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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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하나를 시작하면 '푹' 빠져 버리는 습성은 책읽기에도 여지없이 나타난다.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에로스'에  이어,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그리고 '공부의 달인 호모쿵푸스'까지...

완전 '고미숙'님에게, 그리고 '고미숙식' 쓰기(?)에 빠져버려 허우둥 대면서도 즐겁고 유쾌하기 그지 없으니... 참 좋은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은 나라. 대한민국!

한때는 이 교육열이 근대사회를 일으킬 '산업역군'을 키워내는데 일조했으나, 지금의 교육열은?

요즘 한창 '일제고사', 학업성취도 평가 때문에 사회가 시끌시끌 한 것 처럼,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은 1등을 자자손손 1등으로 만들어버리는

오히려 신분세습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옛날처럼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가 아니라는 거다.

 

그렇다면  자의에 의해서건, 타의에 의해서건 그렇게 0교시부터 늦은 새벽까지 학교에서 학원으로 계속 이어지는 공부를  하는 이유는???

예전에는 '명문대'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고 한다면, 지금은 아주 어릴때부터 명문 중학교, 명문고까지 점점 더 밑에서부터

 기형적이 되어 가고 있는바, 어쨌건 최종(?) 목표는 바로 '돈'이라는 거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그런데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어떻게 하겠다는거지? 그렇게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건가?

 

그리고 '학교'는  '공부'를 독점함으로써 노동과 여가, 정치활동과 가정생활 등 삶의 모든 것이 그것이 행해지는 공간에서,

'관계맺기'를 통해 '공부'가 되는 것을 포기하도록 만들고, 나아가 "그것에 필요한 관습이나 지식을 가르쳐주는 것을 모조리 학교에 맡겨" 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공교육제도속에서의 '의무교육' 기간이 끝나면 그걸로 공부가 끝난다고 생각한다.

삶의 공간 어느곳에서도, 또 내가 관계 맺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속에서도 '공부'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정말로 '의무'교육 기간에만 단순히 '의무'적으로 공부할 뿐이다...

 

또한 '학교'는 더이상 '배움터'의 공간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근대사회에서 학교란 스승이 있고, 학문이 있는 곳이 아니라, 어떤 제도나 시스템으로서만 작동한다.

고로, 학교를 들어간다는건 그 제도적 장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콩도르세가 얘기하듯  "교육의 목적은 현 제도의 추종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 점을 이해하면, 현재 우리의 교육이 어떤 이유에서 '신부세습'의 도구로 전락했는지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어쨌건 근대 이전, 학인들은 스승을 찾아 천하를 떠돌았다. 그 시절엔 공부를 한다는건 어떤 스승의 문하에 들어간다는 걸 의미했고,

그 스승의 경지에 도달하고 싶다는 발심이 공부의 출발이자 원동력이 되었던 셈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공자, 맹자, 석가모니, 예수... 이런 분들이 바로 '스승'이 었고, 그 주위는 늘 '가르침'을 얻으려고 하는 이들로 가득했다...

즉, '스승' '배움'이란 '인생역전'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었고, 삶의 가르침을 얻는 것이며, 길을 안내해주는 것이다.

바로 이런 '스승' 과 그 길을 함께 가는 '벗'을 찾아가는 네트워킹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공부'다.

 

그래서 진정, 내 몸과 내 운명을 바꾸어놓는 것, 스스로를 성찰하고 탐색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어떤 특정한 시공간에 고착되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존재로

변이 되는 것, 그를 통해 세상의 질서와 배치를 바꾸는 것! 바로 이것이 '공부'와 '혁명'이 만나는 지점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자신'에 대해 알고 싶고,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알고 싶다면, 지금당장, 그리고 평생 '공부'해야 한다.

그것도 '온몸'으로!.  바로 이것이 '공부'가 '쿵푸'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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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공부는 셀프!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3-30 16:50 
    ─ 공부의 달인 고미숙에게 다른 십대 김해완이 배운 것 공부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 몸으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계기(혹은 압력?)를 주시곤 한다.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이고(말이 되나 싶죠잉?), ‘달인’을 호로 쓰시는(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
 
 
 
오빠는 필요없다 - 진보의 가부장제에 도전한 여자들 이야기 이매진 컨텍스트 15
전희경 지음 / 이매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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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에서  이 책에 대한 기사를 읽은 후 바로 책을 주문하고 나니 우연치고는 너무 기막히게도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이 보도됐다...

