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서사 교유서가 어제의책
오카 마리 지음, 김병구 옮김 / 교유서가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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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제가 오랫동안 뒤쫓고 있는 화두입니다. 그 기억과 서사를 어떻게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도쿄외국어대학 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료하고, 현대아랍문학과 제3세계 페미니즘 사상을 전공하였다고 합니다.. 교토대학 대학원 인간·환경학연구과 교수이자 교토대학 명예교수라고 하는데,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교수의 자격이 그리 엄격하지 않은가 봅니다.


아랍어를 전공한만큼 탈 자아타르라는 단어를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아랍어로 탈(Tal)언덕자아타르(al-Za‘atar)는 향초의 시간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말로 옮기면 시간의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난 언덕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가 봅니다. 탈 자아타르는 레바논의 베이루트 교외에 있는 지역의 이름으로 대량학살이 벌어진 비극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기억이란 한 사람이 뇌에 받아들인 인상, 경험 등의 정보를 간직하며, 어떠한 계기에 이를 도로 떠올려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서사란 행동이나 사건의 흐름을 직접 보여주는 표현양식으로, 삶의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호머의 <일리아드><오디세이>가 대표적인 서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서사는 집단기억을 형성하게 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과거에 글자가 발명되기 전에는 주로 서사의 방식으로 개인이 기억하는 바를 전하였으나, 문자가 발명된 이후로는 문자가 서사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서사를 대치하게 된 소설이 서사와 다른 점으로 서사는 모어로 소통하게 되는 것과는 달리 소설은 번역을 통하여 다양한 언어로 전해진다는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사실 개인의 기억이란 결코 정확할 수 없다고 알려졌습니다. 상황이 발생하여 시간이 오래 경과되면 기억 자체가 흐려지면서 제대로 회상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기억이 주는 부정적인 효과로 인하여 기억자체를 스스로 왜곡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민족이 이스라엘을 건국하면서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민족과 생존을 건 갈등을 빚는 과정에서 집단학살을 자행하고 있다는 점을 예로 들면서 나치의 홀로코스트와는 차별점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발자크의 단편소설 아듀를 비롯하여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쉰들러 리스트>, 일본군 위안부 사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 등 다양한 사례들을 인용하여 서사의 본질을 논하였습니다. 사실 어떠한 명제를 논함에 있어 절대적 해석이 가능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겠습니다만, 저자는 인용한 사례들을 해석함에 있어 명쾌한 입장을 유보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과거 일본이 저지를 역사적 과오에 대해서는 더욱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홀로코스트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등의 수정주의 역사를 수용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렇듯 모호한 점은 옮긴이의 설명에서 다소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억.서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업시 도래하는 폭력적 사건의 기억 때문에 현재의 삶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들은 왜 과거의 폭력적 사건의 수인이 된 채 사회 밖 타자로 고통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는가, 그들을 고통스러운 기억의 감옥에서 놓여나게 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의 물음을 던지고, 이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소설, 영화, 르포르타주 등 다양한 장르의 서사 비평을 통해 모색해보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167)”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타자가 가진 고통스러운 기억을 제3자가 분유(分有)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과연 옳은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3자가 분유한다는 생각은 어쩌면 고통스러운 기억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행위를 통해서 풀어낸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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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쓴 옛날이야기 루쉰문고 7
루쉰 지음, 유세종 옮김 / 그린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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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를 좋아하신 선친 덕분에 일찍부터 열국지, 금병매, 수호지 등 중국의 고전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만, 중국 근대소설 읽기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10월로 예정된 펀트래블의 중국근대문학기행에서 루쉰, 라오스, 마오둔 등 세 명의 작가들의 발자취를 찾아갈 예정입니다. 비교적 시간여유를 두고 참여를 결정했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을 두루 읽어보고 있습니다. <새로 쓴 옛날 이야기>는 아직 독후감을 쓰지 못한 <루쉰, 길 없는 대지>에서 평론가 고미숙이 소개했습니다.


