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 기록자
사이토 마사히코 지음, 조지혜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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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관한 다양한 책들을 읽어오고 있습니다. 치매 환자가 쓴 투병기도 몇 종류 읽어보았습니다만, 치매 환자가 남긴 일기의 내용을 분석한 책으로는 <알츠하이머 기록자>가 처음입니다. 원제목은 <アルツハイマ-になったがみた世界>로 우리말로 옮기면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어머니가 본 세계>입니다. ‘모든 바람이 다 이루어지리라곤 생각 않지만이라는 부제는 일본의 전통 시가인 와카(和歌)를 짓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쓴 모든 바람이 다 이루어지리라곤 생각 않지만 걸음만은 스스로 곧게 옮겨가기를이라는 시에서 뽑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환자가 남긴 일기를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치매를 전문으로 하는 아들이 어머니의 일기를 분석하고 어머니의 의무기록과 자신의 일기와 전자우편 등을 비교하여 어머니의 병세가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분석해놓았습니다. 저자는 치매를 전문으로 하는 정신의학과 의사입니다. 그런데 가족, 특히 어머니의 병세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객관적이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서문에 이런 대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환자도 의사가 외부에서 관찰해 객관적으로 기재한 증상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정신과 의사 역시 인지기능이나 정신의 이상에 혼란을 느끼고 불안을 껴안은 환자의 주관적 증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7)”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알츠하이머형 인지증으로 진단받은 한 여성이 손상된 인지 기능을 통해 외부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느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주요 주제라고 했습니다.


선친께서도 일찍이 일기를 쓰셨는데, 작고하시기 전 언젠가의 시점에 끝나 있었습니다. 임종에 즈음할 무렵까지 치매를 의심할 만한 증상을 볼 수 없었는데, 함께 사시던 어머니께서는 치매가 의심되는 증상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저자의 모친께서는 67세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87세까지 20년에 걸쳐 일기를 썼다고 합니다. 1924년생이니 1991년부터 2011년까지 쓴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자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성장이라는 제목의 생애사를 쓰는 것으로 사후 준비작업은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는 저의 선친께서도 사세(辭世)라는 제목으로 삶을 요약하셨던 것과 닮았습니다.


저자 자당의 일기를 읽다 보면 정말 열심히 살았고, 그 기록도 꼼꼼히 남겼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2005년부터인가 일주일 단위로 행적으로 정리하는 주간일기를 써왔습니다만, 2년반 전에 전립선암을 진단받으면서 하루의 행적을 적는 일기를 새로 쓰고 있습니다. 그날그날의 감상은 아주 드물게 적고 있습니다. 앞서 쓴 독후감 역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일기를 바탕으로 한 책이었던 점을 보면 책읽기도 흐름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치매환자가 힘들어하는 점은 최근의 일을 기억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학습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젊어서 써오던 기기는 아직도 쉽게 쓸 수 있지만, 새롭게 나오는 기기는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저 역시 새로운 장비를 만나면 일단 주춤거리게 돕니다. 그런데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인력을 줄이는 대신 기계로 그 업무를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인지기능이 떨어진 치매환자는 물론 노인들의 사회생활을 어렵게 하는 상황이 확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의 장인께서 전립선암으로 치료받고 있는데 가정산소요법을 받고 있다는 기록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어떤 치료인지 알아보고 저도 받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역시 책읽기는 생각지도 못한 정보를 얻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자의 자당께서는 74세가 되었을 때 처음 작성한 유서를 주기적으로 보완했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를 남기고, 장례절차 등을 어떻게 해달라고 하는 당부를 담은 것입니다. 저도 조만간 유서를 쓰고 정기적으로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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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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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책 <설국을 찾아서>에서는 금년 1월 여행사 펀트래블의 일본근대문학기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여행과정에서는 도쿄에서 멀지 않은 가마쿠라도 가보았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에 등장하는 엔가쿠지를 비롯하여 가마쿠라 해변에 가서 작품 속의 분위기를 직접 느껴보기도 했습니다. 가마쿠라의 해변에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무대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적었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쓴 <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를 읽어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띄었던 것입니다. <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2019년 열린 제76회 베네치아 영화제의 경쟁부문 개막작으로 상영된 고레에다 감독의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제작과정에 얽힌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감독의 영화론이자 자전적 영화 수필이라고 합니다.


