는 않는 든든한 벽. 거칠고 두꺼운 벽에 머리를 기대면 나보다 먼저 기쁘고 슬펐던 이들이 온갖 소리로 나를 지탱해준다. 이 벽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나를 배신한 적이 없다. p103

하도 많이 펼쳐서 다 헐어버린, 황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이고도 너덜거리는 하농 악보를 한 장씩 넘겨본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쓰던 하농이다. 이걸 능숙하게 치던 때의 내가 있었고, 그 시절로부터 나는 꽤 먼 길을 떠나왔다. 아르페지오며 화음 연습곡까지 다 쳐놓고 아직 어려서 옥타브 연습곡만 못 치던 때로부터 레슨에서 옥타브 연타를 연습하고 있는 지금까지. 아르페지오 연습곡 페이지에 별것 아니라는 듯이 ‘레가토’라고 쓰여 있던 때로부터 아르페지오 레가토를 연습하기 위해 손가락으로 끙끙대야 하는 지금까지. 그 손과 이 손은 다른 손이다. 그 어린이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물론 같은 사람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좋다. p128

음악과 언어의 유사성은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나 있어서 언급하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단어, 짧은 구절, 문구, 문장, 문단, 글은 각각 음표, 이음줄로 연결된 음들, 동기(motif), 프레이즈, 주제, 곡에 대응한다. 글이 쓰인 책은 악보가 기록된 악보집에 대응한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차적으로 읽듯 악보도 순차적으로 읽으며, 책을 그렇게 읽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악보를 읽을 때도 순차성을 거부할 수 있다. 음악은 언어 없는 언어, 잘게 쪼개진 의미를 실어 나르는 대신 감정을 열어놓는 언어다. p149

이제 나는 말을 멈추기란 도통 쉽지 않다는 것을, 억지로 누군가가 말을 멈추게 해야 겨우 뭔가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혼자서도 그렇게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말하는 일이란 다른 사람에게 나의 일부를 떼어내 전달하는 일이고, 그 이전에 침묵의 시간만이 나를 정의할 수 있으며, 듣는 시간만이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듣기를 멈추지 않아야 하고, 듣기 위해 침묵해야 하며, 침묵의 힘으로 말해야 한다. 더 자세히, 더 세심히, 더 온전히 들어야 한다. 나 자신의 소리도, 다른 누군가의 소리도. 고립이 끝난 후에야 나는 그 사실을 알았다. p165

지난해,

재미있게 읽었던 책 '책의 말들'의 작가 김겨울님의 신간이 나왔다.

그 신간의 제목이 무려 좋아하는 시리즈 중에 하나인 '아무튼, 피아노'

홈쇼핑 품절사태에 더 구매욕구가 생기듯

예약구매 일시품절사태에 맘 졸이다 수령한 책이라

더 애착을 갖고 아껴가며 읽게 되는 것 같다.

생각만해도 좋은 한가지 피아노...

책을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처음 피아노를 배우던 어린 꼬마가 떠올랐다.

내 첫 피아노는 마호가니 색상의 영창피아노였는데

유치원 다닐 무렵부터 배우기 시작한 피아노를

국민학교 입학하면서는 방과후 수업으로 대신했고

중학교 입학하며 잠시 쉬다가

사춘기가 시작되며 다시 치기 시작했지만

더디 나가는 진도였는지, 선생님과의 소통이 문제였는지

중3이후론 피아노에서 점점 멀어진 듯 하다.

피아노를 전공하기엔 손도 작고

무엇보다 터치가 약해서 베토벤곡을 연주할때마다

좌절을 경험했던 기억...

반면에 가장 좋아했던 곡을 꼽으라면

고민없이 쇼팽의 녹턴 2번 E플랫 장조이다.

팔이 아파서일까?!...

게으름 피우며 그 시절 가장 치기 싫었던 하농을

리드미컬하게 연주해 보고 싶어지는 건....

덕분에 올해 하고 싶은 일이 하나 더 늘었다.