<새로 쓴 옛날 이야기>1922년부터 1935년 사이에 쓴 8개의 작품을 수록한 <고사신편(古事新編>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고미숙은 일종의 소설집이라고 했습니다. ‘일종의라는 단서를 붙인 것은 고사, 즉 신화, 전설, 민담 등 여러 문헌에 전해지는 기록들을 모아 새롭게 짜깁기 했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고사를 재해석하는 접근이 아니라 고사를 가져다가 루쉰이 경험한 일들을 섞어놓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글을 제대로 읽으려면 고사의 원형을 읽어보아야 함은 물론이고 루쉰이 겪을 일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기본 틀이 되는 고사는 10여년 전에 읽은 <중국신화전설1>에 담긴 이야기들이 있어서 읽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만 루쉰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알 수가 없어서 이야기 속에 숨겨진 뜻을 제대로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루쉰이 창안한 방식의 글쓰기는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는 복고취향과는 거리가 있지만, 린위탕(林語堂)의 소품문 운동, 즉 고전을 시류에 맞춰 변주하는 작업과는 맥을 같이하는 작업이라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루쉰 자신은 린위탕의 소품문 운동과 연결하려는 움직임을 단호하게 잘라냈다고 합니다. 고미숙에 따르면 고대적 서사 위에 현재적 사건을 촘촘히 박아 넣음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없애 버렸다는 것입니다.

고미숙은 <고사신편>에서 시간여행의 미학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고대와 현대를 넘나듦으로써 상식과 통념, 나아가 표상의 근저를 무너뜨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신화전설1>을 읽어 고사의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루쉰의 작업이 고사의 본질을 훼손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잘못 알게 만드는 부작용이 예상된다는 점입니다. 역사를 재해석한다는 영화나 연속극에 사실이 아닌 허구의 이야기를 짜깁기해 넣으면서 역사의 실제를 모르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사실이 아닌 역사를 믿게 만드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현실에서 입증된 내용입니다.


<새로 쓴 옛날이야기>에 실린 첫 번째 이야기 하늘을 땜질한 이야기1922년에 썼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여러 이야기들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중단했던 것을 왕징즈의 <혜초의 바람>에 대한 음험한 비평을 읽고서 장난을 치고 싶은 생각에서 소설을 마무리하고서는 이런 글을 다시 쓰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랬다가 샤먼에 숨어 살던 1926년에 달나라로 도망친 이야기검을 벼린 이야기를 썼고, 상하이에 정착한 1934년에 1, 1935년에 4편을 몰아 써 <고사신서>를 출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필자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책과 여행을 묶어 쓴 이야기를 사내잡지에 연재하다가 중단되었던 것에 새로운 이야기를 더해서 <양기화의 BOOK소리-유럽여행>편을 출간했던 것입니다.


<새로 쓴 옛날이야기>는 중국의 고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보다는 루쉰이 살던 당시의 중국의 사회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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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회 교과서 - 한국인이라면 꼭 알아야 할 대한민국 이야기
대한민국교원조합 교과서 연구회 지음 / 양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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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교원조합의 교과서 연구회가 편찬한 <대한민국 사회교과서>2월에 만난 민동석 전외교부 차관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무려 6개월만에 완독을 한 셈입니다. 교원단체로는 교육 발전에 기여하고 교원의 권익과 지위를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1947년에 창립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이 가장 먼저 성립되었습니다. 이어서 교권 보호와 교육 민주화를 앞세우면서 만든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1989년에 출범했습니다. 현재는 학교의 민주화를 이끌어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학교의 정치세력화를 불렀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심지어는 출범 당시 타파하겠다던 한국교총의 교조적인 행태를 닮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사회교과서>를 편찬한 대한민국교원조합(대한교조)교원주체간 화해ㆍ협력을 통한 새로운 교단문화 창출, 교육선진화를 지향하는 교원노조 활동, 글로벌 교육경쟁력 회복, 전교조형 이념 활동 지양, 새로운 교원 패러다임 구축 등을 5대 목표로 하여 2008년 출범하였습니다. 대한교조는 그동안 전교조가 역대 대통령들이 독재를 했다면서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는 선동적인 말로 싸잡아 비난하는 등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좌파 이념의 역사관을 심어주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일제의 식민지배를 벗어나자마자 좌우 이념대립에 더해 6.25동란을 일으키는 등 자유대한민국의 근간을 흔들어온 공산 북한의 방해를 이겨내고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서도록 이끌어온 역대 대통령들의 성공적인 역사는 깎아내리고 전체주의 독재 체제의 북한을 옹호하는 전교조식의 역사관을 바로 잡기 위하여 시작한 사업이 <대한민국 사회교과서>의 편찬이라고 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교과서>는 대한교조의 설립취지에 걸맞는 성과라 하겠습니다.


