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의 단어 - 당신의 삶을 떠받치고 당신을 살아가게 하는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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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마음을 누일 곳이 필요하다. 아무리 내면이 강인한 사람도 홀로 감당하기 힘든 고난을 겪으면, 친밀한 타인이나 눈에 익은 무언가에 마음을 기대기 마련이다. 실로 그렇다. 삶이 흔들리는 순간 우리의 마음을 지탱해주는 건 낯설고 화려한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익숙하고 평범한 것들이다. 예컨대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읽고 쓰고 말하고 떠올리는 보편의 단어야말로 삶을 떠받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지 모른다.

입소문이 만든 밀리언셀러 『언어의 온도』와 스테디셀러 『말의 품격』으로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한 이기주 작가가 산문집 『보편의 단어』를 들고 우리 곁을 찾아온다. 그간 섬세한 시선으로 일상에 숨겨진 삶의 본질을 길어 올린 이기주 작가는 이번엔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평범한 단어들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사랑과 미움, 행복과 불행, 희망과 후회, 생명과 죽음 등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작가가 행간에 심어놓은 묵직한 질문을 이정표 삼아 책 속의 길을 산책하다 보면, 각자의 삶을 떠받치는 단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안에 깃든 삶의 풍경이 어떠한지를 새삼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살다보면 새롭고 낯선 무언가가 일상을 덮쳐 흙처럼 쌓이는 날이 있고, 익숙한 것이 세월의 바람에 사정없이 깎여 나가는 날도 있다. 새로운 것과 친숙한 것 모두 삶에 보탬이 될 수 있지만 일상을 떠받치는 건 후자가 아닌가 싶다. 낯선것은 우릴 설레게 만들기는 하지만, 눈에 익거나 친숙하지 않은 탓에 마음을 편안히 기댈 수 없다.

삶의 무게에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날, 마음을 지탱해주는 건 우리곁에 있는 익숙한 것들이다. 예컨대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결에 사용하는 보편의 단어야말로 삶을 떠받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지 모른다. p12

사람은 마음을 잃어버리면 자칫 생의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홀로 불행 속에 던져진 진것 같은 기분이 들거나 잡스러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지않을 때일수록, 남들처럼 행복해지려 애쓰기보다 마음의 균열을 메우고 일상을 정돈하는데 공을 을들여야 하는지 모른다.

불행의 반대는 행복이 아니라 일상에 가깝다. p17

인간관계에 대한 소신이 어그러지며 흔들리던 날, 나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연락처를 들여다보았다.

언제 어디서 전화번호를 교환했는지 알 수 없거나 심지어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이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이날 난 오랜 기간 소식을 주고받지 않은 사람의 연락처를 미련 없이 삭제 했다.

나는 바람이 빠져 쪼그라든 풍선 같은 연락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다짐했다.

'앞으론 웬만하면 휴대전화에 낯선 이름과 전화번호를 욱여넣지 말아야지. 새로운 사람과 얼굴을 익히며 관계를 확장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의 인연에 집중해야지. 그런 태도야말로 날 귀하게 여기는 방법일 테니까! p103~104

쩌면 우린 머리와 마음에서 운이라는 모호한 세계를 걷어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행운과 불운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고, 어쩌다 운이 밀려와도 필요 이상으로 들뜨지 않을 수 있으며, 하루 아침에 운이 떨어져나가더라도 지나치게 낙담하지 않을 수 있다. 한마디로, 운에 집착하지 않아야 운에 구애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p256

감사

세상은 살만하다고 다시 믿게 하는 주문.

지난 연말,

조카에게 안부메세지와 함께 뜬금 없지만 연말선물이라며

인터넷서점 키프트카드가 선물로 왔다.

어려서부터 초등학교선생님인 엄마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

넘 애쓰고 어른스러워서 안쓰러웠던 아이인데

이모생일은 물론 아플때, 마음이 힘들때도

따뜻한 안부와 함께 생각지도 못한 선물로

내게 힘을 주는 고마운 하영이...

고마운 마음을 담아 어떤책을 고를까 고민하다가

새로 시작하는 수채화관련 책 한권과

'언어의 온도', '글의 품격', '그말이 내게로 왔다' 등으로

이미 잘알려져 있는 이기주 작가의 '보편의 단어' 신간소식에

미리 예약주문하고 지난주에 수령했다.

비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 중엔

비 오는 날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호젓한 카페에서 빗소리와 함께 커피마시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며,

그저 비 내리는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이 이처럼 정교함을 요할진대,

사랑을 주고 받는 과정은 오죽할까 싶다.