아무튼, 피아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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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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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대표지성 이어령이 마지막으로 들려주는 삶과 죽음에 대한 가장 지혜로운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오랜 암 투병으로 죽음을 옆에 둔 스승은 사랑, 용서, 종교, 과학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우리에게 “죽음이 생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로 전달한다.

지난 2019년 가을,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이어령 마지막 인터뷰’ 기사가 나가고, 사람들은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다”라고 밝힌 이어령 선생님의 메시지에 환호했다. 7천여 개 이상의 댓글이 달리는 등 큰 화제를 모은 이 인터뷰는 그의 더 깊은 마지막 이야기를 담기 위한 인터뷰로 이어지며 이 책을 탄생시켰다. 1년에 걸쳐 진행된 열여섯 번의 인터뷰에서 스승은 독자들에게 자신이 새로 사귄 ‘죽음’이란 벗을 소개하며, ‘삶 속의 죽음’ 혹은 ‘죽음 곁의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

스승 이어령은 삶과 죽음에 대해 묻는 제자에게 은유와 비유로 가득한 답을 내놓으며, 인생 스승으로서 세상에 남을 제자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낸다. “유언의 레토릭”으로 가득 담긴 이 책은 죽음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스승이 전하는 마지막 이야기이며, 남아 있는 세대에게 전하는 삶에 대한 가장 지혜로운 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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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 다르지 않아. 어느 순간부터는 인생을 풀full로 보는 게 아니라 불현듯 뛰어들어가 후반부 영화만 보는 것 같지. 영화가 끝나고 ‘the end’ 마크가 찍힐 때마다 나는 생각했네. 나라면 저기에 꽃봉오리를 놓을 텐데. 그러면 끝이 난 줄 알았던 그 자리에 누군가 와서 언제든 다시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을 텐데. 그때의 라스트 인터뷰가 끝이 아니고, 다시 지금의 라스트 인터뷰로 이어지듯이. 인생이 그래." p.49

"한밤의 까마귀는 안 보이더라도 한밤에 까마귀가 어딘가에는 있어. 그렇지? 어둠이 너무 짙어서, 자네 눈에 안 보이는 것뿐이야. 그리고 한밤의 까마귀는 울기도 하겠지. 그런데 우리는 그 울음소리도 듣지 못해. 이게 선에서 하는 얘기라네. 한밤에 까마귀는 있고, 한밤의 까마귀는 울지만, 우리는 까마귀를 볼 수도 없고 그 울음소리를 듣지도 못해. 그러나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 분명히 한밤의 까마귀는 존재한다네. 그게 운명이야. 탄생, 만남, 이별, 죽음…… 이런 것들, 만약 우리가 귀 기울여서 한밤의 까마귀 소리를 듣는다면, 그 순간 우리의 운명을 느끼는 거라네." p88

“죽기 직전, 눈앞에는 인생이 파노라마 필름처럼 펼쳐진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아닐세. 인생은 파노라마가 아니야. 한 커트의 프레임이야. 한 커트 한 커트 소중한 장면을 연결해보니 파노라마처럼 보이는 거지. 한 커트의 프레임에서 관찰이 이뤄지고, 관계가 이뤄져. 찍지 못한 것, 버렸던 것들이 나중에 다시 연결돼서 돌아오기도 해.”

인생이 파노라마가 아니라 한 커트, 한 커트의 연결이라는 말이 새로웠다. 3D 영화가 아니라 마치 흑백 무성영화처럼,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기억의 극장에 저장되고 있겠지. 그리고 어느 날, 가장 환한 대낮에, 가장 눈부신 순간에 편집되어 펼쳐질 테지. p157~158

정작 나는 선생님과 나의 대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었다. 선생님도 우리의 대화가 어떻게 정리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생각하는 자로서 그는 항상 용기백배했고, 듣고 정리하는 자로서 나는 가끔 허둥거렸다. 어떤 피드백도 없는 상황에서, 나는 매주 화요일 그가 가장 귀한 것을 줄 거라 믿었고, 그는 내가 가장 ‘촉촉한’ 이어령을 써낼 것이라 믿었다. p243

지난 월요일,

김씨가 무사히 어깨수술을 마치고 퇴원을 했다.

