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살아가면서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 자신 이외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만큼 슬프고 무서운 일은 없을 것이다. '로맹 가리'는 '무서워 하는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생각 해 보면 나의 첫 공포는 엄마와 떨어지던 그 순간이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그 순간의 공포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어디 잠시 다녀오겠다고 나를 혼자 두고 사라져버린 엄마는 눈 앞에 똑똑히 보이고 감지할 수 있을 생애 최대의 공포를 선사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 눈 앞에 엄마가 보이면 안도감에 물들어 호흡을 가다듬게 되었다. 마침내 터져나오는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울음과 함께. 엄마를 애타게 찾는 어린 아이들이 의례 그렇듯 과도한 집착과 사랑에의 갈구는 생식과 정체성을 이루는 본능과 직결된다.

  그러면 무엇이 생이 주는 최대의 기쁨일까? '사랑'이라고 답한다면 그 답은 지나치게 진부한 맛이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것이 정답인것을... 그렇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사람 없이는 단 한 순간도 견디지 못한다. 끊임없이 누군가의 관심의 대싱이 되기를 갈망하고, 피하려해도 어쩔 수 없이 나 역시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그 사랑이란 역할의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분명 맛볼 수 잇는 것은 소외라는 갈증, 외로움이라는 최악의 고통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순진무구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지만, 아이의 눈빛에서는 가장 선명한 감정의 순환들을 명확하게 읽을 수 있다. 갓난 아이에서부터 제법 성장해서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청소년기를 거쳐 갈 때까지, 그보다 정직하게 사람의 감정을 느끼고 이입하는 존재는 없다. 어린 아이에 비친 세계, 그것은 마치 투명한 거울에 비친 것 한 점 없는 진실 뿐인 적나라한 세계일 뿐이다. 심지어 거짓과 위선 조차도 그들의 눈에는 유일한 세상의 답으로 인식된다.

  <자기 앞의 생>에서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가 말하고 싶었던 건 도대체 무엇일까? 어린 모모가 상처투성이가 된 채로 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창녀의 아들로 태어나 로라 아주머니에게 맡겨지고, 또래에 비해 지나치게 조숙한 모모의 눈에 비친 세상은 가장 어두워야 할 부분을 오히려 밝게 비춰주고 있다. 고아인 것과 마찬가지로 태어났지만, 자신은 분명 존재하고 있다. 부모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모모는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생'이란 것이다. 우리가 어느 누구도 자신이 원해서 태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존재로부터 거부 당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존재하기에, 세상에는 나 혼자가 아니다. 돌봐 줄 사람이 없더라도, 의지할 누군가가 없더라도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면, 그 보다 더 큰 비극은 없으니까 말이다.

  이 책의 화자 '모모'는 창녀의 아들로 태어나 로라 아주머니게 맡겨져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하는 열 네살 소년의 이야기다. 나는 지금까지 이토록 가슴을 잔잔하게 요동치게 만드는 성장 소설을 읽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자기 앞의 생>은 너무나 처절하고, 슬프고 격정이도록 아픈 내용이지만,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고, 사랑 받을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책이기도 하다. 모모와 로라 아주머니의 관계, 이것이 바로 세상에 태어나 우리가 살아가는 변함 없는 이유이자, 내가 존재하는 생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물론 생의 이면에는 날카로운 바늘이 수십개나 웅크리고 있기에 잔뜩 촉수를 세워야 하는 순간들의 연속이지만, 외면하는 불행마저 따뜻함으로 물들이는 사랑이 반드시 존재한다. 잠시 머물다가 떠나버릴 행복, 행복과는 전혀 인연이 없다고 담을 쌓고 지내는 사람들을 위해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서 로맹 가리는 이 작품을 탄생시켰다. 때로는 아는 것 보다 모르고 있는 편이 낫기도 하지만, 생의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 조금씩 깨우쳐 마침내 자기 앞의 생을 내다보는 일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사살인것만은 틀림 없다.

  누군가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언제나 상기시켜 줘야 한다. 로맹 가리가 선사하는 세상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살아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발견하고 싶다. 생이 주는 달콤함, 눈물을 참을 수 없는 슬픔의 끝도 경혐하면서. 그러나 그건 분명히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일테고, 어딘가엔 분명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희망의 불씨가 존재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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