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에티켓 - 나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모든 것
롤란트 슐츠 지음, 노선정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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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달린 <죽음의 에티켓>은 독일의 언론인 롤란드 슐츠가 썼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모든 사람들이 겪게 될 생의 마지막 여행에 대한 설명을 담았습니다. 우리가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 죽음의 본질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죽음을 앞두고 준비해야 할 것들, 그리고 죽음을 맞는 순간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살아남은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심리적 충격, 그리고 장례식과 애도 그리고 애도 이후의 삶에 이르기까지 죽음에 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합니다.


병리학을 전공한 저는 죽은 사람을 부검하는 일을 조금 해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한 인간이 죽음을 맞았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에 대하여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제가 모르는 일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예를 들면, 인간의 역사는 8,000세대 정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는데, 인간이 출현한 뒤로 지구상에서 죽어간 인간들의 수가 2천억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호모 사피엔스라고 하는 현생인류만을 포함한 것으로 짐작합니다.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이 흔히 듣는다는 말도 처음 읽는 것입니다, 첫째는 과소평가라는데, 당면한 건강상의 문제를 지나치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일종의 교훈 주기인데, 모든 일에는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니 이제는 그렇다는 점을 깨달으라고 훈육조로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해법제시인데, 이렇게 하면 당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비법을 전수해준다는 것입니다. 중병으로 마음이 약해진 상태에서는 이런 조언들에 휩쓸려 이성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흔히 영화를 보면 죽음을 맞는 순간에 고개를 떨어트리는 것으로 묘사를 합니다만, 감지할 수 있는 변화가 없이 죽음을 맞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던 이들도 감정이 고조되면서 울음을 터트리게 되는데, 슬픔을 내보이는 방식에도 차이나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곡비(哭婢)라고 해서 통곡을 하는 사람을 사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에 불교계에서는 지나치게 슬픔을 표하는 것을 말리는 경향입니다. 가족 친지들이 쏟아내는 울음소리를 듣게 된 망자 역시 이별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쉬게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 장례식도 치러보았지만, 장례 절차에는 많이 간여하지 않아서 그 절차가 얼마나 복잡한지는 몰랐습니다. 물론 독일과 한국은 제도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은 합니다만, 정말 많은 절차를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장례식은 죽은 자를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모든 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일이야.(163-164)’라고 이야기하면서 독일에서의 장례 절차를 소상하게 설명합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결정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다행한 일은 아버님 장례를 치룬 뒤에 어머님께서 주도하셔서 가족 납골당을 만들었기 때문에 장지를 결정하는 문제에서만큼은 자유로울 수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죽은 뒤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겪어야 할 일도 빠트리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은 당사자는 물론 그를 둘러싼 사람들에게도 상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학자들은 이 상실을 인생의 역사가 책 한 권이라면 어느 한 페이지에서, 갑자기 어느 한 줄에서 모든 미래를 위한 장들은 찢겨 나가 중단되는 것이라고 표현한답니다.


죽은 사람은 이미 삶을 정리했으니 더 이상 할 일이 없을 터이나, 남아 있는 사람들은 겪어야 할 일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상실의 충격을 어떻게 이겨내는가 하는 것이겠지요. 흔히 살아있는 사람들은 살아갈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만, 그 방도를 쉬이 찾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슬픔을 삭이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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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 - 언제나 내 편인 이 세상 단 한 사람
박애희 지음 / 북파머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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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 서재에서 만난 책입니다. 한국방송공사와 문화방송에서 오랫동안 방송작가로 활동하던 박애희 작가가 늘 힘이 되어주시던 어머니가 타계한 지 7년이 지나서야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담은 책을 2019년에 발표했던 것을 독자들의 성원에 따라 개정판을 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초판을 읽어보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가름할 수는 없겠으나, 일단 제목들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과 각 장의 끝에 부치지 못한 편지라는 제목으로 어머니에게 띄워 보내는 공개적인 편지글이 붙었다는 것입니다.