수술은 김씨가 했는데 내 어깨와 팔은 왜 이리 아픈 건지?!.... ㅠ.ㅠ

오늘도 한의원에 가며 후배님이 힘내라고 보내준 선물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가방에 넣었다.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로 부적이는 한의원의 긴 대기시간을

너끈히 견디게 해준 책이었는데

발매 당시부터 북카트에 넣어 두었지만 그동안 우울감과 무기력감으로

솔직히 책을 읽기가 두려웠었다.

더 아프고, 슬퍼질까 봐...

이 책은 죽음 외에도 삶, 사랑과 용서, 종교, 과학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었는데

살이 찌는 걸 걱정했던 시간이 있었지만 요즈음엔 살이 빠지는 게 두렵다는 노학자의 고백에

나도 모르게 울컥하기도 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죽음이 마냥 두렵고 슬프게 다가오지만은 않았다.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였으나,

모두가 평등한 수평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작가의 말처럼

죽음이 두려워지는 어느밤,

날 다시 한여름 태양아래로 데려와

빛으로 일광욕 시켜주기를...

“바다에 일어나는 파도를 보게. 파도는 아무리 높게 일어나도 항상 수평으로 돌아가지. 아무리 거세도 바다에는 수평이라는 게 있어. 항상 움직이기에 바다는 한 번도 그 수평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다네. 하지만 파도는 돌아가야 할 수면이 분명 존재해. 나의 죽음도 같은 거야.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였으나, 모두가 평등한 수평으로 돌아간다네. 본 적은 없으나 내 안에 분명히 있어. 내가 돌아갈 곳이니까.

촛불도 마찬가지야. 촛불이 수직으로 타는 걸 본 적이 있나? 없어. 항상 좌우로 흔들려. 파도가 늘 움직이듯 촛불도 흔들린다네. 왜 흔들리겠나? 중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야.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도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네. 바람이 없는 날에도 수직의 중심으로 가기 위해 파동을 만들지. 그게 살아 있는 것들의 힘이야.” p293~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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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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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인 소설가 외에도 사시사철 음악과 함께하는 애호가, 눈에 들어온 것은 저도 모르게 모아버리고 마는 수집가로도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개인적으로 소장중인 1만 5천여 장의 아날로그 레코드 중 486장의 클래식 레코드를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100여 곡의 명곡에 얽힌 사사로운 에피소드를 따라가다보면 클래식 애호가든 아니든 어느새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만드는 하루키 매직을 만나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클래식을 애청하며 창작의 원천이자 오랜 취미생활로 삼아온 작가는 “레코드를 모으는 것이 취미라서 이럭저럭 육십 년 가까이 부지런히 레코드가게를 들락거리고 있다”라고 밝히며 이 책을 시작한다.

최근 들어 컬렉터를 대상으로 발매되는 화려하고 다양한 사양의 LP와 다르게 대부분 “1950년부터 1960년대 중반에 녹음된 새카만 바이닐 디스크”이며, 별다른 체계와 목적 없이 눈에 띄는 대로 사모은 탓에 “통일성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중구난방의 컬렉션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하지만 틈날 때마다 한 장 한 장 정성껏 손질하며 턴테이블에 올리고, 지휘자와 연주자뿐 아니라 음반사, 녹음연도에 따라서도 미묘하게 달라지는 연주의 결에 귀기울이는 모습에서는 클래식 팬으로서의 진지한 애정이 가득 묻어난다.