책은 일기 형태로 되어 있는데, 2018823일 자부터 시작하지만, 중간에 521, 824일로 이어지더니 201793일부터 1212일까지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촬영에 들어가 마무리할 때까지의 과정을 소개하고 있는데, 배우들과의 면담, 촬영장소의 선정, 대본작업, 촬영 시의 배우들의 동선 등, 감독 업무와 관련된 자료들을 비롯하여 배우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지나칠 정도로 많이 담아냈습니다.


배우들과 이야기하면서 영화 작업을 하는 감독들, 배우들, 그리고 작품들에 관한 뒷이야기들도 많이 나누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독은 내가 경험한 이런저런 일을 내 나름대로 재미있어하며 썼다. 영화 감독이란, 영화 찍기란 힘들지만 재미있는 일이구나, 하고 조금이라도 생각해주면 좋겠다.(22)”라고 서문을 마무리했습니다.


2019년에 제작된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시작은 2003년이라고 했습니다. 원래는 도쿄 시부야의 파르코 극장에서 공연할 연극으로 준비한 이야기였다는 것입니다. 처음 제목은 <이렇게 비 오는 날에>였다고 합니다. 인생의 말년에 이른 노년의 여배우가 레이먼드 카버의 희곡 <대성당>의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무대 뒤에 있는 분장실에서 이렇게 비 오는 날에 연극을 보러 오는 사람이 있으려나하고 중얼거리는 대사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합니다.


20112월 쥘리에트 비노슈 배우가 일본에 왔을 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만나서 작품을 함께 하고 싶다라고 했던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 막상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줄거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1510월 파리에서 도쿄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착상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유명한 배우들이 남긴 명언도 읽을 수 있습니다. 폴 뉴먼 배우는 나는 재능이 없다. 내 장점은 끈기뿐이다. 베티 데이비스는 나약한 인간에게 늙는다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나도 지금 나이와 싸우는 중이다.(42)”라고 했답니다. 카트린 드뇌브 배우는 우리 어머니는 친구나 낯선 사람이 딸들이 참 예쁘네요라고 할 때마다 어린애한테 외모를 칭찬하는 말을 하면 안 돼요라고 했어. 외모는 타고 난거지 본인이 노력해서 얻은 게 아니니까 칭찬할 필요가 없다고 전부터 말했거든.(52)”라고 했답니다.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말로 보이는 시간이 흐르면 과거의 의미는 달라진다. 그게 내가 <감저으이 기억>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다.(115)”라는 말도 있습니다. 프랑스 영화감독 알랭 러네는 섹스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이르기까지와 그다음이 재미있다.(193)”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관련해서는 카트린 드뇌브 배우가 칸 영화제의 상영에 와주었고, 상영이 끝난 뒤에 손키스를 날려주었다고 하며, 식당에서 만난 아야세 하루카(綾瀬 はるか) 배우[장녀 코다 사치 (香田幸) ] 배우에게 모든 여배우가 그 자리에 서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당신은 참 운이 좋네.(51)”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요시다 아키미라는 작가가 그린 9권짜리 만화가원작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영화 감독이라는 직업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야기의 흐름이 마구 뒤섞이는 느낌이지만, 톡톡 튀는 듯한 생각들이 반짝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역시 일기는 꾸준하게 써야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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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 - 개정판
크누트 함순 지음, 우종길 옮김 / 창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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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누스 함순의 <땅의 혜택>에 이어 읽은 그의 초기 작품 <굶주림>을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미국에 다녀온 다음 발표한 작품입니다. 역시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는데 그가 직접 체험한 극심한 가난과 굶주림의 상황, 그리고 심리 상태를 그려냈다고 합니다. 옮긴이는 <굶주림>에는 전혀 새로운 인간형이 등장한다고 했습니다. “19세기의 기술과 과학 발달의 희생자로서 태어난, 신경질적이고 지적이며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기술과 과학 발달의 희생자라는 점은 크게 부각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또한 끼니를 거르기를 밥 먹듯 하면서도 자신보다 힘들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가진 것을 전당포에 맡겨 돈을 만들어 도와주기도 합니다. 어떻든 주인공은 글을 써서 신문사에 팔아 근근이 버티고 있습니다.