먼저 들어가기에서 이 책을 펴내는 이유를 설명하고, 이어서 자유민주주의국가의 개념을 정리해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구한말, 일제 강점, 해방직후의 군정 등 대한민국이 성립되기 이전의 사회적 분위기를 설명합니다.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에서는 끊임없는 좌익의 훼방 속에서 어렵게 성립시킨 건국과정, 겨우 성립한 자유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을 공산화하기 위하여 6.25동란을 벌인 북한의 야욕을 미국을 비롯한 자유진영의 지원으로 꺾어낸 과정,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역시 자유진영의 지원과 굳센 의지로 살려내 오늘날 선진국 대열에 동참하게 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대한민국의 성공에 좌파들이 깎아내리려 혈안이 되어 있는 역대 대통령의 굳은 신념과 혜안과 같은 정책추진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사회교과서>는 역대 보수정권의 대통령들의 업적을 폄훼하는 좌파적 역사교과서와는 달리 역대 대통령들의 업적만을 부각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역대 대통령들이 저지른 비난받아 마땅한 행태들도 제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냉정할 정도로 가치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니 우파적 역사교과서라고 비난받을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제의 식민지배가 끝난지도 벌써 80, 그 사이에 벌써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렬, 이재명까지 14명의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이끌어왔습니다. 그 사이에 보수정권에서 진보정권으로, 진보정권에서 다시 보수정권으로, 투표를 통하여 여러 차례 정권의 교체가 이루어졌으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나라의 GDP통계는 1970년부터 집계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6.25동란이 진행 중이던 1953년의 1인당 GNP67달러로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전쟁 중이었던 탓에 산업생산의 기반이 무너졌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경제개발계획이 실행에 들어가던 1970년에는 254달러에 그쳤던 대한민국이 2024년 기준 1인당 GNP36,624달러로 인구 5천만이 넘는 국가들 가운데 일본을 제치고 세계 6위에 올랐습니다. 이런 성공은 건국 초기에 우리나라를 이끌었던 대통령들의 장기적 혜안이 밑바탕이 되었음을 <대한민국 사회교과서>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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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나무 아래 - 시체가 묻혀 있다
가지이 모토지로 지음, 이현욱 외 옮김 / 위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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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이 모토지로(梶井 基次郞)의 단편소설집 <벚꽃나무 아래 시체가 묻혀 있다>는 제목이 주는 섬뜩한 느낌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N해안에서 만난 K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적은 ‘K의 죽음은 일본탐미주의단편선집에서 이미 읽어본 바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는 이과에 진학했지만 문학과 음악에 흥미를 느껴 대학은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는 폐결핵에 걸렸는데 초기에 치료에 소홀하게 되면서 병이 깊어졌고, 그때는 요양에도 불구하고 일찍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투병과정에서 생기는 감정의 변화가 작품에 반영되어 그의 작품들은 사소설의 범주에 들어간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전반적으로는 탐미주의 계열의 경향을 보인다고 하겠습니다.