“오래된 먼지투성이 레코드를 싼값에 데려와 최대한 반짝반짝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내게 무엇보다 큰 기쁨이다”라며 아날로그 레코드의 물성을 예찬하는 작가의 태도는 분야를 막론하고 무언가에 애착을 가지고 수집해본 사람들, 나아가 독자 입장에서 그의 소설을 오랫동안 애독해온 사람들에게 색다른 공감대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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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지로 말해 'LP판은 애정을 가지고 대하면 그만한 반응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렇듯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이 내게는 더할 나위 없다.
재킷 크기가 CD보다 훨씬 크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손에 들고 바라보기에 딱 좋은 크기다. 마음에 드는 레코드 재킷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 안에 있는 음악의 세계에, 또다른 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어쩌면 나는 물건의 형태에 너무 집착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렇게 돼버렸으니 별수없다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인생이란 거의 의미 없는 편향의 집적에 지나지 않으니까. p12~13


이 빈 팔중주단 멤버의 재킷 속 베토벤의 얼굴은 꽤나 까다로워 보인다. 왠지 모르게 눈빛이 형형하다. 정말로 눈을 형형히 빛내면서 이런 곡을 슥슥 써내려갔는지도 모르겠다. 천재가 어떤지 나는 잘 모르니까. 그래도 분명 모차르트는 이렇게 무서운 얼굴은 하지 않았겠지. 친근하게 다가가는 곡이라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베토벤 스스로는 그 점이 불만이었던 모양이다. ‘이런 건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니야’ 하듯이. 마치 어쩌다 자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버린 본격문학 작가 같다. p86

젊은 시절 처음 말러 교향곡을 듣고 ‘이렇게 뭐가 뭔지 모를 기묘한 음악을 대체 누가 좋아서 듣는담?’ 하고 고개를 갸웃했던 기억이 난다. 소리의 흐름이 잘 파악되지 않았다. 그전까지 전혀 들어보지 못한 유의 음악이었으니까. 그러나 듣다보니 완전히 그 소리에 물들어버려서, 지금은 열심히 귀기울이게 되었다. 신기한 일이죠. 시대는 변한다. 감각도 변한다. p129


고백하자면 내가 제일 자주 들은 음반은 요요마가 참여한 클리블랜드SQ의 CD인데, 왜인가 하니 늘 이걸 들으면서 소파에서 낮잠을 잤기 때문이다. 절대 따분한 연주는 아닌데 듣다보면 이상하게 졸음이 쏟아져서 새근새근 곤하게 잠들어버린다. 다른 연주에서는 그런 일이 없는데… 아무튼 그런 이유로 제법 애용했다. 괜찮으면 한번 시험해보시길. p251


내 꿈은 실력 있는 현악사중주단을 개인적으로 고용해서 이 K.421의 연주를 눈앞에서 듣는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느냐면, 옛날(고등학생 시절) 텔레비전 드라마 〈배트맨〉에서 주인공 브루스 웨인(배트맨)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정장을 입은 현악사중주단이 이 곡을 연주하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다. ‘멋있다’고 감탄하면서, 나도 나중에 부자가 되면 꼭 저렇게 해봐야지 생각했다. 아쉽게도 아직 그 정도 부자가 되지는 못했다. p317

보스턴 교향악단 음악감독이 되고 해를 거듭할수록 그의 음악은 보다 충실해지고 스케일이 커지고 깊이를 더해갔지만, 지위가 올라감에 따라 당연히 책임도 무거워진다. 많은 사람들을 통솔하는 관리자로서의 의무도 늘어난다. 높은 곳에 오를수록 바람은 거세지는 법이다. 그에 비해 젊은 날의 세이지 씨는 실로 마음 편한 처지였다. 눈앞에 찾아온 기회를 잡고, 그 파도에 올라타고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이 시기 그의 연주는 그런 자유로움과 그곳에서 솟구쳐나오는 순수한 기쁨으로 가득하다. p354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


좋아하는 작가중의 하나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이 나왔다.

그의 팬이라면 달리기외에도 그의 취미생활중에 하나가

레코드를 수집하고 음악을 듣는 걸 좋아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으리라...


