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 가난한 사람들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1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 가난한 사람들 : 신발 밑창 같은 인생

  대다수 사람들의 눈에 정의 내려지는 빈곤과 본인이 느끼는 빈곤간의 간극은 분명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 타인들의 시선에 분명하게 구별되는 빈곤의 척도는 찢어지게 가난하여 입에 풀칠 할 여력도 없는 첨예한 상황이 가장 큰 빈곤이라 일컫어질 것이다. 남루한 형색, 무지함에서 오는 불손 혹은 선천적인 비루함은 분명 가난한 죄인에게만 주어지는 상징들이다. 그러나 도스또예프스끼가 <가난한 사람들>에서 대립시키고자 하는 타인과 구별되는 가난의 인식은 '배우지 못한 자들의 지적 빈곤'이다.

  신분의 제약을 받은 채 궁핍함 속에서 뭄부림 치더라도 배움의 정도에 따라 진정한 빈곤함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지적 빈곤과 기근은 분명히 다르다. <가난한 사람들>의 마까르 제부쉬낀은 하급 관리인으로 살아가며 더 이상 가난할 수도 없을 만큼 가난하지만, 본인의 진정한 가난이란, 배우지 못함에서 비롯된 무지몽매함이란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상황을 개선시키고자 하는 의지는 박약된 채로 바르바라만을 무조건적으로 사모하여 그녀에게 모든 순정을 바쳐 헌신 한다. 중년의 늙은이로 그려지고 있는 마까르 제부쉬낀은 가난하고 별 볼일 없는 근성의 소유자로 매우 번잡스럽고, 자기 비하에 사로잡혀 권력 앞에 맹신하게 되는 나약한 인간임으로 묘사된다. '저는 높으신 분들에게 발이나 문지르는 걸레보다도 못한 존재입니다. 제 목을 조이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느껴지는 불안함, 사람들의 수근거림, 야릇한 미소, 비웃음 입니다.' 본인이 자초해서 가난한 자에게서 나오는 특유의 비루함을 선택해 버린 것이다. 그에게선 고귀한 인간의 자존심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제부쉬낀은 바르바라에게 줄기차게 편지를 보내지만, 그 내용은 두서 없고, 장광한 연설만을 늘어놓을 뿐이며, 그녀에 대한 맹몽적인 집착과 헌신만을 강조하는 특유의 상투적인 내용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바르바라는 그런 제부쉬낀에 대한 연민 이상의 감정을 느낄 수 없다. 바르바라의 첫사랑 뽀끄로프스끼는 가난하지만 매우 지적인 문학 청년이었고, 그녀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자신 내면에 숨겨져 있던 알 수 없는 욕망에 이끌려 책을 접하게 된다. 어쩌면 자신이 짝사랑 했던 청년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의식적으로 책을 접했을지도 모르지만, 뽀끄로프스끼가 죽은 후에도 지속적으로 책과 더불어 살았던 점을 비추어 볼 때 분명 지적 유희가 주는 쾌감을 알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제부쉬낀과 바르바라 사이에는 도스또예프스끼가 그려내고자 했던 정확한 지적 능력의 차이에 따른 '빈곤의 척도'가 뚜렷이 구분된다. 작가가 영향을 받았던 뿌쉬낀과 고골리의 작품을 은연중에 나타남으로써 가난조차 막을 수 없었던 문학으로의 해방구를 발견할 수 있다. 서신체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의 수 없이 많은 서신들을 읽어보면서 신발 밑창 같은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그 선택을 자초한 인물의 어지러운 맹목이 선사하는 앞으로의 영향들을 가늠해 보았다.


※ 분신 : 가면을 쓴 두 자아의 충돌

  <분신>은 도스또예프스끼가 그의 작품 평생토록 지속적으로 추구해 나갈 '자아 분열'의 전형을 제시한 작품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인간의 양면성을 리얼하게 분출한 이 작품을 처음 읽을 때는 확연히 드러나는 작품의 속 뜻을 일일이 헤아리기 쉽지 않다. 선과 악, 권력 앞에 헌신 하면서 뒤로는 욕을 해대는 이중적인 간신들의 이율배반적인 음모, 그리고 자기 혐오와 오만한 자존심들이 가학과 피학성으로 대치된다.

  <분신>에서 골라드낀씨는 어느 날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나타난 작은 골랴드낀을 만나게 되는데, 갑작스럽게 자신의 인생으로 침범한 그 남자로 인해 점점 황폐해져 가는, 그리고 점정을 향해 달려 나가면서 더욱 크게 파괴되어 나가는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골랴드낀은 상위 계급에 대해서 질투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본인 역시 자신의 하인에게는 윗사람들이 대하던 의례 그 무례함으로 일관한다. 신분에 대한 열등감에 휩싸여 비열하게 행동하지만 작가는 그의 인간적인 면에 치중을 두고 악인의 이미지 보다는, 다소 어리석은 행동등으로 주변에서 소외되는 나약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분신>이 발표될 당시 평론가들과 독자들의 혹평을 받았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아주 흥미롭게 읽은 작품이다. 두 자아가 총돌해서 갈등을 겪는 혼란속의 심리묘사가 아주 압권이었다. 마지막 장의 의사 끄레스찌얀의 또 다른 분열된 자아의 분신이 등장할 때는 오싹한 소름이 돋음을 느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의 양면성, 그리고 닮고 싶어하는 내면의 은밀한 속삼임이 투영되어 나타난 자신의 분신을 섬뜩하게 재연해 놓은 작품이다. 누구도 환영하지 않았던 골랴드낀이지만, 자신을 흉내낸 '분신 골랴드낀'은 모두가 그를 맹목적으로 따르게 만들고 복종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것은 골랴드낀이 바라던 이상 세계의 분열에 대한 표출이었을 것이다. 비록 거짓과 위선의 가면을 쓰고 있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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