우린 사랑에 빠지거나 심지어 벗어날 때도 상대를 향해

감정의 촉수를 세워 사랑의 생성과 종말을 감지한다.

섬세하고도 정교하게. p138

비오는 주말,

조용한 재즈음악이 흐르는 별다방에서

여전히 부러운 마음으로 책 한 권을 다 읽고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상하지 못한 삶에 지치고,

고요엔 또 불안한...

작가는 이런 내게

'불행의 반대는 행복이 아니라 일상에 가깝다.'

라고 이야기 한다.

내 마음을 나조차 어쩌지 못하고 힘들 때

내 편에서 객관적으로 얘기해 줄 누군가가 필요할 때

다시 이 책을 꺼내들게 될 듯 하다.

당신의 삶을 떠받치고 당신을 살아가게하는...

나도 적어보고 싶은 나만의 보편의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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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체조 닥터 이라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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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는 본격 문학부터 대중 문학을 아우르는 일본의 대표 작가로, 《남쪽으로 튀어》, 《양들의 테러리스트》 등의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팬층이 두꺼운 작가다. 명실상부 그의 대표작인 ‘공중그네 시리즈’는 어딘가 이상한 정신과 의사 이라부와 어쩌다 그의 마수에 걸려버린 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특유의 편안한 웃음과 따뜻한 메시지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며 일본에서 나오키상을 수상하고 290만 부가 판매되었으며, 국내에서도 1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수많은 독자가 인생책으로 손꼽은 그 시리즈가 17년 만에 다시 독자들을 찾는다. 그동안 후속편에 대한 거듭되는 요청에도 고사해왔던 오쿠다 히데오가 마음을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팬데믹 이후 계속되는 극심한 혼란과 불안을 마주하며 ‘이라부라면 어떻게 반응할까?’ 하는 궁금증에서 닥터 이라부의 귀환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초긴장 시대를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에게 적시에 찾아온 반가운 변심이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자네 별명이 시청률 귀신이라고 하더군. 뭐, 방송인답고 좋긴 한데, 숫자에 너무 일희일비하다 보면 전체를 놓치게 돼. 무슨 일이든 지상주의는 안 좋아. 힘을 빼는 자세도 필요하지. 그 의사 선생한테 가서 진찰이라도 한번 받아보는 게 어때? 이라부 선생이라고 했나? 여하튼 그 선생이 나오면 묘하게 치유가 되더군. 생각해보면,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거겠지. 코로나 우울증의 특효약은 힘을 빼는 걸지도 몰라. 역시 정신과 의사는 달라. 어쩌면 대단한 명의가 아닐까. 하하하!”

사장이 그렇게 말하며 유쾌하게 웃었다. 일단은 기분이 좋아보여서, 게이스케는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미야시타는 틱증상이 멈추지 않아 계속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p70

“후쿠모토 씨의 과호흡증후군의 원인. 알아냈어.”

“뭡니까?”

“말하자면 분노 조절이 안 되는 거야, 후쿠모토 씨의 경우는.”

가쓰미는 그 지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노 조절은 최근에 매스컴에서도 자주 듣는 말이긴 하지만, 툭하면 화를 내는 사람들에 대한 상담의 차원에서 쓰이는 말일 터였다.

가쓰미의 의문을 눈치챘는지, 이라부가 “금방 화를 내는 것도 문제지만, 제대로 화를 안 내는 것도 문제거든”이라고 덧붙였다.

“이건 일본 사람에게 특히 많이 나타나지. 타인의 규칙 위반이나 부도덕한 행동을 봐도 대립을 피하기 위해 입을 다물어버린다. 그렇게 게속 분노가 쌓여서, 결국은 자기 안에서 폭발해버리는 거지. 후쿠모토 씨의 과호흡이나 공황장애는 거기에서 온 거야. 그러니 쉽게 고칠 수 있어. 화를 내면 돼.”

아라부가 황당한 소리를 가볍게 풀어 놓았다. 가쓰미는 말없이 듣고 있었다. p91

“인생에는 승패가 없어. 동물을 보고 배워야 해. 서식지가 확실하게 있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게 생활하잖아? 가령 너구리가 도시로 잘못 들어섰을 경우, 자기는 도시 삶을 극복하고 싶다는 소리를 할까? 올 곳을 잘못 짚었다며 서둘러 돌아가잖아. 도시에서 또 다른 나를 찾자, 그런 발상이 신경증의 근원이야. 앞으로는 너구리가 되어 편하게 살자고. 알겠지?”