 진보의 가부장제에 도전한 여자들 이야기 '오빠는 필요없다'

왜 제목을 '오빠는 필요없다'라고 했을까? 굳이 필요없다고 까지 말할건 없지 않을까... 

'여성운동의 대중성 회복' 이라는 차원에서만 보더라도 사실, 일반 남성 모두를 지칭해 '적, 또는 가해자'로 규정짓기 보다는 남성들 또한 가부장제사회의 또다른 피해자이며, 이들을 우군으로 얻지 않고서는 여성운동의 성공은 어려운게 아닐까... 라며 초반부터 여러가지 상념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애초의 마음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다.

바로 다음과 같은 질문 때문이다...

 1. 왜 장기수는 '선생님'이고 위안부는 '할머니'로 부르느냐?

2. 여자후배가 남자 선배를 '형'이라고 부르는 운동권 특유의 문화에서 '형'이라는 의미가 '학형'의 준말이라 설명하지만, 여성은 남자 선배를 '형'이라 불렀지만 남성은 여자 선배를 '누나'라고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나? '호칭'이 갖는 정치적 의미는 무엇인가?

3. 사무실에 손님이 찾아오면 누가 손님에게 "커피 한잔 드실래요"라고 묻는가?

4. 사무실 컵을 닦는 것은 누구에게 집중되어 있으며, 집기가 있는 곳을 누가 모르는가?

5. 화염병, 사수대, 가두시위, 전투경찰과 싸우는 모습 등의 소위 군사화된 시위문화는 과연 누구, 어느 집단의 정서가 반영된 문화인가? 

6. 강철같은 의지, 강철대오, 전사, 총탄, 총칼, 깃발, 노동자 군대... 등 수 많은 민중가요 투쟁가에 나오는 이같은 언어들은 누구를 표상화한 이미지인가?

7. 잦은 외박과 mt, 사발식, 2차 3차 까지 가는  늦은밤까지 계속되는 뒷풀이 술자리 문화는 누구에게 '가족'과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나?

8. 노동운동 탄압에서 가족대책위의 구성원은  '누구'인가?

9. 공적영역만을 정치적인 장으로 보고, 가족, 연애, 결혼은 사적영역으로 분류하고 바라보는 것은 누구의 시선인가?

10. 왜 '가족' '육아'는 여성활동가들에게만 그토록 끈질긴 고민거리가 됐을까?

11. '동지'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진보'를 위해 용서와 침묵을 강요받을 때, 여성 활동가들에게 '성폭력'은 어떤 '의미' 인가?

12 '민족해방' '노동해방'을 전체운동 차원에서 '보편적'이라 정의하고, '여성해방'을 부문운동으로, '특수성'으로 정의 내리고, 바라보는 것은 누구인가?????

 사실, 질문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아니, 이러한 가부장적 성차별 문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은 거의 대부분 '과도한 감정'을 지적받는다.

그러나 자본가의 부당한 억압에 맞서 투쟁하는 남성(여성) 노동자들의 분노에 대해 "너무 민감하다"거나 "흥분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회적 약자가 억압이나 차별에 직면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오히려 부당한 상황에서 '감정적'이 되지 않는 것이 더 문제가 아닌가? 그것은 '합리'나 '이성' 이 아니라 약자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는 무능력일 뿐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활동가들은 '여성문제'라 일컬어 지는 것들에 대해 얘기할 때는 한껏 조심스러워야 한다.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억누르며, 아주 이성적으로, 그것도 아주 세련되게, 예술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절대로 그들이 제기하는 얘기가 들리지 않고, 오히려 반감만 사게될 거라고  여기게 된다.

 또한 많은 여성(활동가)들이 남성들과의 대화에서 무언가 답답함을 느끼고, 근본적으로 소통이 안된다고 여기는 것과 동시에 그것은 자신의 언어가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기 때문이며, 본인 스스로도 잘 '정리되지 않기 때문'  이거나 '내가 조리있고,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잘 전달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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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는 느리게 질주한다
시민자치정책센터 지음 / 갈무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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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09년 새해도 한달이 거의 다 지나간다.

