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 이야기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9
베벌리 나이두 지음, 이경상 옮김 / 생각과느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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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억압자와 피억압자, 이러한 분류를 실질적으로 가능케 하는 것은 인간이 가하는 악의 보편성에 있다. 정작 악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제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악한 대우를 당하는 사람들도 그러한 전통이 오래되다보면 그것을 당연시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몇 백 년가량 지속적으로 서구 사회에 이어져 오던 흑인들의 노예 제도는 사라졌어도 여전히 남아있는 차별의 불씨는 거센 비바람에도 끄떡 않고 지구상에 존재한다. 오늘도.

  영화 ‘아메리칸 히스토리 X’에서 백인우월주의자의 특권 아닌 특권을 ‘데릭’이라는 인물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데릭은 철저한 백인우월주의자였으나, 감옥에서 백인들의 배신과 잔혹행위에 농락당한 후, 자신의 철저했던 분노의 표출이 얼마나 무의미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은 정확히, 누구에 대한 분노였을까. 무엇을 위해, 무슨 이유로 하등인간으로 여겼던 것일까. 같은 백인임에도 동물보다 더욱 못한 하등 인간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던 자신의 과오를 처음으로 인지하기 시작한다.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아예 침범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 경계의 선을 그어버린 후, 특별한 계기로 회개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마치 대다수의 백인들을 대표하는 듯 닮아있었다. 마음 깊은 곳으로는 철저히 인종차별주의자면서 겉으로는 아닌 척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나, 서서히 주변에 동화되어 흑백의 구별 짓기를 경험하게 되고, 그들이 당하는 수모에 가슴 아파하는 백인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노예제도의 발발이 되었던 서구인들의 아프리카 유입. 그 중심에 있던 ‘가진 게 많아서 가난한 나라 아프리카’를 한 번 살펴보자. 드넓은 아프리카 대륙 남단부에 위치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7세기 네덜란드인들이 대거 이주한 이후, 끊임없는 토지 착취와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인종차별 정책을 이어가게 되었다. 여기서 끔찍한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자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등으로 이주하면서 원주민들을 그들의 토지를 몰수하고, 여자들을 강간하고(그래서 일부 부족들은 순수 흑인 혈통이 아닌 백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유 없는 학살에 이어 노예를 삼기 위해 그들을 데려갔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이주된 흑인들은 현재까지도 과거 자신들의 조상이 당했던 수모를 고스란히 당하고 있는 것이다. 노예제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백인이 흑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라고 한다. 뼛속까지 더러운 종족이거나, 지독히 나쁜 짓을 하는 악당이거나.

  이제 그만 지루한 교과서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나 소설 이야기를 해 보자. 소설로 인종차별을 접한다면 더욱 이해하기 쉽고 가슴에 와 닿는 뜨거움은 깊어지는 법이다. 본서「남아프리카 공화국 이야기 - 베벌리 나이두」는,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인종차별 정책으로 수모를 겪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총 일곱 편의 단편으로 엮인 새카만 아이들의 담담한 이야기가, 담담하기에 오히려 더욱 깊은 애잔함이 가슴에 물든다. 아직 어리지만 자신의 피부색은 검은색이기에 겪어야만 했던 차별의 기억, 아파르트헤이트. 친했던 친구와 어른들로 인해 차츰차츰 결별을 해야 하는 아이, 조상이 노예였기에 자신도 노예 취급을 당해야만 하는 아버지, 자신을 돌봐주던 유모가 흑인이지만 그녀가 당하는 부당함에 가슴 아파하는 소녀, 흑백의 논리에서 자유롭고 싶어 마침내 해방을 부르짖는 사람들의 웅성거림들……. 이러한 단편적인 기억들의 집합이 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애처롭게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들은 비록 비슷한 분위기의 단조로운 색채를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저자가 직접 경험한 일들을 바탕으로 탄생시켰기에 매우 사실적이다.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자신의 손을 내밀기를 기다릴 것인가. 모두 같은 인간이지만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상으로부터의 모든 구별 짓기를 용납, 수용해야만 했던 서글픈 흑인들, 그리고 컬러드들의 반란을 보고 싶었지만, 아직도 화해의 길은 멀고도 험한 듯하다. 만델라가 27년 만에 출옥하여 가장 먼저 외친 말은 인종차별을 끝내라, 라는 화해의 부르짖음이었다. 간절히 원했던 그의 바람은 과연 언제쯤 완벽하게 실현될 수 있을까? 피부가 까맣기에 새하얀 동공 속에 담긴 까만 눈동자가 더욱 빛나 보이는 흑인 아이들. 배불리 먹지 못해 깡마르고 연약하지만 웃음만은 햇살처럼 맑고 고운 그 아이들의 눈에서 더 이상 백인들이 선사하는 아픔의 눈물이 흐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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