그런 말을 듣자, 이번에는 이라부가 너구리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그, 그래도 여러 가지 것을 극복해낸 덕분에 인류는 문명을 손에 넣었을 테고…….”

“어라? 말 좀 하네.”

"그, 그게 맞잖아요. 인류도 처음에는 불을 무서워했을 거예요. 그런데 결국은 그것을 다루게 괬고, 한행지에서도 살 수 있게 되었죠. 그, 그, 그러지 않았다면 인류는 일찌감치 멸종 했을 겁니다."

유야가 말을 더듬으면서도 힘겹게 얘기하자, 아라부가 아이처럼 입을 삐죽 내밀며 "설복 강했네. 분하다-"라고 투덜거렸다. p300~301

"우울한 현대인을 위한 통쾌한 처방"

<공중그네>의 이상하고 유쾌한 정신과 의사 이라부가 17년 만에 돌아왔다.

한때는 일본작가의 책을 정말 많이 읽었었는데

한동안 뜸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장편소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반가왔던 것처럼

공중그네를 재미있게 읽었던터라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라디오 체조'도 기대를 안고 주문했다.

"타인의 규칙 위반이나 부도덕한 행동을 봐도 대립을 피하기 위해 입을 다물어버린다.

그렇게 게속 분노가 쌓여서, 결국은 자기 안에서 폭발해버리는 거지.

후쿠모토 씨의 과호흡이나 공황장애는 거기에서 온 거야.

그러니 쉽게 고칠 수 있어. 화를 내면 돼.”

조금의 가벼움과 약간의 대충이 필요한 우리에게

닥터 이라부가 편안한 웃음을 선사한다.

내겐 제목이기도 한 '라디오 체조'가 가장 좋았는데

아마도 내 얘기 같아서이기도 한 것 같다.

참는거 누구보다 잘 하던 나였는데

어느날 부터

타인과의 관계가 불편하거나 불합리한 상황이 오면

식은땀과 함께 과호흡이 시작된다.

죽지는 않을꺼라는 걸 알지만

이런 고약한 병을 앓고 있다는게 부끄럽기도 하고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거나 사람많은 밀폐된 공연장 등

내가 좋아하는 여행이나 공연관람에 그로인해 브레이크가 걸리니

이를 극복하는데 힘들고 자책도 많았던 것 같다.

이런 내게 저자는 이라부의 말을 빌려

참지말고 '화를 내면 돼'라고 충고한다.

우울함의 특효약은 힘을 빼는 것이라고 말한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급하게 해결할 일이 도처에 있는 것도 아니면서

연말내내 너무 긴장하고 힘을 주고 살았다.

힘을 빼고,

화내고 싶으면 화내고,

하고 싶은 일하며 건강하게 사는 일...

그것이 올한해 내가 꿈꾸는 삶이다.

라디오 체조, 준-비!

탄타라탄, 탄타라탄, 타타타타탄,

탄타라탄, 탄타라탄, 타타타타-

난 라디오 체조는 모르니 국민체조라도 해보는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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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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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했던 패트릭 브링리의 독특하면서도 지적인 회고를 담은 에세이다. 가족의 죽음으로 고통 속에 웅크리고 있던 한 남자가 미술관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상실감을 극복하고 마침내 세상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여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선망 받는 직장에서 화려한 성공을 꿈꾸며 경력을 쌓아가던 저자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가족의 죽음을 겪게 된다. 이를 계기로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은 끝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며 스스로를 놓아두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슬픔에서 도피하듯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된 브링리는 매일 다른 전시실에서 최소 여덟 시간씩 조용히 서서 경이로운 예술 작품들을 지켜보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거장들의 혼이 담긴 경이로운 회화와 조각부터 고대 이집트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위대한 걸작들과 오롯이 교감하고, 푸른 제복 아래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동료 경비원들과 연대하는 동안 서서히 삶과 죽음, 일상과 예술의 의미를 하나씩 발견해가며 멈췄던 인생의 걸음을 다시 내딛기 시작한다.