늘 그렇듯이 새해가 오면, 작년을 평가하고 올해의 사업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올해는 좀더 근본적이고, 가히 성찰(?)적이기까지 하다...

 매번 늘 빠른 속도(?)로 평가보다는 계획에, 돌아봄 보다는 나아감에 의미를 두고 살아가는 나이지만 운동이 위기다, 단체가 어렵다, 희망이 무엇이냐, 우리의 비전은 무엇인가? 를 이야기하고, 고민할 때 마다 오히려 그런 물음, 고민들이 발목을 잡는다는 느낌이 더 많았다.

 

하지만 한번쯤은 지금 내가,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

우리는 어디를 향해 나아갈지를 점검하고, 다시 호흡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더욱 의미있는 책이 바로 '풀뿌리는 느리게 질주한다' 이다...

 

내가 기억하기로  민주주의, 정치에 대해 배운 곳은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아니면 중학교 때 인 것 같다.

물론 사전적인 의미에서의 배움이지, 민주주의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떤 것이 '정치' 인지를 느끼기 보다는 시험문제의 하나로 줄줄 외웠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95년 대학에 입학하고  어느 거리에선가 '지자체 실시'를 구호를 외치면서 뛰어다니던  그때도 사실 지방자치가 무엇인지 깊이 있게 알지 못했다...

 그렇게 밖에는 배운적이 없는, 그 의미에 대해 깊이 성찰해보지 않고, 어느새 공식처럼 새겨버 린 정치, 민주주의, 자치, 참여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고, 부여해 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작년 촛불의 주역들이 줄기차게 불러댔던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민의 원칙, 국가권력의 주인은 바로 국민이라는, 그리고 21세기는 모두가 왕이 되는 사회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은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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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않을 용기 - 알리스 슈바르처의
알리스 슈바르처 지음, 모명숙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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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아주작은 차이'로 익숙한 알리스 슈바르처의 신간 '사랑받지 않을 용기'!

개인적으로 새해를 맞이하면서, 올 한해 꼭 이루고 싶은 일 가운데 한 가지를 '다이어트'라고 결정하고 나서, 결혼과 출산 전 몸매로 돌아가기!를 야심차게 선포(?) 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다이어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자기관리 라는 측면을 벗어나, '다이어트'에 내재되어 있고 있는 근본적인 철학(?)은 무엇인가?

 먹을 것이 풍부한 나라에 살고 있는 여성들이 현재의 이상적인 몸매에 맞추기 위해 굶어 죽는다.

제3세계 사람들이 먹을게 없어서 굶어 죽는 반면, 제1세계의 소녀와 여성들(그리고 소수의 남성들)은 굶어서 죽는다.

그런데 제1세계에서만이 아니다. 텔레비젼을 통해 날씬한 몸매가 전 세계의 유행으로 퍼져나갔다.

1999년에는 다음과 같은 보도가 나왔다.

 튼튼하고 포동포동한 여성을 아름답다고 여겼던 피지섬에 텔렙리전이 도입되자 불과 3년만에, 살을 빼고 싶다는 십대 여자아이들이 6~7명에 한 명 꼴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모두가 먹기에는 먹을 게 너무 적었던 예전에는, 누가 무엇을 먹는가 하는 것이 지위와 성별의 문제였다.

그런데 왜 부유하고 여성해방이 이루어진 서구 사회의 여성들이 상추 잎이나 갉아먹는 걸까? 남자들은 스테이크나 구운 감자를 맛있게 먹는데 말이다. 그것은 여성들이 유행, 영화, 팝문화, 광고 등에 의해 그렇게 하도록 유인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남자들이 연출하고, 여자들은 강요된 이상을 구현한다.

 여성들은 드디어 자신들의 삶과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되었는데, 실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마오쩌둥 이전의 중국에서 전족한 발에나 어울렸을 법한 위험천만하게 굽이 높은 신발을 신은채, 굶어서 아픈 몸을 이끌고 작은 세계를 총총걸음으로 돌아다닌다...

 남자들이 신망을 얻으려고 매진하는 동안, 여자들은 다이어트를 한다. 남자들이 삶을 즐기는 동안, 여자들은 칼로리를 계산한다. 요컨대 여자들은  빈약해져야 하는 것이다. 어떤 관계에서나...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무엇보다도 나쁜 것은 여성들 자신이 날씬함의 망상에서 가장 못된 적이라는 사실이다.

