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지철학 -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포스트모더니즘까지
멍윈젠 지음, 이영옥 옮김 / 책과함께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제목에 ‘easy’라는 단어가 붙었다는 이유로 만만하게 봤다가 큰 코 다쳤다. easy 옆에 붙은, ‘철학’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심오하고도 난해한 학문을 감당하기에는 아직도 내 소양이 부족한가 보다, 라는 좌절감에 절로 고개가 떨어뜨리어졌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 소설의 형식으로 쉽게 쓰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솔직히 책의 내용을 절반 정도라도 내가 제대로 이해를 한건지 스스로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것이 처음으로 철학이라는 학문을 내 스스로 찾아 직접 접한 무지한 나의 솔직한 한줄 감상이다.
본서의 저자가 명시되어 있다시피, <이지 철학>은 철학사상의 원류 및 발전변화를 명확하게 알기 위해 ‘철학사’를 주르륵 훑어보는 정도의 간편함을 최우선의 목표로 설정 하고 있다. 그러므로 철학이란 학문의 상세한 파악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철학의 흐름을 명료하게 기술했다고 볼 수 있겠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점은, 어머니의 자장가보다 더욱 나른해서 나도 모르게 잠 속으로 빠져드는 따분한 해설서가 아닌, ‘소설’의 형태를 차용하여, 초보자의 빠른 이해를 돕고 있다는 점이다.
‘세라드’와 ‘케빈’, 두 친구를 주축으로 세라드의 할아버지 ‘로타비트’와 ‘스티븐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마치 시간탐험대의 타임머신처럼 그들은 과거로 여행을 해서 유명한 철학사상가들을 만나서 직접적인 사유의 진리를 얻게 되는 기발한 내용이다. 어린 그들은, 호수에서 우연히 ‘상체루스’를 만난 이후로, 플라톤과 데카르트, 칸트, 프로이트, 그리고 맹자나 장자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위대한 철학자’들과의 신비로운 조우에 사유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춘 철학서인 듯한데, 역시 나에게는 쉽지 않은 책이었다. ‘단 한 문장’의 물음만으로도 하루 종일을, 아니, 평생을 고민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 바로 철학의 세계인데, 어찌 단 며칠간의 시간 투자로 그들의 심오하고 난해한 뜻을 이해할 수 있으랴. 예를 들어 제 1장 상단에 기입된, ‘헤라클레이토스’의 ‘우리는 한번 들어갔던 강에 다시 들어가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며, 우리는 존재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라는 딱 한 문장을, 나는 제법 오랜 시간 글자들을 노려보며 그 말을 해석코자 노력 했었다. 그러나 갈래갈래 얽히고설킨 여러 학파의 주장과 유명 철학자들의 견해들까지 차근차근 짚어가며 완벽한 이해를 바란다면, 며칠이 아닌, 평생의 공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애초에 철학 입문서로 점찍어서 아주 깊숙이까지 알고자 함이 아니었으므로, 처음 생각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대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고, 신경을 바싹 곤두세운 채 책을 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공자님의 자장가 소리에 수업시간마다 책상에 기대에 잠을 잤던 무례한 나였기에, 이번의 철학서 입문은 일종의 모험이라고까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첫 파트너가 마음에 드니까, 앞으로의 근심까지 아주 말끔히 날아간 기분이다.
헤겔, 니체, 비트겐슈타인, 노자 등, 텅텅 빈 나의 뇌를 영양가로 가득 채워줄 그 분들의 진리 찾기 여행에 동참한 기분은 상쾌하다. 나에게 이런 집중력이 있었나 싶을 만큼, <이지 철학>과 함께 흐르는 시간도 빨랐던 것 같다. 모든 인간과 사물의 존재 자체가 신비이고, 그 신비를 밝혀내고자 끊임없이 철학에 파고들었을 그분들과 다시 한번 뜬 눈으로 밤을 한번 지새워봐야겠다. 생각하자, 고로 나는 존재하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