저자의 첫 번째 저서인 이 책은 영미권 유수 언론으로부터 ‘잊을 수 없을 만큼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야기’, ‘슬픔까지도 포용하는 삶에 대한 빛나는 서사’라는 극찬을 받으며 40주 연속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상실의 아픔 속에서 길어 올린 삶과 예술의 의미, 그리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들려주는 저자의 내밀한 고백은 예기치 못한 인생의 소용돌이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버린 이들, 소란한 세상에 지쳐 완벽한 고독을 꿈꾸는 이들에게 잔잔하지만 묵직한 사색의 시간을 선사한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아버지는 일과가 끝난 후 집에 있던 업라이트 피아노를 몇시간이고 연주하곤 했다. 그는 피아노를 사랑했다. 한동안 자동차 범퍼에 '피아노'라고만 적힌 스티커를 붙여 놓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언제나 자신의 재능은 재능 자체가 아니라 즐거움에서 비롯한 부지런함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비록 뛰어난 실력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그가 존경하는 음악인의 양대 산맥인 바흐와 듀크 엘링턴의 음악을 다소 불안정할지언정 수줍어하지 않고 연주했다. 그리고 연주하는 내내 음악의 아름다움을 진심으로 찬양하며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예술가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나의 생각은 분명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p27

아침은 늘 쥐 죽은 듯 고요하다. 더욱이 미술관 문을 열기까지 30분 정도 남겨두고 근무 자리에 도착하는 날이면 말을 걸어 나를 속세로 끌어내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나와 렘브란트, 나와 보티첼리, 나와 실제로 거의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라 믿어질 만큼 강렬한 환영들뿐이다. 메트의 옛 거장 전시관이 마을이라면 주민은 거의 9천 명에 달한다(몇 년이 흐른 후 전시실 하나하나를 섭렵하면서 모두 세어본 결과 정확히는 8496명이었다. 전시관을 크게 확장한 다음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숫자가 되었지만 여기에는 배경에 나오는 아기 천사, 투우장의 관객, 개미 크기의 곤돌라 사공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어떻게 그런 것들까지 모두 셀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면 그건 나에게 얼마나 시간이 많았는지를 실감하지 못해서다). 주민들은 596점의 그림 속에 살고 있는데 우연히도 거의 그 숫자에 맞먹는 햇수 이전에 붓으로 창조된 사람들이다. p37

한 두시간쯤 흘렀을까. 튼튼한 바위 기반처럼 느껴지는 미술관을 떠나 그 너머에서 존재감을 뽐내며 펼쳐진 소위 현실 세계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부모님과 누이 미아는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로 돌아갔다. 나는 암트랙 기차를 타고 새로운 고향 뉴욕으로 향했다. 내 나이 스믈 다석이었다. 모든 의미에서 어디로 갈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로 미드타운 의 분주한 행인들 틈에 섞였다. 운 좋게 얻은 전도유망한 직장이 있는 마천루의 사무실로는 더 이상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세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종류의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거기서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전혀 움직이고 싶지 않았따. 필라델피나 미술관에서는 침묵속에 빙빙 돌고, 서성거리고, 다시 돌아가고, 교감하고, 눈을 들어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서 슬픔과 달콤함만을 느끼는 것이 허락되었다. p67~69

그즈음 틈틈이 이집트 역사에 관한 책을 읽고 있던 나는 책으로 읽는 것과 예술품을 직접 보는 경험이 얼마나 다른지 다시 한 번 느낀다. 책 속 정보는 이집트에 관한 지식을 진일보시켰지마느 그와는 대조적으로 이집트 파편을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나를 멈추게 한다. 이것이 예술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우리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 다음으로 간단히 넘어갈 수 없다. 예술은 어느 주제에 관해 몇가지 요점을 아는 것이 대단하게 여겨지는 세상을 경멸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점이야말로 예술이 절대 내놓지 않는 것이다. 예술 작품은 말로 단번에 요약하기에 너무 거대한 동시에 내밀한 것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런 것들에 관해 이야기 한다. p87

방문객들이 미술관을 관람하는 방법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몇 가지 대표적인 유형은 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사람 구경도 할수록 는다. 이러한 ‘기예’에 통달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매일 보는 수천 명의 사람 중에서 전형적인 인물들을 골라내는 법을 터득했다. 첫 번째는 ‘관광객’ 유형이다. 대개 사는 지역 고등학교의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카메라를 목에 건 채 무조건 가장 유명한 작품을 찾아다니는 아버지들이다. 이들은 예술에 특별한 관심은 없지만 보는 눈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옛 거장 전시관의 솜씨들을 관람하며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뭐, 액자를 본 것만으로도!” 그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가 세계사 시간에 배운 내용을 작품에 접목할때면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그들은 예술계의 명예의 전당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던 매트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이 한 점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놀라워하면서 실망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정으로 가득 찬 채 미술관을 나선다. p140~141

