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없는 문화 - 문화 엘리트와 대중
테어도르 데일림플 지음, 채계병 옮김 / 이카루스미디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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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란 무엇일까?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하여 낸 물질적·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의식주를 비롯하여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따위를 모두 포함한다.’ 친절하게 설명된 사전적 의미로서의 문화와 막연하게 유추해낼 수 있는 문화라는 인류 보편적 삶의 형태를 이상적으로 부합시키기는 힘들 듯 하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의 문화와 문화를 즐기는 대중 사이의 간극이 철저하게 파괴되어가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보다 더욱 격렬하고 불편하게 변화하고 있다.
 
  「브레이크 없는 문화 Our culture, What left of it」의 저자 ‘테어도르 데일림플’ 은 ‘문화’라는 탈을 쓰고 전체주의 행동을 일삼는 엘리트 대중들에게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저급문화와 고급문화의 차이를 비단 폭력이나 노골적인 성문화의 야만적 차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위 고급 문화생활을 즐긴다는 서구 사회에서 유일하게 혐오하면서도 탐닉하고 있는 두 대상이 ‘폭력과 섹스’이기 때문에, 소위 엘리트 문화라는 슬로건을 은밀하게 내걸고 합법적으로 향유하는 문화라는 딜레마를 파헤치고 있는 것이다. 폭력과 섹스, 마약과 정신병적 혼잡으로 범벅이 된 지식인들의 문화……. 깊이 알면 알수록 불편하게 다가오는 진실임에 틀림없다. 

  문화를 다분히 영화나 음악, 뮤지컬, 도서, 등 미디어나 기타 저널의 향유로 여길 경우, 야만적이고 불쾌감을 일으키는 문화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대중의 몫으로 돌아온다. 피로 범벅이 된 범죄 영화나 드라마가 버젓이 안방극장을 차지하고 있고, 인간의 목숨이 개미 한 마리보다 더 미개하게 취급되는 살인이나 강간이, 이제는 너무도 익숙한 나머지 그러한 잔혹행위를 무덤덤하게 보게 된다. 어떠한 기준에 어떠한 논평에 외설과 예술을 가려내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쓰레기 같은 포르노를 예술로 둔갑시켜 상업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모든 매체가 역겨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외설과 예술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사실만이 절박한 21세기의 마지막 진실로 받아들여야 할 듯 보인다.

  저자는 빈민가나 교도소, 제 3세계에서 의사로 일한 경험을 살려 극빈한 계층과 상류 사회의 이질적인 풍경을 잘 묘사하고 있다. 다만 저자가 영국인이기에 대부분 영국 사회 속의 병폐와 주변국과의 정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을 읽을 때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표정 없이 담담하게 자신의 조국에 대한 치부를 드러낸다는 일을 고진감래하며 받아들여야 할 투철한 직업정신 덕택일까. 여하튼 피부에 와 닿는 독단적이고 사실에 가까운 문화 진단 저술은 많은 부분 공감을 자아낸다. 문화를 평가하는 저마다의 기준은 상대적으로 다르겠지만, 주류로 흐르는 문화의 정착 점은 대부분이 동일한 듯 보인다.   

  타락한 문화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밑바닥 인생들의 복잡한 삶과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저급한 폭력으로 물들여 버린 어른들의 어른들. 그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며 (더더욱 자기 자신의 탓만으로 돌릴 수도 없을) 범람하는 저급 문화의 덫을 직접 설치했던 사회라는 이름의 전체주의에서 비롯된다. 마치 나치즘이나 파시즘의 원리와도 같은 폭발적인 문화의 수요와 확산이 이루어지는 고도의 문명의 끝이 과연 어떤 식으로 마무리 될지, 브레이크 없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들의 가독성이 새삼 공포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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