지난 무한 사랑 티셔츠 이야기엔 나름 찐팬이라 하면서도

진짜 'T'로만 채워진 책에 살짝 실망감이 느껴진것도 사실인데

이번책은 대부분이 처음보는 앨범이고 모르는 곡들이 대부분인지만

올해부터 클래식음악을 좀더 찾아 듣고 공부하고 싶던 내게

충분히 멋지고 고마운 책이 될 듯 하다.


오만년전,

학교방송국 응시원서에 가장 많은 지휘자와 곡들을 적어

방송국PD로 뽑혔다는 선배님 말씀에

한껏 고무되었던 기억은 추억이 되었고

근간엔 아침 FM라디오의 클래식프로그램외엔

찾아 듣진 않았던 것 같다.


하루키도 젊은 시절 처음 말러 교향곡을 듣고 

'기묘한 음악을 대체 누가 좋아서 듣는담?' 했다고 하는데

예술의 전당에서 비올리스트 용재 오닐의 말러 시리즈를 들으며

졸음을 참았던 순간이 생각나 미소지어지기도 하고

생각만하고 있던 쇼스타코비치 피아노협주곡은

핑계김에 LP말고 CD로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


딴소리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를 영화화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동명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가 국제장편영화상을 받았다.  

수어연기가 인상적이었던 박유림을 비롯해 배우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감사인사를 전할 때 다시 한 번 뒤늦게라도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아직 '코다'도 못봤는데...ㅠ.ㅠ

'코다'

'벨파스트'

'킹리차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파워 오브 도그'

'엔칸토'도 다시 봐야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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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엄마대로 행복했으면 좋겠어
지은심 지음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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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심 에세이. 제목은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대사이다.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삶에서 행복을 찾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말이다. 부모님과 선을 둔다고 해서 가족의 관계가 끊어지는 건 아니다. 저자는 가족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오히려 그들을 응원하는 여유를 되찾는다.

<인터넷 알라딘제공>

 

 

나만 가족인가? 엄마, 아빠도 가족인데 왜 나만 이해를 해줘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가족이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싫은 부분까지도 안고 살아야 하는지 나이가 들수록 의문이었습니다. 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닌 우선 회피를 목적으로 조금 떨어져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본가와 넘어지면 코 닿는 거리에서 자취를 시작한 지, 3년이 다 되어갑니다. p7


엄마가 있는 그대로 당당하지 못할 이유도, 걱정할 이유도 전혀 없다. 엄마는 예전 회사를 다녔을 때에도 충분히 멋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한 줄 아는 멋있는 사람, 주어진 환경 내에서도 행복을 찾을 줄 아는 멋있는 사람. 그런 그녀의 행복을 ‘엄마’라는 역할이 갉아먹은 것 같다. p40


나는 가족 간에도 거리가 필요하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 <미어 마이 프렌즈> 속 고현정의 '엄마는 엄마대로 행복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나문희가 남의 편인 남편과 가족이라는 이유로 묶여 있지 않고 갈라서서 흑맥주 하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울해하는 엄마에게 남 일처럼 말하듯, 엄마의 옛날 취미들을 읊으며 이런저런 해결책을 늘어 놓았다. p45


대화가 없을 뿐, 아빠와 데면데면한 사이는 아니다. 아직도 아빠에게 잘 안기기도 하고 팔짱도 끼고 손도 잡고 이렇게 큰 덩치로 아빠 무릎에 앉기도 한다. 이런 스킨십이 부녀 사이에 존재하는 소통의 한 가닥 수단이다. 밀도 높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부녀 사이가 남이 되지는 않는다. 잘 맞지 않는 방식은 피하고 잘 맞는 방식으로 소통할 뿐이다. p93

“꽃송이! 여기야!”
비디오테이프 영상의 총 러닝타임이 3시간은 되지만 그중에 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들은 내 애칭이었다. 그 애칭과 함께 지난날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집 안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꽃송이라 불러달라는 막내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꽃송이가 아니라 꽃받침이라며 놀렸던 언니들까지도 다 기억이 났다. p189 



엄마...