작가의 말도 새로이 썼다고 합니다.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라는 제목의 글은 지금 이 책을 펼친 분이라면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분이지 않을까 싶어 먼저 안부를 묻습니다.”라고 시작합니다. 맞습니다. 저 역시 오래 전에 부모님을 여의고 가끔은 두 분을 떠올리곤 합니다. 언젠가는 사모곡, 사부곡을 써볼 요량을 하고는 있습니다만, 아직은 틀조차 잡아보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저도 책을 냈고, 그 책들의 개정작업을 몇 번 해보았습니다만, 개정판에서는 아무래도 변화가 있는 부분은 들어내고 새로운 글로 채워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의 경우는 이 책에 담긴 이야기에 공감하는 독자들의 응원이 이어지면서 개정판을 내기로 한 것 같습니다. 아니면 새 책을 써보셨더라도 좋았겠다 싶습니다.


초판에 붙인 작가의 말에서는 상실을 겪은 사람으로서 먼저 손을 내밀고 싶었다. 당신도 그랬느냐고, 나도 그랬다고, 각자에게 주어진 슬픔의 무게를 감당하며 오늘을 사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말하고 싶었다.’라면서 내 작은 글들이 당신에게 다정한 위로와 희망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랬던 것 같습니다.


작가에게 어머니는 격려를 하고 작가의 일을 지켜보는 든든한 후원자였습니다. 수시로 문자를 보내 자신이 지켜보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딸이 하는 방송을 듣고 잘했다하고 칭찬해주곤 했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어머니에 대한 생각 뿐 아니라 시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도 소개했는데, 적어둘만 했습니다. 신혼시절 생일을 맞은 작가에게 시아버지가 문자를 보냈더랍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의 한 대목이라고 합니다. 며느리에게 그런 문자를 보내는 멋진 시아버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필자는 그런 멋진 일을 해본 적이 있던가 돌아봅니다.


작가가 엽엽한 것처럼 여섯 살배기 작가의 아들도 깜찍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엄마, 아흔까지 살 수 있겠어? 아니, 110살까지 살 수 있겠어?’라고 물어보더랍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처럼 엄마도 죽으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니 노력해볼게, 아니, 꼭 그렇게 할게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절로 공감하게 됩니다.


작가는 자신의 주변 인물들과 주고받은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자료들에서 적절한 대목을 인용하고 있는데, 저는 전혀 만나보지 못했던 책들이라서 작가의 책읽기의 깊이에 놀라게 됩니다. 작가의 어머니는 혈액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골수이형성증후군을 앓고 있어 골수이식술을 받았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재발되면서 죽음을 맞게 되었다고 합니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 잠시 맑은 정신이 돌아와 가족들과 작별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음에 소개할 호스피스 전문가의 책에서도 죽음을 맞기 직전에 맑은 정신이 돌아오는 현상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렇게 떠나가신 어머니를 기억하는 딸은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개정판에 새로이 담았습니다. 부치지 못했지만, 영적 교류를 통하여 어머니가 받아보셨을 그런 편지를 말입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사모곡을 담은 편지입니다. 저도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사모곡을 적어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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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토토 - 개정판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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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야나기 테츠코의 소설 <창가의 토토> 역시 파킨슨 병으로 진단받고 22년을 투병해온 정신의학과 전문의 김혜남 작가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https://blog.naver.com/neuro412/223663539509>에서 인용한 것을 보고 읽은 책입니다. 특히 어쩌면 세상에서 진실로 두려운 것은 눈이 있어도 아름다운 것을 볼 줄 모르고, 귀가 있어도 음악을 듣지 못하고, 마음이 있어도 참된 것을 이해하고 감동하지 못하여 가슴의 열정을 불사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닐까.”라는 대목을 인용하였는데, 저는 책을 모두 읽고서도 이 대목을 찾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아마도 건성 읽은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게 됩니다.


