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젊음도, 패기도, 꿈도, 환상도, 열정도, 하물며 사랑 역시 언젠가는 퇴색되고 변화하기 마련이다. 운명적인 사랑은 가능할지 몰라도 영원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게 나의 지론이다. 물론 일평생을 한 사람만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며 바라보는 이들도 존재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랑은 식어빠진 토스트처럼 흐물어지기 마련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흘러가는 세월과 함께.

  언젠가 친구와 이런 얘기를 한적이 있다.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게 가능한걸까? 나는 물론 NO라고 대답했고, 보수적인 나의 친구는  YES라고 답했다. 결혼을 해서 외도를 하는 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범죄 행위이고, 일 평생 한 사람만 위하여 살아가겠다는 친구가 나는 어쩐지 믿겨지지 않았다. 이건 개방적인 사상이나 문란한 생활의 옹호와는 전혀 다른 의미다. 그저 사람의 마음이 변하지 않고 처음처럼 언제까지나 제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져 보인다. 믿음과 신의로 결합되어 결혼으로 맺어진 부부, 연애른 관문을 거쳐 그 결승점에 골인한 순간부터 지루한 싸움의 공방전이 이어지게 된다.

  <한 달 후, 일 년 후>를 통해 '사강'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라는 감정의 지극히 짧은 유효기간이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사랑의 시간과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람의 감정을 솔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한 달 후, 일 년 후>는 20세기 중반, 파리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얽히고 섥힌 젊은이들의 만남과 사랑의 감정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과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쩜 그렇게도 다를 수밖에 없는지... 조율하지 못하는 감정의 열망에 사로잡힌 주인공들의 내면은 공허로 가득 차 있고, 일종의 욕구불만 상태이다. 해방구는 보이지 않는 다소 답답해 보이는 관념들 속에서, 더욱 더 가슴이 도시의 회색 풍경처럼 메말라져 가는 느낌이다. 엇갈리게 연결 될 수밖에 없는 남녀, 불온한 사랑의 정점 속에서.

  조제는 틀림 없이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젊음의 아름다운 무기를 적절히 이용할 줄도 알며, 젊음의 공황 상태를 자기만의 방법으로 즐길 줄도 안다. 무명의 배우 지망생 베아트리체는 야망을 위해 사랑을 일종의 기회로 삼지만, 결국 본인이 원했던 진정한 사랑의 가치에 눈을 뜬다. 사랑의 유효기간을 알아버린 그들의 절망 속에서도 시간은 흘러가고, 또 다른 사랑의 첫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미쳐버리게' 되니까, 과정을 억지로 끼워 맞추지도 말고, 서로의 감정을 휘두르지도 말고, 그저 쿨하게 엮어가고 싶어하는 20세기 젊음이들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 책의 제목으로 인용된 17세기 희곡 <베레니스>에서 '한 달 후, 일 년 후' 라는 시간은 끝나지 않을 사랑의 애절함을 상징하는 시간이지만, 사강이 표현한 '한 달 후, 일 년 후'는 결국은 변해버릴 사랑의 허무함과 서글픔을 냉소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시간이다. 어떤 결과를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선택이고,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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