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대지
생 텍쥐페리 지음, 최복현 옮김 / 이른아침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인간은 극한의 상황이 닥쳐오면 가장 먼저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한다. 생텍쥐페리 역시 어느 사막에 표류되어 구조를 기다리던 5일 동안, 물 한 모금 구경하지 못했던 그 절박한 상황 속에서 당연히 그를 사랑하고 믿고 있을 사람들을 떠올리며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동료 프레보와 함께 신기루에 사로잡혀 영혼을 잠식당할 때, 오렌지 한 조각이 주는 기쁨에 그저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되는 순간들. 외롭고 지친 생사의 갈림길에서 지독한 갈증과 외로움에 시달렸던 믿을 수 없는 시간들……. 도움으로부터 간신히 죽음을 모면했던, 가련한 생택쥐페리를 상상해 보니 누군가의 시가 생각이 났다.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어린 왕자》를 통해서만 어렴풋이 알고 있던 ‘생텍쥐페리’ 문학의 넓은 세계를 본 결과는 대단히 소중하다. 자신의 경험을 고스란히 투영시켜 완성한 에세이 《인간의 대지》는 대지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다. 단지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비행기를 매개체로 삼아 하늘과 땅, 그 중심에서 세상을 바라보던 생텍쥐페리의 삶은 ‘일생’이라는 철학을 압축한다. 너무도 짧지만, 짧기에 강렬한 인간의 삶. 그리고 단단하게 이어져 있는 사람과의 관계.  

  이 책을 읽으며, 문득 문득 너무 외로워졌고, 또 문득 문득 따뜻한 감동의 파장이 일어났다. 난파한 비행기 덕택에 며칠 동안 사막에서 표류한 생텍쥐페리의 이야기도 매우 감동적이지만, 영하 40도에 달한다고 하는 안데스산맥에서 살아 돌아온 ‘기요메’란 친구의 이야기 역시 대단했다. 주저앉아 잠시만 쉬어도 얼어 죽게 된다는 것을 알기에 결코 쉬지 않고 걷고, 또 걸었다는 기요메. 무단히 힘겨웠을 그 추위와 싸움하며 마침내 자신이라는 높은 산을 뛰어넘었을 때의 환희가 전해진다. 그리고 살아 돌아왔음을 알고 눈물을 흘리던 동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리고 가슴을 울리는 명쾌한 한 마디. 다른 사람들이 성공한 것은 누구나 언제든지 성공 할 수 있다는, 흔해빠졌지만 비범한 진리!

  “폭풍우, 안개, 눈과 같은 것들이 가끔씩 너를 괴롭힐 거야. 그럴 때면 너보다 먼저 이를 경험한 사람들을 생각해 보는 거야. 그런 다음에 이렇게만 생각해. ‘다른 사람들이 성공한 것은 누구나 언제든지 성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야.” - 16p

  인간은 정말 강인한 존재다. 하물며 한없이 약해빠진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의 대지》를 읽으며 정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바람과 모래와 별, 이라는 제목도 매우 잘 어울리긴 하지만, 아무래도 인간의 대지가 더 넓은 뜻을 포함하고 있는 듯하여, 이 제목이 마음에 든다.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고 하는 생텍쥐페리의 죽음과, 그가 열정을 다해 사랑했던 비행은 얼마만큼의 관계가 있을까? 사막의 모래, 바람, 그리고 비행기 창밖으로 보였을 촘촘한 별 밭 한 가운데서 그가 느꼈을 충만한 기쁨을, 언젠가는 나도 꼭 만끽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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