<벚꽃나무 아래 시체가 묻혀 있다>에는 태평스러운 환자’, ‘칠엽수꽃-어떤 편지’, ‘바다’, ‘어느 벼랑 위에서 느낀 감정’, ‘겨울 파리’, ‘레몬’, ‘애무’, ‘작은 양심’, ‘K의 죽음’, ‘벚꽃 나무 아래’, ‘눈 내린 뒤’, ‘게이키지12편이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첫 작품 태평스러운 환자의 주인공이 작가처럼 폐결핵을 앓고 있는데, 서너 편에서 결핵에 관한 언급이 나옵니다. 표제작인 벚꽃 나무 아래에서는 벚꽃이 화사한 이유는 분명 나무 아래 시체가 묻혀있어 뿌리가 수정 같은 수액을 빨아올린다는 기상천외한 상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작품은 주로 병상에서 구상된 것인데, 그래서인지 소설 속 주인공은 불안하고 우울하고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거나 막연한 희망을 뒤쫓지도 않습니다. 히라타 지사부로(平田次三郞)는 가지의 모토지로의 작품은 병든 삶의 표현이었지만 거기에 나타나는 것은 맑고 깨끗한 삶의 숨결이라고 했습니다.


애무에서는 고양이의 귀를 잡아당기거나 깨물기도 하고, 전철표 천공기로 구멍을 뚫는 상상을 하는데, 심지어 고양이의 주인은 발을 잘라 화장하는데 소도구로 사용하기까지, 끔찍한 상상을 한다는 것입니다. ‘태평스러운 환자에서는 폐결핵을 치료하기 위하여 송사리를 다섯 마리씩 삼킨다거나, 인간의 뇌수 구이가 치료약이라고 소개하는데, 제가 어렸을 적에는 나병에 어린 아이의 간이 특효약이라 하여 나병환자가 어린아이의 간을 빼먹는다는 소문도 돌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불치의 병에는 무엇무엇이 특효약이라는 소문이 돌았던 것을 작품에 반영한 셈일 것 같습니다.


<벚꽃나무 아래 시체가 묻혀 있다>에서 보는 것처럼 작가 자신의 삶을 담은 소설을 일본에서는 사소설(私小說)이라고 합니다. 심경소설(心境小說)과 같은 맥락으로 이야기되기도 하지만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자연주의 문학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합니다. 다야마 카타이(田山花袋)<후톤(蒲団)>이 사소설의 시작이라고 합니다만, 히라노 켄(平野謙)1913년의 치카마스 아키에(近松秋江)<기와쿠(疑惑)>와 기무라 소타(木村莊太)<케닌(牽引)이 사소설이 확립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시가 나오야(志賀直哉)<와카이(和解)>는 심경소설의 범주에 포함됩니다. 객관적인 사실뿐 아니라 작가의 내면을 묘사하는 것이 초점이 됩니다.


태평스러운 환자를 마무리하면서 작가는 폐결핵 환자의 90%는 약다운 약도 없이 죽음을 재촉하는 형편이고 보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나 병의 괴로움을 굳세게 견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느 쪽도 견딜 수 없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새겨둘 만한 이야기입니다.


