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마지막 의식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엮음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첫사랑, 마지막 의식>의 모든 작품들을 읽어 보기 전까지 속단은 금물이다. 단편이 갖추어야 할 완벽한 형식에 도전하는 이 작품집이 작가의 데뷔작이라니 매우 놀라웠다. 최근 헐리웃 영화 <속죄>의 개봉으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 '이언 매큐언'은 역자의 말마따나 그의 재능에 비해 불완전한 명성을 차지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간 이언 매큐언의 많은 작품들이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그 영향력은 사실 상 미미한 수준이었고, <속죄> 개봉 이후 더욱 큰 명성을 떨치고 있다. (역시 헐리웃은 위대하다라는 서글픈 사실을 되새기면서) 앞서 읽어본 작가의 장편도 훌륭했지만, 기대감에 읽어 본 기세 등등한 작품 <첫사랑, 마지막 의식> 역시 작가 특유의 색이 짙은 놀라운 작품들이다.

  대체적으로 소설을 읽을 때 처음 10페이지가 책의 전반적인 인상을 좌지우지 하는데, <입체기하학>의 충격이 매우 컸기에 연이어 등장하는 작품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하나 같이 탄탄한 짜음새를 갖추고 있었다. 총 8편에 달하는 짧막짧막한 내용들이지만 그 깊이와 완성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위력적이다. 뭔가 뒤틀리고 불안정한 자아를 갖춘 사람이나 틀림없이 어딘가 불안요소를 하나씩 간직한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위아감은 병적 사회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작품들에서 등장하는 집착, 호기심, 고립, 우울, 연민, 성도착등은 비슷한 결과물들을 쏟아내는데, 강간이나 근칭산간, 영아 살해 같은 비도덕의 산물을 생산해 내거나, 자기파괴의 형태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둡고 음습하고 기괴한 분위기의 소설들이 대부분이지만, <여름의 마지막 날>이나 <첫사랑, 마지막 의식> 같은 뭉롱하게 젖어들게 만드는 고요한 힘을 가진 소설들도 있다. 전반적인 문체는 매우 쿨하다.

  일반적으로 한 작가의 단편집을 읽을 땐 작품의 완성도가 들쑥 날쑥하기 마련인데, <첫사랑, 마지막 의식> 같은 경우는 거의 모든 작품들이 한결 같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꽤 오래 전에 나온 소설인데, 당시 시대상에 맞춰 내용을 접목시켜 읽어 본다면 더욱 큰 재미를 얻을 것이다. 불안정한 자아의 몸부림, 성으로의 도피 같은 사람들의 내면에 공통적으로 함유하고 있는 관념들을 매우 파괴적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예리한 문장들로 표출했다. 이언 매큐언은 참 할 말이 많은 작가이고, 기대보다 더 똑똑한 작가였다고 깨닫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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