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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산책 - 바람과 얼음의 대륙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고경남 지음 / 북센스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11883174320013.jpg)
너무도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남극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 실제로 이런 곳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이 좁은 반경, 내가 움직이는 불과 1km도 채 안 될 공간을 벗어나면 신비로운 세계가 펼쳐짐은 불을 보듯 뻔 하지만, 하물며 남극이라니. 멀어도 너무 멀고, 낯설어도 너무 낯설다. 남극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조차 접하지 못했던 나이기에, 「남극 산책」이 가져다 준 설렘은 자못 특별하다. 온통 새하얗고 춥기만 할 것 같은, 망망대해 넓은 얼음 바다 위엔 마찬가지로 새하얀 동물들이 살고 있을 거란 막연한 예상만을 했던 나는, 다채로운 남극의 향연에 넋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남극의 여름을 상상해 본 적이 없기에, 여름 날 아스라이 피어오르던 붉은 노을과 입김처럼 퍼져가는 물안개를 보는 순간 전율이 일어났다. 변화하는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기쁨, 막연한 동경을 넘어서 정말 미치도록 그곳에 한번 발을 딛고 싶은 강렬한 충동. 고경남의 「남극 산책」을 읽는 내내 그랬다.
그야말로 산책을 한 기분이다. 너무 진지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심심하지도 않을 정도로 딱 적당한 남극 산책. 깊이 있는 색감의 감각적인 사진들과 일상의 단편을 읊는 짧은 글귀가 편안한 기분에 젖어들게 만들어주었다. ‘……어쩜 그리 고울까.’ 아무리 다양한 색깔의 물감을 서로 섞어 그림을 그려봐도 절대 탄생하지 않을 자연만의 색, 형용할 수 없는 환상적인 남극의 하늘에 매료되었다. 살기 위해 투쟁하는 어린 생명들을 보며, 그리고 그 차갑게 얼어붙은 척박한 땅에서 뿌리를 내려 조심스럽게 자라나는 식물들을 보며 저절로 경건한 자연의 이치를 배우게 된다. 지은이가 말한 것처럼, 가까이서 그 거대하고 장엄한 빙벽을 보게 된다면, 다른 어떤 것에도 감탄하지 않게 될 런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배우고 느낀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보다. 말로 표현 할 수는 없지만, 상상조차 한 적 없었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다는 그 설렘이 삶의 희망이 되어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사람들의 심정을 새삼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아문센과 스콧에게 걸려든 남극이라는 마법이 사실은 한번이라도 남극을 실제로 봤던 사람들 모두 걸려 버릴 지독한 마비였음을. 지금까지도 베일에 쌓인 채 고운 속살을 간직하고 있을 남극이라는 또 하나의 다른 세계로 가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천문학적인 여행비용에 포기라는 붉은 글씨가 머릿속을 배회하지만, 사력을 다해 노력한다면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기회의 문은 찾아나서는 사람에게만 국한되어 있으니 말이다. 살아가면서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들이다.
불연듯 가속화되는 지구 온난화 문제에 따른 기상이변이 매우 걱정스럽게 다가온다. 이대로 지구의 기온이 점점 상승한다면 60년 후, 100년 후, 500년 후……, 저마다 추측하는 시간은 틀리지만, 그 언젠가는 남극의 빙하가 모두 녹아 더 이상 지구는 사람이 살아가기 어려운 환경으로 탈바꿈 한다고 하는데……. 지금의 폭염을 염두 해 본다면 이 사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살이 에일듯한 추위를 견디며, 블리자드라는 죽음의 공포를 코앞에서 맛보았던 사람들. 그 사람들 역시 언젠가 닥칠지도 모를 이러한 걱정을 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당장 눈 앞의 시련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를 고민했을까. 그러나, 다양한 이력으로 마침내 세종기지에서 의료담당으로 1년을 보냈던, 이 책의 주인공이 느꼈을 감동의 깊이만을 가득 담아 가고 싶다. 살면서 이런 곳에 가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저자가 그저 부럽고, 또 부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