논어 술이편에는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 즐거움이 그 안에 있고 / 의롭지 않게 부귀를 누림은 / 나에게는 뜬 구름과 같다.(飯蔬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이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굶주려도 의를 버릴 수 없다는 것인데, <굶주림>의 주인공은 굶주림에 굴복하여 의롭지 않은 일도 저지르기도 합니다. 거짓을 말하고 금전을 훎기고 합니다. 어쩌면 극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금기라 할 일까지도 서슴치 않고 저지른 것입니다. 그래서 앙드레 지드는 서문에서 계속되는 굶주림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온갖 도덕적인 변모와 지적인 동요를 다루었다고 했나봅니다.


구직과정에서 수없이 퇴짜를 맞은 것을 보면 글쓰는 일 말고는 특별한 재능이 없었던가 봅니다. 아니면 거친 일은 할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찾아낸다는 것이 내게 얼마나 절실한 일인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내가 자리를 찾아낼 때마다 하느님이 간섭하고 모든 것을 망치니, 이건 절대적으로 불공평하다고 했습니다.


월세를 낼 수가 없어서 노숙을 밥먹듯하고 심지어는 경찰서의 유치장을 제발로 찾아들기도 하는데, 숙식을 해결하기 위하여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도 납니다. 어떻든 굶주림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반전도 없이 읽어야 하는 것도 부담스러웠습니다. 아마도 무언가 화자가 굶주림을 해결할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읽어갔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곳이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이며 시대적 배경은 저자가 미국에 다녀온 19세기 말임을 생각해보면 사회보장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던 시절이었던가 봅니다. 화자는 결국 허드렛일을 할 선원으로 배를 타고 도시를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뉴펀들랜드 뱅크로 대구를 잡으러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때의 경험은 <아이슬랜드의 어부들>에 담았다고 합니다.


소개의 글을 쓴 옥타르 미르는 이 작품이 대단하다고 했던 이유가 쉽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사회에 대한 반항이나 열렬한 훈계라든지 격렬한 비판이나 요구가 없었다는 것, 몇날 며칠이고 굶고 지내면서도 불평도 증오감도 없다는 것이 특별하다는 것이었을까요?


미국에서 노르웨이로 돌아와서는 얼마 후에 파리로 피신해서는 가난하고 고독한 가운데 열심히 글을 써갔다고 합니다. 합리적인 프랑스 문학 경향과는 다른 그런 글은 결국 프랑스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화자를 비롯하여 <굶주림>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을 대체로 순박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물론 셋집 주인처럼 빡빡한 사람들도 있기는 합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활로를 찾아볼 것인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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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혜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9
크누트 함순 지음, 안미란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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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노르웨이 작가 크누트 함순에게 노벨문학상이 돌아가게 한 작품 <땅의 혜택>을 읽었습니다. “황야를 지나 숲으로 통하는 기나긴 길. 그 길을 낸 것은 누구였을까?”라는 의문으로 시작하는 <땅의 혜택>50대에 들어서 노르웨이의 북극권에 있는 노를란 지방에 농장을 구입하여 직접 경작하게 된 작가적 경험을 바탕으로 동토의 땅을 개척하는 농민들의 생활을 그려낸 일련의 작품들 가운데 마지막 작품입니다.


