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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에스프레소 꼬레아노 - 이탈리아 여자 마리안나와 보스턴에서 만나 나폴리에서 결혼한 어느 한국인 생물학자의 달콤쌉쌀한 이탈리아 문화 원샷하기
천종태 지음 / 샘터사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카페 에스프레소 꼬레아노」는 명승지만 둘러보는 호화 여행기도 아니며, 잠시 머물렀다 돌아올 나그네의 에세이도 아니다. 한국인 저자가 이탈리아인 부인을 만나 결혼하면서 이탈리아에 머무르게 되었고, 그 후 이탈리아에 거주하면서 느꼈던 이탈리아라는 나라의 단편들을 들려주고 있다. 이방인의 입장이 아닌 어느덧 나폴리에 동화되어 나폴리 시민으로 살아온 듯 한 착각이 들만큼 서민적이고 수수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본서의 저자 ‘천종태’씨는 이십대 무렵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고, 그곳에서 지금의 부인을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부인은 이탈리아인으로 지성과 미모, 그리고 따뜻한 모성애까지 겸비한 아름다운 馬여사. 언뜻 보기엔 그 옛날 미국으로 유학을 갈 정도로 박식하고 집안 빵빵한 저자의 오만함을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신기하게도 저자는 지금까지 조국 대한민국의 국적을 버리지 못해 갱신의 갱신을 거듭하는, 대한민국의 된장국과 꼬막을 그리워하며 눈물로 밤을 새웠던 지극한 애국심을 지닌 서민적인 느낌이다. 깎아놓은 듯 매끈한 新 아파트 보다는, 낡고 초라한 기와집, 따닥따닥 붙어있는 변두리의 허름한 집들을 볼 때 더 포근한 마음을 지닐 수 있었다고 한다.
10년이 넘는 미국 유학 생활동안 뼛속까지 미국식 이기주의라는 사고방식이 뿌리내렸을 것 같지만 정작 미국 생활 중 남은 것은 처절한 외로움뿐이라니. 이역만리 떨어진 타국에서 느꼈을 그리운 사람냄새에 새삼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러나 신은 방황과 고통을 주실 때 반드시 반대쪽 문을 열어놓는 법.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토끼 같은 세 명의 자식까지 풍성하게 얻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 않은가? 더불어 태양의 나라, 바다의 나라라고 일컫는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나폴리에서 살게 될 수 있었던 행운까지 누리다니, 그는 분명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임에 틀림없다.
막연하게 동경하던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그들의 실상은 약간의 차이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허나 재미있는 것은,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인정과 풍요로운 햇살, 에메랄드 물빛 바다 곁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인인들……. 종종 극성맞은 도둑들로 곤욕을 겪기도 하고, 지저분한 주변 환경으로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고, 지켜지지 않는 교통법규로 혼란스럽고 번잡한 도로 사정, 마피아의 독주로 체계가 잡혀있지 않은 경제시장 등이 불만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곳이 나폴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용서되는 아이러니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굳이 이유를 갖다 붙이지 않아도, 근무 중 낮잠시간을 엄숙히 지키며 여유로운 삶의 휴식을 만끽하고, 일요일에는 반드시 부모님을 찾아가 인사를 드리는 오붓한 가족들을 지켜보면서 오히려 한국의 자랑거리인 정(精)보다 더욱 끈끈한 타인들과의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의 흐름에도 자신들의 전통을 바꾸지 않고 지켜나가는 힘이 바로, 로마에서부터 시작된 이탈리아의 오랜 역사가 지금껏 유지되고 있는 버팀목이 아닐까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지구촌에서 이탈리아인들만큼 다혈질이면서도 낭만적이고, 지극히 평범한 멋쟁이들이 가득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다양한 사람들을 지켜보며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생물학을 공부하던 저자의 진솔한 내면의 고백, 여러 사람들에게 어쩔 수 없이 둘러싸인 채, 그들의 문화를 평가하고, 칭찬하고, 질책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 타국에서의 사념들은, 새삼 이 넓디넓은 지구가 사실은 참 좁은 공동체의 울타리 속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지니게 만들어 준다. 국제결혼이라는 벽을 딛고 당당히 성공한 저자의 용기와 따뜻한 사랑에 박수를 보내며, 그 언젠가 나도 나폴리에 가서 그 곳의 바다 냄새를 맡아보고 말겠다는 자신과의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