내 비위를 맞추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두 학생은 내가 하는 말이 옳다는 듯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두상 주위를 돌며 노트에 이것저것 필기를 한다. 그러고 나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이라 고 인사하고는 또 다른신,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두 번째 에피콰니를 만나기 위해 떠난다. 멀어져가는 그들을 보며 나는 기운이 난다. 너무 많은 방문객들이 메트를 미술사 박물관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술에서 배우기보다는 예술을 배우려 한다. 또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는 모든 정답을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이 감히 작품을 파고들어 재량껏 의미를 찾아내는 자리가 아니라고 넘겨짚는다. 메트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나는 이곳의 주된 역할이 미술사 박물관이 아니라는 걸 더욱 확신하게 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관심 영역은 하늘 높이 솟았다가 지렁이가 기어다니는 지하 무덤까지 내려가고, 그 둘 사이의 세상에서 사는 것이란 어떤 느낌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거의 모든 측면과 맞닿아 있다. 그런 것에 관한 전문가는 있을 수 없다. 나는 우리가 예술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가까이에서 이해하려고 할 때 비로소 예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믿는다. 저 아이들이 과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길. 그러기 위한 좋은 출발을 한 것 같다. p296

10년전, 배치된 구역에서 처음 섰을 때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었다. 때때로 삶은 단순함과 정적만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도 있다. 빛을 발하는 예술품들 사이에서 방심하지 않고 모든 것을 살피는 경비원의 삶처럼 말이다. 그러나 삶은 군말 없이 살아가면서 고군부투하고,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기도 하다.

5시 30분이 되자 나는 클립으로 부착하는 해진 넥타이를 떼고서 중앙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p325

꼭 가보고 싶은 미술관 중 하나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을 경비원으로 근무하며 사랑하는 형을 잃은 상실감을 극복하고

일상과 예술의 의미를 하나씩 발견해가며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힘을 얻는 모습이 담겨져 있는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읽고 있다.

책으로만 만나보던 그림을

소장되어 있는 미술관에서 압도되어 바라보던 감동의 순간을 잘 알고 있기에

더 몰입하며 읽었던 것 같은데

지난해 생각지도 못한 유방암 수술로 몸도 마음도 지쳐있는 상태라

가족들에 관련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았고

믿고 의지하던 형이 본인의 결혼식날 세상을 떠나고

느꼈을 그 허망함 상실감이 내게도 그대로 전해져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할 수만 있다면 메트로폴리탄 개장시간에 입장해 끝날 때까지

그곳에 있어 보고 싶어졌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경비원

원래 내꿈은 귀여운 할머니였는데

책을 읽다보니 미술관 경비원이 되어 보고 싶어졌다.

꿈꾸는 건 괜찮겠지?!... ^^;

'때때로 삶은 단순함과 정적만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도 있다.

빛을 발하는 예술품들 사이에서 방심하지 않고 모든 것을 살피는 경비원의 삶처럼 말이다.

그러나 삶은 군말 없이 살아가면서 고군부투하고,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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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순삭 한국사 - 보기만 해도 잡힌다! 한눈에 들어오는 가장 짧은 한국사 여행
이정균 지음 / 포르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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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여행하려면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아이들이 시간을 보내며 학습할 만한 요소는 있는지, 주차장은 있는지, 입장료는 얼마인지, 교통이 편리한지 등이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5분 순삭 한국사》의 저자는 전국 팔도의 유적지에 직접 다녀온 후, 아이들과 함께 주말 나들이로 다녀올 만한 35개의 대표적인 유적지를 뽑아냈다.

막상 아이들의 공부를 위해 유적지에 가도 해 줄 이야기가 없어 답답한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부모들을 위해 한국사 공부의 기초가 되는 대표 유적지와 아이들이 호기심을 느낄 만한 역사 사건들을 담았다. 사전 지식 없이 유적지 탐방하는 것보다, 가기 전에 5분만 투자해 유적지에 얽힌 역사를 파악한다면 더욱 풍부한 여행이 될 것이다. 이 책 한 권이면 아이들에게 역사 가이드에 버금갈 정도로 유익한 정보를 지루하지 않게 전달할 수 있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전주 한옥마을을 가로지르고 있는 도로는 태종로라 불린다. 태종로는 전주성의 남쪽 성벽이 있던 곳으로 현재까지 전해지는 전주성의 흔적은 전주 한옥마을 끄트머리에 자리한 풍남문이 유일하다. 풍남문은 당시 전주성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유산으로, 이곳 전주성에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보관된 어용전이 있었다. 1410년 3대 태종은 전주와 서울, 평양 등 여러 도시에 태조의 어진을 모시는 어용전을 세웠고, 4대 세종은 전주에 있는 어용전의 이름을 ‘경기전’이라고 바꾸었다. p39

