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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문학을 그리다
종이나라 편집부 엮음 / 종이나라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창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소리에는 침묵이 숨어있다고 속삭이는 김지하 시인의 시를 읽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비가 내리는, 초겨울의 파고가 높은 오늘 같은 날과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이 <그림, 문학을 그리다>가 아닌가 싶다. 그림과 문학의 적절한 만남을 기대하며 책장을 넘기면서도, 너무 짧은 내용만을 담은 게 아니었나 싶었던 걱정들이 아주 말끔히 사라지고 있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44인의 문장가와, 33인의 화가를 단 한권의 책에서 모두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다. 평소에 문학을 좋아하여 편식 없이 책을 대한다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두 살필 수 없었던 소설들과 시를 주요한 엑기스를 간추린 듯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너무도 곱고 고운 미술 작품까지 함께 감상 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고마운 책인가. 생활 속의 작은 미술관은 이렇게 찾아보면 되는 거였다.
평소 단 한번도 깊이 연관지어 생각해보지 않았던 미술과 문학을 결코 동시에 가져 볼 수 없기에, <그림, 문학을 그리다>를 읽으며 약간의 발상의 전환이 새로운 감동을 자아낼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런 식으로 나누어 가진다면, 책을 대하는 만족까지 두 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아직 책을 읽지 못하여 망설이고 있는 분을 위한 자세한 감상을 말씀드린다면, 지금까지 출간된 소설 작품과 시집 중 일부분을 발췌하여 글의 분위기가 정확히 살아있는 미술 작품을 나란히 그려 넣은 책이다. 발군의 문장들과 한국미가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그림들이 같은 자리에 함께 있어서 더욱 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는 것 같다.
간혹 소설이나 시를 읽을 때, 그 영상을 머릿속에 그려보곤 한다. 정확하게 들어맞는 이미지는 아닐지라도, 추상적인 영상의 모습이 미묘한 신경 선을 자극하게 되는데, 그것이 문학의 영상화가 일반적이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순리일 것이다. 본서에 나온 그림들은 추상적인 성격이 강하고, 느끼는 이에 따라 그림의 해석까지 천차만별일 것이라 생각 된다. 그것이 그림이 주는 힘이자 궁극적인 예술의 목표가 아니겠는가. 무척이나 어려운 것이 예술이지만, 획일 된 답 또한 없는 것이 예술이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읽어보지 못했던 문학 작품집과, 감상하지 못하고 있던 생소한 미술 작품들을 함께 만나볼 수 있었던 귀중한 경험을 했기에, 오늘의 만남은 매우 뜻 깊다. 마음에 들었던 몇몇 문학 작품들은 새로이 정식으로 읽어봐야겠다는 다짐도 들었고, 단조로운 생활 속에서 단아하고도 청아한 그림들을 감상하는 기쁨도 더욱 누려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간혹 책을 선물 할 때, 어떤 책을 선물해야 할지 굉장히 막막할 때가 있는데, <그림, 문학을 그리다>는 소중한 사람에게 건네는 선물로도 아주 만족스러울 것 같다. 예스러워서 아주 기품이 살아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