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장난 - 십대를 위한 눈높이 문학 8 십대를 위한 눈높이 문학 8
이경화 지음 / 대교출판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가학의 즐거움 중에 ‘왕따’ 만한 적절한 예도 드물 것이다. 누군가의 고통을 보며 즐거움을 찾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쾌락은 폭력에 의해 발발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인간 내면의 폭력성을 잠재우기 위해 올림픽을 열었다고 하는데, 현대에 와서는 지나친 폭력성이 언제나 오락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한창 자라날 아이들에게 집단 따돌림 같은 잔인한 행위는 가장 극심한 고통을 안겨주기 마련이다. 심각한 정신질환이나 자살까지 유도하게 만드는 왕따의 심각성, 내면의 폭력이 부른 가장 잔인한 가학이다. 철없는 아이들의 전유물로 여기기 십상이지만, 직장이나 가정, 사회 속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의 무리는 오늘도 존재하고 있다. 왕으로 군림하는 것이 아닌 왕으로 따돌림 당하는 소수의 피해자들의 심각한 우울증과 왕따 증후군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과연 없는 것일까?

  누구나 그렇겠지만, 학창시절 내내 왕따의 직접적 간접적 피해자가 되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무도 말 걸어주지 않는 처절한 상황에 처한 친구를 바라보며 쾌락을 느꼈다거나 안쓰러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가장 잔인한 건 뭐니 뭐니 해도 주도자의 냉혹함이다.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들려주기라도 하듯이 몰인정한 누군가의 잔학이 섬뜩하게만 느껴진다. ‘왕따’라는 소재는 영화, 소설 등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하는데, <지독한 장난>은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출간된 생각할 여지를 많이 남겨두는 소설이었다. ‘다음은 네 차례다.’라는 무언의 공격처럼 무서운 청소년 왕따의 실상을 알기 쉽고 사실적으로 잘 표현하였다.

  강민은 모든 아이들이 두려워하는 독재자의 형상으로 등장한다. 일진이나 짱으로 불리는 불량청소년처럼 보이지만, 번듯해 보이는 그의 가정에서 시작된 문제가 점차 공격적으로 확산된 경우이다. 교수라는 직함을 달고 권위적이기만 한 아버지와 자신에게 무조건적으로 맹목적인 헌신을 쏟아 붙는 철없는 어머니 밑에서 제대로 된 인성이 키워질지 만무하다. 결국 강민의 억압된 욕구는 폭력의 다양성으로 나타나는데, 자신이 주도하여 왕따를 만들어 괴롭히는 일이 유일한 즐거움이다. 허나 어떤 방법으로든 어디 론가로 도망치고 싶었던 내면의 비겁함이 부른 반항이었다. 자신이 당한 강압의 모욕을 타인에게 전가시키면서 자기만족을 얻는 뻔뻔함이 강민이라는 캐릭터에게 부여되어 있었다.

  강민에게 당하는 왕따의 피해자 혜진과 준서는 입장이 전혀 다르다. 혜진은 특유의 도도함으로 자신의 능력껏 위기를 모면했고 준서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냉혹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주위의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는 게 더 옳은 방법이 아니었을까? 아니, 어쩌면 준서가 마지막에 깨달은 것처럼 그 위기상황을 벗어난 방법은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도움이 아닌, 자신 스스로만이 개척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반 전체가 나를 왕따 시키는 게 아니라, 내가 반 전체를 왕따 시키는 거다’라는 마음가짐이 중요하지만, 이겨내는 건 결코 말처럼 쉽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더 가슴이 아프다.

  이렇듯 <지독한 장난>은 철부지 꼬마에서 성숙기로 접어드는 중학생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은 왕따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눈길을 돌리게 만들어 준다. 냉혹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는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제, 집단 따돌림. 주위로부터의 도움도 절실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본인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가해자와 피해자의 명확한 구분 없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 올바르게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밝은 아이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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