가만이 불러보는 엄마...

입 밖으로 내어놓는 것 만으로도 눈물이 나는 그 단어 엄마...


'엄마는 엄마대로 행복했으면 좋겠어'


책리뷰를 잠시 미뤄두고 있는 요즈음이지만

이책은 제목부터 내 마음을 이끌었다.


걱정되는 나쁜 딸과 재미없는 착한 딸 사이에서 고민하며

가족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 자취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딸인 저자의 속깊은 이야기는

'비밀이 많은 딸을 둔 엄마편'에서

'배신자'를 마주한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딱 내가 그랬으니까...


옷과 인형으로 가득찬 꼬맹이 방은

긴 머리카락은 여기저기 뭉쳐 굴러다니는 건 기본

자고난 이불에서 몸만 쏙 빠져나와

산더미 옷무덤속에서 용케 옷을 찾아 입고

출근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차려준 저녁을 먹고는 피곤하다며 

다시 침대와 한 몸이었던 아이였는데

저자가 독립하고 처음 엄마가 오셨을때

머리카락 하나 없이 깨끗한 바닥과,

물건들이 칼같이 정돈된 집안을 보자마자

엄마는 반자동으로 '배신자'라 말했다는 것처럼

나도 꼬맹이 집을 처음 갔을 때

쓸고 닦고 각맞춘 정리정돈된 방의 낯선 풍경에 더해

돌돌이 들고 머리카락을 줍줍하는 것을 보며

나도 모르게 '배신자' 했던 기억과 함께

다른집도 우리집과 다르지 않음에 안도하고

크고 작은 위로도 되었던 것 같다.


한동안 안좋았던 아빠와의 사이도 다시 회복되었고

그 어느때보다 열심히 일하고 자신의 집을 꾸미며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친구들과 나누는 행복을 알아가는

아이를 응원하는 내 마음처럼

꼬맹이도 엄마는 엄마대로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걸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한동안 집에 오지 않는다고 서운하고 허전했던 마음이

조금은 이해도 되고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빌리 조엘의 Honesty 대신

꼬맹이가 좋아하는 비욘세의 Honesty를 들어 봐야지.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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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은둔의 역사 - 혼자인 시간을 살아가고 사랑하는 법
데이비드 빈센트 지음, 공경희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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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역사를 연구한 저자가 약 400년 동안의 혼자 있기를 최초로 다룬 대중서로, 우리에게 특별한 시간여행을 권하는 책이다. 수 세기 동안 사람들이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왔고, 사랑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내가 연결되며 흔치 않은 위로를 느끼게 된다.

눈부신 범위의 문학과 자료를 아우르며 변화하는 혼자의 역사를 세세히 따라간다. 무인도에 고립됐던 로빈슨 크루소는 속편에서 런던으로 돌아와 자신은 “수많은 인파 속에서 진정한 혼자”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사람들 속에서 혼자만의 여유를 갖는 일 또는 집단에서 벗어나 혼자 된 시간을 즐겁게 마주하는 법은 현재까지도 우리의 관심사이다. 그 방편으로 독서, 우표 수집, 자수, 애완동물의 유행부터 단독 세계일주라는 극한의 은둔까지 각종 여가활동이 탄생하고 취미로 자리 잡는 과정이 펼쳐진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이 책의 서장에서는 '고독에 관한 세기의 고전'이 다룬 18세기와 이전 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치어만은 책 전반에 걸쳐 '혼자의 장점들'과 '집단의 편리성과 축복' 사이 균형을 잡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혼자나 집단생활 각각 따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가 하면 한쪽이 다른 쪽 때문에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인간에게 과연 적정한 상태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제부터 살피려고 한다. 지난 세기 동안 사람들이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대했는지 파악하고자 한다. 지금 겪는 ‘외로움이라는 병’과 대인관계에 대한 불안은 사실 2,000년 넘게 시와 산문에서 나타난 딜레마의 변주이기 때문이다. p13