안동 하회마을은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고,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우리나라 열번째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하회마을은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으로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니 크게 소란을 피우지 않도록 특히 주의해야 한다. 저녁노을이 지는 가을, 떨어지는 단풍잎과 함께 마을 골목을 거닐다 보면 편안하고 조용한 마을의 청취를 느낄 수 있다. p86


신사임당의 가문인 평산 신씨는 강원도에서 소위 가장 잘나가는 가문이었다. 집안의 어르신들이 대부분 고위 관료 출신이었는데, 신사임당의 가택에서 일하던 노비들만 약 100명에 달할 정도였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글을 쓰고 시를 지었다. 특히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하는데, 약 100년 뒤의 사람인 우암 송시열과 19대 숙종이 크게 감탄할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서 오늘날 신사임당의 이미지는 현모양처의 대명사가 됐으나 조선 시대에는 뛰어난 예술가로 명성이 자자했던 인물이었다. p151

창덕궁은 경복궁처럼 중앙을 정확하게 나누어 똑바로 짓지 않았고, 건물 배치에 대한 기준조차 잡지 않았다. 주거 및 편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매우 실용적인 건물만 배치했다. 궁궐 출입문인 진선문과 인정문 사이 앞마당은 주변 풍경과의 조화를 우선시했다. 그래서 위에서 내려다보면 기존의 직사각형 방식이 아닌 사다리꼴 모양을 하고 있다. p236~237


삼성혈은 제주시 한가운데에 있다. 그러나 연혼포.혼인지.신방굴은 제주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 신화 속 내용대로 동쪽 먼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서귀포시 성산읍 부근에 자리하고 있다. 특히 연혼포의 경우 탁 트인 바다가 시선을 사로 잡으며, 바다를 멍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경치 때문에 물멍(물을 보면서 멍하게 있기)하기 좋은 BEST5 안에는 들어가는 곳이다. 연혼포에서 약 5분 정도 이동하면 삼신이 혼례를 올린 곳인 혼인지가 있다. 그리고 같은 공원 안에 신방굴을 보고 삼성혈과 혼동하곤 하는데, 삼성혈은 전혀 다른 곳임을 명심하자. 삼성혈은 봄이 되면 벚꽃이 만개하는 곳이지만, 이곳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믈다. 넓은 잔디밭과 산책로가 붙어 있어 한적한 곳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들러 보는 게 좋다. p262~263


아주 먼 옛날 하늘나라에는 옥황상제의 딸 설문대할망이 살고 있었다. 설문대할망은 평소 하늘나라 생활에 큰 싫증을 느꼈고, 언제든지 기회만 된다면 하늘나라를 벗어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옥황상제는 하늘의 신들이 인간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기를 바랐기에 누구든지 육지로 내려가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다. p278

제주도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에 설문대할망 이야기가 담겨 있지 않은 곳이 없다. 그래서 오백장군의 어머니가 설문대할망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한라산 3대 성소인 물장오리에 설문대할망이 빠져 죽었다는 등 여러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설문대할망의 이야기는 한라산 동쪽에 있는 제주돌문화공워에도 잘 조성되어 있다.

제주도에서 가장 넓은 백사장이 표선 해수욕장은 설문대할망의 넑을 기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장마철 잦은 침수피해 때문에 설문대할망이 바다를 메워 포구를 만들어 주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때문에 표선 해수욕장 옆에 있는 당케포구를 당케할망의 전설이라 부르기도 한다. 해돋이 장소로도 유명한 곳이니 방문해 보자. p282~283


아이들 어렸을때 김씨의 직장을 따라 군산에서 10여년을 보냈었다.

처음엔 아는이 하나 없는 낯선 타지에서 꼬맹이를 출산하고

잔병치레하는 두 아이를 엎고 안아 키우는 일이 쉽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오랜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시는

호순님, 호돌님과 선이를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고

책에서도 소개된 군산에서 가까운 익산 미륵사지, 전주한옥마을, 공주 무령왕릉 등

서울에선 접근이 어려웠을 유적지를 다닐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다시 상경했을 땐 이미 아이들이 성장해 학교에 학원까지 바빴고

김씨도 다시 일을 시작한 나도 정신없이 일했던 시기라

그때만큼은 여행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아쉬움이 남는다.