노를란은 노르웨이 중남부에서 태어난 작가가 3살 때 가족을 따라 이주한 곳이었습니다. 여름에는 백야가 겨울에는 암흑이 계속되는 그런 곳에서 성장하여 열네 살 때부터는 상점 점원, 제화공의 도제, 사무 보조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한 끝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열여덟에 단편 수수께끼의 남자를 발표했습니다. 두 차례에 걸쳐 미국을 다녀왔고, 31살 때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경험을 담은 <굶주림>을 발표하여 대대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땅의 혜택>은 마을에서도 몇 킬로미터 떨어진 황무지를 지나 숲이 시작되는 곳에 정착하여 삶을 개척하기 시작한 남자 이사크와 그의 아내 그리고 자녀들까지 2대에 걸친 삶을 그렸습니다. 낙엽과 썩은 나뭇가지가 수천 년간 쌓여 영양분을 가득 품은 부식토와 습지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이사크는 매일 일을 했습니다. 처음 시작한 일은 자작나무의 껍질을 벗겨 말린 뒤에 몇 킬로미터 떨어진 마을로 가져가 건축자재로 팔아 식량과 일용품 그리고 연장을 구해오다가 암염소 두 마리와 숫염소 한 마리를 사 옵니다.


가축이 생기게 되면서 혼자서 생활하는 것이 어렵게 됩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나는 라플란드 사람들에게 하녀를 구하고 있다는 소문을 내달라고 합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오두막을 지었지만 힘든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서 밭을 일구고 감자를 심었을 때 그를 도와줄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소문을 들은 것인지 우연히 들른 것인지는 모르나 잉에르라고 하는 여자가 이사크를 도와주기로 한 것입니다.


그녀가 온 뒤로 외로운 남자 이사크의 삶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그녀는 이사크가 하는 일마다 크게 놀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만든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녀는 그저 이사크의 일손을 도와주는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친척에게 맡겨놓은 어미양 두 마리와 새끼양 몇 마리를 데려온 것입니다. 그리고 금뿔이라는 이름의 소까지. 가축이 늘어나자 이사크는 집을 늘려 지어야 했고, 겨울을 나기 위해 건초도 만들어야 했습니다. 겨울이 되기 전에 금뿔이는 송아지를 낳았고, 봄이 되기 전에는 잉에르가 아이를 낳았습니다.


처음에는 마을에서도 하루를 꼬박 가야 하는 황무지를 두 사람이 개척하는 동안 이웃에도 농장을 일구는 사람이 들어왔고, 가까운 곳에 광산이 개발되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사크와 잉에르의 가족도 아들과 딸이 생겨 성장하게 됩니다. 그 사이에 잉에르는 자신처럼 토순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를 살해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감옥에 갇히는 일 말고는, 아니 잉에르가 한때 찾아드는 남자들에게 한눈을 판 적도 있기는 하지만 크게 굴곡이 없는 삶을 살아냅니다.


이사크의 가족들 가운데 작은 아들 시베르트는 아버지를 닮아서 땅을 일구는 삶에 만족을 합니다만, 큰 아들 엘레세우스는 전신주 공사를 하러 온 기사를 따라 도시로 나가면서 뜬구름처럼 살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미국으로 떠납니다. 마치 작가처럼 말입니다. 아마도 엘레세우스는 작가의 분신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까요? 이사크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게이슬레르가 이사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준 것을 알게 된다면 말이지요. “자연은 자네와 자네 가족의 것이야. 인간과 자연은 서로 다투지 않고 서로 옳다고 인정해주며, 서로 경쟁하거나 어떤 이득을 얻기 위해 경주하는 대신 손을 잡고 가지. 자네들 셀란로 사람들은 그 한가운데 있으면서 번창하고 있어. 산과 숲, 늪지와 목초지, 하늘과 별. , 이 모든 것은 아끼면서 찔끔찔끔 주어지는 게 아니라 차고 넘친다네.(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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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망자, ‘괴민연’에서의 기록과 추리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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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에 읽을 책 목록에 올려놓았던 탓인지 어느 책에서 인용되었던 것인지 분명치가 않습니다. 그리고 막사 읽어보니 읽을 책 목록에 올려놓았던 이유도 분명치가 않았습니다. <걷는 망자>민속학과 공포 그리고 본격 추리의 결합이라는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였다는 평가를 받는 마쓰다 신조의 작품집입니다. 표제작 걷는 망자를 비롯하여 다가오는 머리 없는 여자’, ‘배를 가르는 호귀와 작아지는 두꺼비집’, ‘봉인지가 붙여진 방의 자시키 할멈’, ‘서 있는 쿠치바온나등 다섯 편의 단편 추리소설을 담았습니다.