낡은 옷을 걸치고 길에 나서면 적절한 방식으로 세상의 적절한 곳에 들어서게 된다. 도보 여행이 단지 장난, 소풍, 놀이일지라도. 신선하고 자유로운 공기 속으로 들어간다. 일상생활의 말 없는 가식에서 해방된다. p233


"고통 받은 3년간 강렬한 희열의 순간들을 경험했습니다. 작가님의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를 읽을 때가 그런 순간이었지요. 저는 이 책에서 희망을 가질 이유들을 발견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님의 목소리, 존재감이었어요. 잔인한 무채색 세계를 묘사하는 작가의 환희와 그것을 너무도 우중충하고 무기력하게 표현하는 희열. 그게 거의 몸으로 느껴지지요.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고, 난 더는 혼자가 아닙니다. 감옥에서 더 이상 버림 받지 않았습니다." p261


안전하고 생산적인 고독은 선택이 만들어낸다. 개인은 자유롭게 고독한 상태로 들어가고 나올 수 있어야 한다. 치머만은 '외로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으나, '파괴적인 고독'이란 표현이 현대에 사용하는 외로움과 같은 뜻이다. p295


"발전하는 기술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활 방식의 변화에 대응하면서, 우리가 고독과 맺는 관계는 계속해서 변한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초월한 고독의 의미가 존재한다. 온갖 논의가 있어도, 은둔과 사회성에 큰 변화가 생겨도, 고독의 경험에는 뚜렷한 핵심이 남아 있다. 1791년 요한 치머만이 고독을 두고 “자기 회복을 위한 성향”이라고 한 정의는 우리 시대에도 유효하다. p323


어떤 측면에서 이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의 역사였다. 혼자만의 ‘평화와 고요함’은 역사적으로 쉽사리 간과되지만, 과거 대다수 사람들이 집이나 직장에서 노동을 마치고 회복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혼자 있기의 다양한 형태를 추적해 살펴보면, 평화와 고요를 누리는데 신체 활동이 중요하단 점을 알 수 있다. 불편한 다리로 유럽을 누빈 워즈워스와 런던 거리를 정처없이 활보한 '경쾌한 풋내기' 디킨스부터 북적대는 집에서 가끔 개 산책을 나온 이들까지, 몸을 움직이는 동안 마음이 가라앉고 정리됐다. 역사에서 방치됐지만 이 책에서 되살린 조용한 취미들도 마찬가지였다. p325




신간코너를 기웃거리다 발견한 책

'낭만적 은둔의 역사'


설명절만 지나면 큰 딸 방을 서재로 꾸미고

한편엔 이젤을 세워 그림도 열심히 그리고

아직 완성하지 못한 곡 '원스'도 제대로 연주해보리라 다짐했었는데

바쁜시간을 보내고,

미뤄두었던 병원투어까지 마친 지금의 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매일하던 포스팅도 망서리게되는

무기력에 빠져있다. ㅠ.ㅠ


주말에 잠시 들렸던 큰 딸의 신혼집은

사위와 딸의 취미를 반영한 듯

마치 보드게임 카페처럼 꾸며

재밌게 잘 지내는 듯 보이니 안심이고,

집과 회사만 오고갔다는데도

코로나 확진으로 애를 태웠던 꼬맹이도

이젠 회복되어 온갖 밀키트로

요리솜씨(?)를 뽐내며 입맛을 찾고 있다니

정말 다행이다.  


걷기

독서

우표 수집

자수

애완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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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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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의

평화와 고요함...

내게도 곧 찾아와 주길...



“고독 속에서 각자는 혼자이면서 외롭지 않다.

왜냐하면 긍정적인 방식으로 자신과 행복하게 지내기 때문이다.”

그런 몰입이 부족하면 외로움이 시작된다.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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