서울은 물론 가까운 경기도 일대 유적지라도 함께 다녀보는건데.... ㅠ.ㅠ

안동하회마을 방문시 분명 들었겠지만

이미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는 하회탈 가운데서

유일하게 턱이 없는 이매탈에 대한 이야기처럼

재미있는 지역 설화도 재미있고 순창고추장 등

음식의 역사를 알게 되는 것도 흥미로왔다.

최대한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찾기 쉬운 곳으로 정했다는

저자의 배려가 돋보이는 이 책은

이번 가을에 노랗게 수놓은 듯 황홀한 단풍든 풍경을

원없이 볼 수 있었던 영릉을 다시 방문후

이천쌀밥을 먹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아마 가장 먼저 가볼곳은

다시 제주의 삼성혈과 표선해수욕장이 아닐까 싶다.

봄이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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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맛 - 인문학이 살아있는 도시여행 큐레이션
정희섭 지음 / 에이엠스토리(amStory)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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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상이 반복되며 찾아오는 지루함을 새로운 장소에서 잊을 수 있고 여행지에서 얻은 에너지로 다시 지루한 일상을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어서가 아닐까? 여행을 위해 시간을 어렵게 비운 뒤에 해야 하는 건 여행 계획이다. 여행지의 근사한 관광지를 가보기 위해 열심히 검색해보지만, ‘꼭 방문해야 하는’이라는 비슷한 제목들의 포스팅에는 비슷한 관광지만 가득 있다. 다른 이들이 가는 여행지를 생각없이 따라 방문하다 보면 나의 여행지는 다시 일상이 되어 여행지에서조차 권태로워질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여행지에서 어떤 것을 보고 느끼고 올 수 있을까? 《도시의 맛》은 도시를 중심으로 공간, 역사, 영웅의 탄생, 위대한 자연 등 우리의 삶과 맞닿아있는 12개의 키워드를 선별해 69개 도시의 이야기를 풀어낸 여행 인문학이다. 덴마크대사관과 글로벌기업에서 일하며 59개국 370여 개의 도시를 여행해 온 저자는 수많은 도시들을 돌아보며 자신의 경험을 인문학과 연결해 나라가 아닌 도시여행의 묘미와 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주며 낯선 도시가 지닌 스토리를 이어나간다. 질서와 무질서, 아름다움과 추함과 같은 양가적인 매력이 들끓는 도시에서 다양한 매력을 느낀 저자는 글 말미에서 이 도시에 왔으면 하는 이들을 떠올린다. 저자의 추천을 따라 열거되는 도시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다음에 떠나야 할 여행지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제품들이 기존의 제품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봄을 통해 탄생되는 것처럼 새로운 시각을 통해 사물을 바라본다면 결국 일상의 큰 변화를 가져온다. 일상에서의 공간, 여행에서 만나는 도시들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여행지가 새로움을 선사하는 것은 찰나일 뿐, 결국 여행지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따라 새로움의 정도가 달려있다. 인문학적인 시선을 바탕으로 도시의 숨겨진 이야기를 전하는 이 책은 당신에게 도시 여행의 새로운 관점을 선물할 뿐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사이트를 선물한다. 또한 짧은 호흡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도시의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여행을 떠나지 않더라도 일상을 환기시킬 수 있다는 것 또한 이 책의 장점이다. 이 책을 통해 특별하지 않은 도시는 특별해지고 특별한 도시는 더욱 특별해질 것이라 확신한다. 여행의 활력이 더 이상 삶에 큰 힘을 주지 못할 때 《도시의 맛》은 그 권태로움을 물리쳐 줄 신선한 자극제가 될 것이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이런 순간을 마주하게 되면 여행은 계획이 아닌 발전의 단계로 넘어간다. 발견의 사전적인 뜻은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거나 아직 알려지지 아니한 사물이나 현상, 사실 따위를 찾아냄'이다.