여성들은 자신을 구속하는 외적인 사슬을 벗은 뒤 스스로 내적으로 포박되고 있다.

여성해방이 너무 빨리 이루어진 것일까?


여성들은 외적인 해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스로 결정할 힘을 갖고 있지 않은게 확실하다.

패션과 광고, 그리고 영화처럼 남자들이 지배하는 업계로부터 여성에게 파괴적인 이상이 요구되고, 다수의 여성들이 그것을 실행한다.

"너 뚱뚱해졌구나!" 라고 몸매를 거론하는 것은 도리어 여성들이다!

 어느새 몸매, 외모가 경쟁력이고 능력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나또한 뒤질세라 '다이어트'를 통한 경쟁력을 갖추고자 하는 건 아닌지...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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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 내 몸을 바꾸는 에로스혁명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6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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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내가 일하는 여성단체에서 비혼여성들과, 부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과 사랑, 연애에 대한 강의를 한적이 있었다.

특히 비혼들을 위한 강의 부탁을 하면서

' 꼭! 반드시 내가 있는 연애' 를 해야 한다는 걸  심어주세요'라는 부탁을 강사님께 했었다.

그리고 나서는 강사님이 이 강의를 위해 읽었다는 바로 그책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에로스' 의 영향인지, 아무튼 그날의 강의는 참가한 비혼 남녀들의 가슴을 치고, 울리고..  아무튼 훌륭했다.

사실 아이가 이제 여섯살인 나도 가끔(?)은  '모든것을 다바치는 그런 강렬한 연애'를 해보고 싶다는 꿈(?)을 꾼다.

물론 사람들은 '너 같은 사람때문에 이렇게 솔로인 우리들이 기회가 없는거야'라며 비난아닌 비난을 하지만,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드라마같은 그런 운명적인 사랑과 연애는 로망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 책은 이런 로망을 여지없이 날려버린다.

그리고 '사랑'뿐만 아니라, 관계에 대해, 인생에 대해 '나'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만든다....

 "부숴 버릴 거야!"라는 대사를 한동안 유행시켰던 sbs드라마 '청춘의 덫에서 여주인공 심은하는  극중에서 남자주인공(갑자기 이름이 생각안난다...)과 열렬히 사랑하고 온갖 뒷바라지를 다하지만 결국은  남자주인공이 부잣집 딸과 눈이 맞아 자신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떠나자 복수를 꿈꾼다는 지극히 통속적인 멜로드라마를 기억할 것이다.

 그 런데 이 복수혈전의 멜로적 공식구에는 치명적인 함정이 있는데 바로 복수혈전이 펼쳐진다는 건 그 사랑의 원인이 내가 아니라, 상대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전제하고 있는 셈...

그런데 만약 그렇게 모든 원인이 상대한테 있다면, 그걸 사랑이라고 이름할 수 있을까? 그건 사랑이기보다 노동이나 거래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이렇듯 사람들은 사랑을 언제나 대상의 문제로 환원한다.

상대를 잘못 만나 인생을 망쳤다면, 그런 상대를 선택한 '나'라는 존재는 대체 뭔가?

 사랑 따로 대상 따로 나 따로가 아니라, 나와 사랑과 대상이 하나로 어우러질 때  '사랑'이라는 사건이 발생한다.  제대로 된 사랑을 꿈군다면, 반드시 환기해야 한다. 사랑과 대상과 나 사이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

나아가 사랑하는 대상, 그것은 바로 '나'자신이라는 것을....

 그리고 덧붙이자면, 사랑은 절대 사적인 것이 아니다. 흔히 평생 가슴속에 은밀히 담아 두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거야말로 무지의 소치다. 사랑을 이야기하고 실천하는 욕망자체가 사회적 배치의 산물이자 우주적 본능의 발현인데,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협소한 영역에 가둬 두는 한 절대 상처와 연민, 동정 등의 미망에서 해어날 수 없다.

 사랑 혹은 에로스적 본능이란 단지 둘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가 외부와 맺는 모든 관계를 포함한다!

 여기까지가 대충 이 책의 머리말에 나온 핵심내용이다.

 지금 이순간 간절히 '사랑'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망설이지 말고,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쉼없이 공부하라.

 그렇다면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것도 두려움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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