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lizabeth Gilbert 지음, 노진선 옮김 / 솟을북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근래에 읽어본 여행 서적 중에 작가 자신의 내면에 가장 충실한 책을 만났다. 같은 여성이기에 더 공감이 갔으며, 단지 ‘즐기기 위해’ 떠난 여행이 아닌, 조용하던 심장 어느 구석에서 들려오는 본인의 목소리에 한껏 귀를 기울이고, 자아와 소통하는 여행이었기에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at pray love)」는 정말 솔직하다. 그리고 작가의 위트와 유머러스함, 섬세한 여성들이 지닌 특유의 감각, 가식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능력 등을 여실히 살펴볼 수 있었다. 직업이 작가이다 보니 참 단순하게, ‘글 참 잘 쓴다.’라고 생각했다. 담백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러면서 지적인 문체가 그녀가 어떤 사람일지 충분히 짐작케 만들어 주었다.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뉴욕에 거주하는 인기 작가이다. 책날개에 있는 그녀의 사진을 보면 그녀의 외모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대번에 눈치 챌 수 있다. 멋진 외모에, 멋진 직업을 가지고, 뉴욕에 거주하고 있던 30대 미국 국적의 여성. 그녀에게는 멋진 저택과 멋진 남편까지 있었다. 이미 과거형이 되어버렸지만……. 행복하지 않았던 결혼 생활로 인해 파경을 맞이하고, 데이비드라는 근사한 남자를 사귀게 되지만 그마저도 그녀의 곁을 떠나간다. 모든 걸 가지고 있다 자부했지만 실상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온전한 삶을 되찾기 위해 독특한 삼색여정 길에 오르게 된다.

  왜 하필이면 이탈리아, 인도, 인도네시아 일까? Italy, India, Indonesia, 각각 나라의 첫 이니셜이 ‘나’를 뜻하는 ‘I’이기 때문에? 이것도 하나의 정답이라며 저자는 우스갯소리로 넘겨버렸지만, 그녀가 좋아했던, 미치도록 가고 싶었다고 밖에는 설명 할 길이 없을 듯하다. 이탈리아어를 발음할 땐 심지어 오르가즘을 느꼈고, 인도에서는 진정한 영적 삶에 대한 구원을 얻었다. 인도네시아의 발리라는 황홀하게 아름다운 섬에서 역시 그녀는 명상에 잠겨 사랑과 기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신나게 한바탕 놀면서, 좋은 경치를 구경하고, 물 쓰듯 돈을 펑펑 쓰는 획일적인 여행이 아닌,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존재하고 있었을 온전한 그녀의 삶’을 찾아가는 1년간의 여정. 그 속에는 풍족한 만족감과 동시에 놀라울 정도의 신비감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단연 작가의 솔직하다 못해 대담하기 까지 한 고백들이었다. 어쩌면 그리도 당당하게(이 책의 출간으로 전 세계 모든 독자들이 그녀의 치부를 알게 될 터) 자신의 고통을 나열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녀가 겪었던 사랑에 대한 고통이 적나라하게 나와 있다. 사랑, 사랑, 사랑……. 우리는 일평생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그리고 사랑 받기 위해 살아간다. 사랑을 빼 놓고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기에 그녀가 겪었던 결혼의 실패와 목숨을 걸 정도로 사랑했던 연인과의 결별이 인생을 바꿀만한 원인을 제공하기엔 충분하고도 남는다. 매일 밤 침실이 아닌 욕실 바닥에 누워 흥건한 눈물과 함께 잠들며 오직 ‘불행’이라는 달갑지 않은 존재와 동침을 하며, 하루에도 수십 번 죽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희망의 이유가 없었던 그녀. 

  고통을 슬기롭게 극복하며 영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서 시작된 1년간의 긴 여행은 역시 그녀를 180도 바꿔 놓았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해골처럼 앙상하게 뼈만 남았던, 넋이 나간 듯 풀어헤쳐진 머리, 텅 빈 두 눈, 살아갈 의지조차 없었던 약하고 약하기만 했던 그녀가 서서히, 영적으로, 마침내 변화했다. 가장먼저 간 곳은 로마.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들이 즐비한 이탈리아에서 파스타, 스파게티, 피자를 매일 같이 먹으며 12킬로그램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치로 살을 찌웠다. (물론 고의는 아니었지만.) 그리고 모두가 C.K 속옷모델처럼 근사한 이탈리아 남자들을 구경하며 눈도 호강시킨다. 그녀가 표현한 이탈리아는 한마디로 So Hot-. 섹시한 로마에서 마음껏 삶의 여유와 즐거움을 만끽했다. 다음 행선지인 인도의 아쉬람에서는 마침내 ‘신’을 만났다! 믿어지지 않지만, 모든 신들의 집합체처럼 느껴지는 그녀가 원했던 바로 그 신과의 조우. 매일 매일 수행하고, 명상하며, 기도를 하며 이룩했던 신앙의 길. 그 누구의 신도 아닌 바로 자신을 위한 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음껏 행복하게 미소 짓던 로마의 그녀와, 하루 종일 무릎을 꿇고 앉아 명상에 잠겨 금욕 생활을 하던 인도에서의 그녀. 그리고 이 모든 집합이 이루어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의 생활.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누군가를 위해 빈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녀는 마침내 사랑의 허니까지 만났다. 완벽한 브라질 남자 ‘펠리페’와 농밀한 사랑을 즐기며 진정한 기쁨을 맛보며. 그리고 스승 ‘끄뜻’에게서 매일 같이 인생 공부를 했고, 집이 없는 가난한 아이 엄마에게 기부금을 모금하여 대궐같은(?) 집까지 선사해주었다. 천사표도 이런 천사표가 없다. 인도에서의 명상이 마침내 그녀를 해탈의 길로 안내하기라도 한 걸까? 어쨌든 보고 있는 독자도 뿌듯함에 미소가 절로 나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이 책은 ‘여성’을 위한 여성 작가의 섬세한 자서전이다. 어느 여성이라도 이 책을 읽는다면 그녀에 글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솔직하고 또 솔직해서, 나와 만나도 정답게 인사 나누며 금세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리즈’. 그녀로부터 나 역시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배웠고, 고통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웠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놓아줄 수 있는 용기를 배울 수 있었다. 총 108편의 짧은 에피소드들이 마냥 행복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어쩌면 나와 그대들의 인생에 한층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그녀는 로마에서 정말 맛있게 맛있는 음식들을 먹어줬고, 인도에서 자신 속에 웅크리고 있던 신을 찾아 기도를 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는 숨이 막힐 것 같던 사랑까지 경험했다. 솔직히 그런 그녀가 나는 부러웠다. ‘절망’이라는 이름의 불청객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인사하는 법, 가장 먼저 내가 시작할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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