가지이 모토지로는 폐결핵을 앓아 31살에 죽음을 맞은 천재작가로 자리매김을 했는데, 1907년 산조에 문을 열어 1940년에 가와라마치로 자리를 옮겨 영업을 한 마루젠 교토는 가지이 모토지로의 <레몬>의 무였습니다. 그래서 2005년 폐업하게 되었을 때는 교토 시민들은 이 서점의 예술서적 구획에 레몬을 놓아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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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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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여행기 <설국을 가다(가제)>의 최종고를 출판사에 보내면서 마지막으로 읽기 시작했던 책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이야기하는데 아무래도 읽어봐야 할 것 같아서 였습니다. 책을 읽은 느낌은 교정을 보는 과정에서 추가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유종호교수님이 수필집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에 실은 문학의 전락-무라카미 현상에 부쳐에서 학생들의 독서 경향을 알기 위해 필자가 읽어본 바로는 노르웨이의 숲은 고급문학의 죽음을 재촉하는 허드레 대중문학이다. 작품 속에는 온통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고교 3년 남학생의 자살을 위시해서 수수께끼 같은 자살이 빈번하다. 또 성적인 문제로 좌절이나 일탈을 경험하는 일탈자들이 많고 성적 호기심을 부추기는 성적인 얘기가 전경화되어 있다. 도발적이고 독자들의 허를 찌르기는 하나 성적으로 격리된 수용소 재소자들이 일상적으로 나눔직한 성의 얘기로 가득 차 있다.”라고 했던 것에서 더하거나 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자의 정신적 성장을 그려본다는 취지였던 것 같습니다. 히지만 화자를 둘러싼 남성 혹은 여성 등장인물들이 개연성이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거나 심지어는 죽기까지 하는 것을 읽으면서 이야기를 끌어갈 힘이 떨어지면 그 인물을 사라지게 하거나 죽게 만든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겼습니다. 오래 전에 누리사랑방 친구가 쓰는 소설에서 느꼈던 점을 다시 느끼게 된 것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비틀즈의 노래 노르웨이의숲(Norwegian Wood)이 몇 차례 언급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노르웨이에 관한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왜 노르웨이의 숲이었을까요? 그 무렵 일본에서는 비틀즈의 노래를 노르웨이의 숲으로 소개했다고 하는데, 비틀즈 원곡의 제목은 노르웨이산 목재가구였다고 합니다. 숲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폴 매카트니 역시 회견을 통해 당시 유행하던 저렴한 노르웨이산 가구를 칭한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비틀즈의 노래 Norwegian Wood(This bird has flown)의 가사에 꽂힌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도 한때 여자가 있었어/아니면 그녀가 한때 나를 가졌었다고 말해야 할까요?/그녀는 나에게 자기 방을 보여주었다/노르웨이산 목재 좋지 않나요?/그녀는 나에게 머물라고 했어요/그리고 그녀는 만에게 아무데나 앉으라고 하더군요/그래서 주위를 둘러보니/그리고 보니 의자가 없더라구요/나는 양탄자 위에 앉아 시간을 기다리며/그녀의 와인을 마시며/우리는 2시까지 이야기를 했고 그 후 그녀가 말했어요/‘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이야’/그녀는 나에게 일했다고 말했어.아침에 웃기 시작했다/나는 그녀에게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어요/그리고 욕조에서 기어서 잠을 잤어요/그리고 내가 깨어났을 때 나는 혼자였어/이 새는 날아갔다/그래서 불을 피웠어요/노르웨이산 목재 좋지 않나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래의 가사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2011년에 펴낸 수필집 무라카미 잡문집에서 오역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제목이 갖는 중의성이 마음에 들어 제목으로 가져왔다고 했답니다. 또한 노랫말 가운데 ‘She showed me her room, Isn't it good? Norwegian Wood.’이라는 부분에서 ‘Norwegian Wood’‘Knowing she would’로 바꾸어 불렀다면 그녀는 내게 방을 보여줬지. 얘가 대줄 거란 걸 아는 건 좋지 않아?“라고 해석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을 달게 된 배경도 분명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1988노르웨이의 숲으로 소개되었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고 합니다. 비틀즈의 노래 역시 내용의 저급함으로 방송금지 상태였기 때문이었던 것도 이유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문학사상사에서 작가의 뜻과는 달리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간하면서 젊은이들의 관심을 붙드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1990년대의 시대적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던 것일까요? 역시 시장에 내놓는 책의 성패는 제목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달린 것이 맞습니다.


항공사마다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할 때 특정 노래를 기내에 들려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체코항공의 경우는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2악장 블타바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함부르크 공항에 내리면서 비틀즈의 Norwegian Wood(This bird has flown)를 들려주는 비행사가 정말 있는지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 시작되는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주제나 전개가 전혀 공감을 주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나이들어 읽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만, 저의 개인적 독서취향을 보건대 젊어서 읽었어도 크게 공감하였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십대 시절 자살한 친구 기즈키의 연인 나오코에게 언제까지나 기억할 거야라고 약속하고는 같은 수업을 듣는 미도리가 나는 살아 움직이는, 피가 흐르는 여자야.’라고 말하자 놓치기 싫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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