무언가를 발견하려고 여행을 떠난 것은 아니었지만 매 순간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여행이 되었다. 계획한 것을 계획한 대로 얻지 못하고 새로운 발견으로 채워가는 것이 여행이다. 나의 도시 시이야기는 계획에서 벗어난 발견으로 탄생한 것들이다. p10

이 세상에서 가장 척박하고 누추해 보이는 예루살렘,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다른 곳을 더 비옥하고 고귀하게 돋보여주는 예루살렘, 모두가 부와 명예와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을 때, 사람들의 발을 씻기러 이 땅에 오신 구세주의 모습에서 예루살렘의 복을 생각했다. 복이란 스스로 낮추는 자에게 먼저 오는 것이리라. p19

차분히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루앙프라방여행을 권한다. 기다림은 결코 늦게 가는 것이 아님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기다리는 것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고 루앙프라방은 천천히 말한다. 그리고 인생은 유한한데 왜 빨리 가려 하는지 이 도시는 우리에게 넌지시 묻는다. 빨리 간들 무엇 하리. p39

드레스덴은 큰 상처를 입었지만 다시 힘차게 일어섰다. 사람들은 드레스덴을 독일의 피렌체라 부른다. 하지만 이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드레스덴은 '독일의 매화'다. 매화 중에서도 설중매다. 전쟁의 비극을 극복한 드레스덴의 모습은 혹독한 겨울에도 꽃이 피는 설중매와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p59

이 세상 모든 피아니스트의 우상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심장만이 옮겨져 있다. 심장은 파격적인 선율로 피아노를 연주했던 몸의 나머지 부분을 기다리고 있다. 심장의 주인공은 프레데리크 쇼팽. 그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바르샤바의 수호신이며 폴란드인을 불타오르게 하는 정신적인 지주다. 처절하게 파괴되었던 바르샤바는 그의 심장 박동 소리가 홀로 만들어내는 마주르카의 선율 속에 있다.

쇼팽의 심장은 수천만 마력의 엔진이며 이 도시 전체를 이끄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p77

체코의 상징 프라하 성, 매 시각 인형들이 나와 종을 울리는 천문시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클레멘티눔, 민주화 운동의 성지인 바츨라프 광장은 프라하의 보배들이다.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되기 이전인 1989년 바츨라프 하벨은 프라하의 봄을 좌절시킨 공산정권을 무너트리고 새로운 지도자로 선출되었다. 2011년 타계한 그는 통찰력을 가진 지도자로서 체코를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발전시켰다.

프라하를 어두웠던 과거 아닌, 영화의 제목이 아닌, 도시로서 인식하기 시작했다. 프라하는 동유럽 최고의 존재감을 자랑하는 도시다. 유럽을 여행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권한다. p263

두 개의 거울이 생겼다. 부다라는 겨울은 페스트를 비추고 페스트라는 거울은 부다를 비춘다. 부다의 아름다움을 페스트를 통해 확인하고, 페스트의 다채로움을 부다를 통해 확인하는 화합의 거울이 탄생된 것이다. 화합은 단순한 덧셈이 아니다. 화합이 만들어낸 모습은 부다페스트를 동유럽의 보석으로 빛나게 했다. 부다와 페스트는 세체니 다리를 통해 화합을 넘어 소통을 시작한 이후부터 '도나우강의 진주'라는 명예로운 애정을 부여받았다. 화합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부다페스트 여행을 권한다. 세체니 다리가 큰 선생님이 되어 줄 것이다. p327

도시속 새로운 발견으로 채워가는

도시여행 인문학

'도시의 맛'을 읽고 있다.

59개국 370여 개의 도시를 여행해 온 저자의 경험을

인문학과 연결해 도시여행의 즐거움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도시의 숨겨진 이야기에 푸욱 빠져 한 권을 다 읽고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래전,

아빠의 책장에 꽂혀있던 '김찬삼의 세계여행'을 읽으며

세계여행의 꿈을 키우던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학업, 결혼, 육아를 하느라

생각보다 아주 늦게 해외여행을 시작한 나.

지금까지 14개국 30여개의 도시를 둘러보지 않았을까 싶다.

개인적으론 아직 휴양지보단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의 여행을 선호하는 편인데

가끔은 웅장한 자연의 경관에 할 말을 잃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 내게 이 책 '도시의 맛'은 다녀온 도시는 여행의 감동과 기억을 재소환하며

읽었고 버킷리스트에 있던 도시들은 예습하는 마음으로 정독하게 되었다.

인생은 유한한데 왜 빨리 가려 하냐며 천천히 걸어보고 싶은 루앙프라방

독일의 피렌체라는 드레스덴

쇼팽을 만나볼 수 있는 바르샤바

체코의 상징 프라하

동유럽의 보석이라는 부다페스트

각기 다른 매력으로 다가와 상상의 날개를 펼쳤던 순간이

베들레헴에서 가장 거룩한 성탄절을 맞는 저자를

부러워하는 것으로 마지막장을 덮었다.

건강상의 이유로 지금 당장 떠나는 것은 어렵겠지만

동유럽여행을 꿈꾸며 동생들과 다시 여행적금을 시작했다.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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