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의 달리기
니꼴라 레 지음, 이선영 옮김 / 지향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위기의 남자들

  아슬아슬하다. 위태롭다. 뭔가 큰일을 저지를 것 같기도 한데, 오히려 폭풍전야의 밤처럼 잔잔한 그들의 행로가 더욱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안정되지 못한 이 방황의 정체는 무엇일까? 소위 서른을 넘겨 마흔으로 달려가는 남자들의 복잡다단한 감정의 이분법칙을 폭로하고 싶었는지 작가 ‘니꼴라 레’의 「서른 살의 달리기」는 ‘서른의 남성’이라는 주제의 다섯 명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고 있다.
 
  문장이 매우 간결하고 함축적이다. 그래서 한 문장이라도 대충 읽고 넘어가면 다음 문장이 제대로 이해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원래의 호흡대로 책을 읽어나가다가 문득 ‘왜 이렇지?’라는 물음표가 머릿속에 달려 다시 앞부분을 읽기 일쑤였다. 작가는 단 한 줄의 문장 속에 매우 많은 의미를 담아둔 듯하다. 대충 읽어버린다면 30분이면 족할 분량을, 꼼꼼히 생각해서 읽어본다면 하루 이상 걸릴 수도 있는 책. 매우 특이하고, 어지러운 문장과 앞 뒤 연결의 부자연스러움이 가끔은 다소 불안정하기도 하다. 이해를 목적으로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닌, 그저 그 상황이 주는 느낌만을 안고 가야 할 것 같은 약간은 난해한 분위기의 책이다.

  다섯 명의 프랑스 남자들이 이 책의 주인공들인데, 하나 같이 타인으로 인해 본인의 상처를 상기시키게 된다. 사랑에 아파하고 절망해야만 하는 그들. 푸르른,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듯한 이십대의 젊음은 지나가고 마흔 줄을 바라보는 서른의 그들은 하나 같이 육중하게 아파하고 있다. 이성에 눈을 뜨고 본능이라는 욕구가 자라나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랑’이라는 울타리는 족쇄처럼 묶여 그들을 놓아주지 않는다. 상대가 누가 되었든, 불꽃처럼 강하게 터져 나오는 누군가에 대한 강한 갈증은 여전히 그들을 살아있게 하는 이유가 되어 주었고, 남성을 움직이는 자극제가 된다. ‘왜’냐는 물음조차 무의미한, 삶의 윤리대로 흘러가고 마는 타인에 대한 집착과 환멸과 감정의 기쁨들. 앞으로 얼마나 더 살아야 이러한 감각이 사라져버린 메마른 심장을 가지게 될까? 인간이 살아가는 한은 영원히 지속 될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도 분명 겪고 있거나 겪었을 때, 삼십대의 남성들의 공허한 가슴에 대해서. 한없는 외로움에 대해서. 또한 바보처럼 방황하고 있을지라도 삶이 이어지는 한 계속 달려야만 하는 사랑이라는 미스터리한 릴레이에 대해서. 말도 안 되게 어린 소녀에 대해 묘한 감정을 품고, 이혼한 아내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고, 스크린에 등장하는 젊은 여자를 동경하고,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생각하는 남자들의 속절없는 고통스러움에 대해서.

  사랑과 성에 지독히도 개방적인 프랑스인들의 문화가 낯설기도 하지만, 언제나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든다. ‘장 이야기’에서 장과 그녀의 딸이 나누는 대화에서 특히나 그런 면을 많이 발견했다. 딸과 같은 나이의 여배우에게 빠진 아버지에게 그녀를 사랑하냐고 당돌한 질문을 하는 딸. 마침내 그렇다고 대답한 아빠의 목소리에 딸은 이런 말을 한다. ‘그녀를 사랑한다면 하는 데까지 해 봐. 그게 해야 할 일이겠지. 사람들이 뭐라 하던 운명을 걸고 한번 해보는 거야. 114p’

  이게 바로 정답이다. 그녀, 혹은 그를 사랑한다면 하는 데 까지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 구덩이에 빠지고 진창에서 허우적대고, 심지어 정신병동에 수용될지라도, 그것이 운명이라고 한다면. 마지막을 멋지게 올인하는 수밖에. ……그것이 사랑이고, 인생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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