제목만 보아도 끔찍한 살인이 전제되는 그런 사건들 같습니다. 그런데 괴기스럽다 할 도시전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실 일본은 이와 같은 도시전설이 많이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어렸을 적에 들었던 괴기담이 일본의 것에서 유래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섯 편의 이야기는 “‘괴민연에서의 기록과 추리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것처럼 명탐정 도조 겐야의 수집품과 장서가 보관되어 있는 무묘대학교 지하에 있는 괴민연(괴이 민속한 연구실)에 수집된 사건을 도조 겐야를 따라 입학한 신입생 도쇼 아이와 연구실을 지키는 쓰루야 슌사쿠가 논의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걷는 망자>는 민속학자이자 명탐정 도조 겐야가 등장하는 도조 겐야 연작의 파생작이라고 합니다.


이야기들 속에 등장하는 도시전설을 꽤나 섬뜩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예를 들면 걷는 망자에서는 도리노우라의 해안가에 있는 좁은 길을 망자의 길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바다에서 불의의 죽음을 맞은 사람은 망자가 돼서 돌아오는데, 망자길을 헤매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씐다고도 했다. 그런데 망자가 해가 지지 않은 시각에도 나타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본이 패전한 뒤에 유럽과 미국의 문화가 단숨에 퍼져나가는 가운데 케케묵은 토착적인 인습가운데 일부는 자연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해가 진 후에도 밖에서 놀면 망자에게 끌려간다라는 말로 아이에게 겁을 주는 부모는 여전히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일본에서의 도시전설은 괴기한 이야기흘 즐기는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며,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목적으로 명맥을 유지했던 것 같습니다.


마쓰다 신조 작가의 경우는 그와 같은 도시 전설을 끌어다가 범행을 은닉하려는 강력사건을 도조 겐야라는 명탐정이 명쾌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반전을 가져와 독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셈입니다. 도시전설을 좋아하고, 탐정소설을 좋아하는 일본사람들의 성향을 잘 이용한 셈이라고 하겠습니다.


<걷는 망자>에서는 물론 탐정 도조 겐야가 해결한 사건을 무묘대학교 지하에 있는 괴민연으로 보내지며, 이를 두고 화자인 신입생 도쇼 아이와 연구실을 지키는 쓰루야 슌사쿠가 사건에 담긴 비밀을 추리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도쇼 아이는 할머니로부터 격세유전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영매로서의 자질을 바탕으로 도시전설을 해석하고, 덴큐 마이토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는 쓰루야 슌사쿠가 사건의 비밀을 추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쓰루야 슌사쿠가 훗날 괴기 소설 작가가 되고 도쇼 아이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영매가 되어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는다는 사연이 마지막 이야기에서 나옵니다.


네 번째 이야기 봉인지가 붙여진 방의 자시키 할멈에 등장하는 치킨라면1958년 닛신(日清) 식품에서 춣시된 일본 최초의 즉석 라면이라고 소개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1963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라면을 내놓은 회사는 삼양식품이었습니다. 일본 라면업계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묘조(明星) 식품의 도움을 받아 출시한 삼양라면은 끓인 뒤에 닭기름이 둥둥 뜨고 닭곰탕의 맛이 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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