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돌봐줘
J.M. 에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 나거나 독창적인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을 '정신이상자'라고 분류해 버리는데 과연 그 '정상'이라고 하는 분류의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의학 혹은 과학적인 근거에 의해 '정신이상자'라고 판명된 사람들조차 본인들은 지극히 정상이라고 소리칠게 분명하다. 그러니 정상, 비정상을 분류할 수 있는 이상적인 기준에서 벗어나서 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정상인아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는 단순한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내 눈에는 분명 나사 여러 개 풀린 정신 나간 사람으로 치부하는 '누군가'지만, 상대방의 기준에서는 '나'또한 일반적인 분류의 기준을 훨씬 넘어 서 버린 정신이상자라고 비춰질지도 모를 일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대하는 태도나 느낌을 제외하고는 그의 생각을 그대로 읽기란 불가능 하니까, 타인의 시선에 사로잡힌 본인 스스로의 이미지는 결코 알 수가 없다.

  흔히 아파트에서 살아가다 보면 숱하게 겪는 일들이 있는데, 대화 한 번 제대로 나눠보지 못한 이웃을 보고 스스로가 정해놓은 이미지로 단정지어 버리는 경우이다. 뭔가 깨름찍한 행동을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거나 나의 취향과 너무도 동 떨어진 세계를 헤매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분명 그 이웃은 이미 정상인의 기준에서 탈락된 상태다. 나와는 다른 별나라 사람이라거나 제정신이 아닌 이해하지 못할 성격의 소유자, 정말로 대화 한 마디 놔눠보지 못했지만, 스스로가 만들어 낸 이미지나 곁으로만 드러나는 그의 단편적인 이미지에 상대방을 가둬버리는 경향이 만연하다. 단절된 이웃들이 옹기종기 모인 보금자리는 때로는 공포를 방불케 하기도 하고, 때로는 왕성한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기도 한다. 거기는 바로 아파트니까.

  <개를 돌봐줘>를 읽으며 단 하나의 강렬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나 자신을 지극히 정신인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는 타인의 눈에는 내가 비정상의 범위에 수용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저마다 상대방이 정상이 아니라고 여기지만, 서로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다. 각자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모두 정신병자지만, (내가 봐도 확실히 그렇지만) 그들은 스스로의 취미와 삶의 방식에 충실할 뿐이다. 세상이 분류해 놓은 일반적인 기준에서 벗어나게 되면 우리는 누구나 혼란을 겪고 그 기준에 맞춰가려 노력하지만, 정작 본인들의 삶의 방식을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내가 아닌 타인을 조종하려 들고, 수정하려 들기 때문이다.

  참으로 재미있는 발상이다. 마주보는 두 건물의 사람들 중에 정상인이 하나도 없다니! 가장 먼저 서로를 관음증 환자이자 정신이상자로 판단하고 줄기차게 오해를 해대는 라디오 작가 '코른누르'와 계란 세밀화가 '플뤼슈'. 그리고 이 두사람을 둘러싼 각양각색의 사람들…. 개성이 넘치다 못해 너무도 지나친 이웃사람들의 하모니가 그야말로 난장판 예술이다. 어느날 갑자기 살해(?)된 개 '엑토르'의 죽음을 겪은 후 더욱 심한 발작 증세를 보이는 '브리숑' 부인, 두 건물의 개성 강한 관리인 '라두 부인'과 '폴랑타', '사타베 부인'과 그녀의 사악한 아들 '브뤼노' (이 녀석은 악마의 씨가 분명하다!), 컬트적인 언더그라운드 영화 감독 '자모라', 에로 소설 작가 변태 할아버지, 자폐증에 걸린 천재 '가스파르', 설치류를 사육하는 편집광 '뒤모제'까지. 정말 이토록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은 난생 처음 보는 듯 하다. 신비로운 캐릭터들의 향연이다!

  이 책은 일기, 편지, 탄원서, 이메일 등으로 사건을 전개해 나가는 독특한 형식의 추리 소설이면서 동시에 재기발랄하고 유머러스한 매우 기발한 소설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에피소트. 세계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겠지만, 정상의 범위에서 벗어난 사상을 가진 현대인들이 우글거리는 대도시의 평범한 아파트 속에서 가장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법이다. 지금부터라도 내 이웃이 벌이느 황당한 사건들에 관심을 가지며 이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내 이웃이라면? 그러한 일은 꿈에서나 가능하다. 절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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