<창가의 토토>는 일본의 유명 방송인이자 사회봉사가로 활동하는 구로야나기 테츠코씨가 자신의 인생 가운데 가장 황금같은 시절이라 할 초등학교 시절을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자연과 친구와 더불어 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준 당시의 스승과, 아이들의 인격과 개성을 존중한 수업내용을 풀어놓은 것입니다. 아마도 문부성의 허가를 받은 정규 학교가 아니라 요즘으로 치면 대안학교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시대적 배경이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기 전의 시기였던 것을 보면 상당히 선구자적인 그런 교육체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토토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테츠코는 호기심이 많고 천방지축인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세상만사가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철부지였던 것이지요. 그랬던 토토가 정규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서 도모에 학원에 들어갔을 때는 선생님들이 이끄는 수업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정화조 뚜껑을 덮어놓은 신문지에 뛰어든다거나 모래더미처럼 보이는 진흙탕에 뛰어든다거나 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충동적이고 상황을 살피는 것보다 행동이 먼저인 점은 여전하지만 말입니다. 이런 아이를 키우는 일도 수월치가 않을 것 같습니다.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에 대한 이야기가 짧게 언급되어 있지만, 토토의 어머니의 입을 빌어서 일본인이나 조선인을 구별하여 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정도로만 언급되어 있을 뿐 작가 자신의 생각이 어땠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조선인 엄마가 아들을 찾는 소리가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을 만치 애달피 우는 듯했다.’는 정도로 생각했다는 것이지요.


이야기의 말미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 일본이 참전하게 되면서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한 군인이 치료받고 있는 병원에 찾아가 위문을 하고, 이웃에 사는 남자들이 전장터로 떠나가고 일용품을 배급받는 어려운 상황을 짧게 적고 있을 뿐 일본이 저지른 전쟁에 대한 저자 자신의 생각은 한 줄도 적지 않았다거나 전후 일본의 사정까지 이야기를 끌어갔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B-29의 폭격으로 도모에 학원이 불탔다는 이야기, “큰 집의 맏아들이 천황폐하, 만세!’라고 외치며 풀썩 고꾸라져 전사하는 군인의 흉내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참 슬픈 광경이었다라고 적은 것은 전쟁에 대한 일본 국민, 특히 당시의 어린이들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로 여겼는지도 궁금합니다전쟁만 없었더라면 더욱 많은 학생들이 (고바야시) 선생님의 손을 거쳐 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을텐데하는 생각이 들어 아쉽고 서글픈 마음뿐이라고 소회를 밝히는 것도 적절치가 않아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목과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쓸 무렵에 창가족이라는 말이 유행을 했는데, 소외된 있는 층을 이르는 말이었다고, 그래서 자신도 학교에서 왠지 모르게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이런 제목을 정했다고 합니다. ‘窓際族(まどぎわぞく)’이라는 말에서 온 것인데 우리말 그대로 번역하면 창가족정도의 의미로, 일본 기업이나 단체 직장에서 한직으로 몰린 사원이나 직원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왕따가 된 토토가 되나요? 도모에 학원에서는 왕따가 아니라 동무들과 잘 어울리는 아이가 되었으므노 창가족이라 할 수도 없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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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할 거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일홍 지음 / 부크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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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밀리의 서재에 있는 책들을 읽는 일도 초겨울에 접어들면서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제목이 아주 공격적(?)이라는 느낌이 들어 읽게 된 글입니다. 10만 독자를 가진 작가라고 소개되었습니다만, 이 책을 쓴 일홍 작가는 처음 만나는 분 같습니다.


<행복할 거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당신의 행복을 찾아 주고 싶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이런 하루가, 이런 인생이 좋다고 말할 정도로라는 기획으로 쓴 것 같습니다. 모두에서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야. 누리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누리며 사는 것. 고생 끝에 오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나 존재하는 것. 그러니까 자주 행복하자. 힘들어도 재밌게 살자. 그래야만 꿋꿋이 살아갈 수 있어.”라고 설명합니다만, 말장난 같다는 느낌도 살짝 들었습니다. 그렇게 말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으로 옮기기는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을 속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행복할 거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에는 모두 16개 꼭지의 글을 내개의 문단으로 나누어 담았습니다. 대부분의 글들은 행복을 구하거나 행복을 즐기는 방안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꼭지의 글을 1쪽에 불과하거나 4쪽에 이르는 것도 있습니다. 글들을 모두 행복해지는 비법을 담았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읽지 않아도, 어느 쪽을 펼쳐도 마음에 위안이 되는 글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지면 나도 따라 행복해진다는 생각이겠지요.“나는 네 곁에서 널 행복하게 만들어 줄거야라고 약속합니다.


지난해에는 제가 아팠던 것인데, 금년에는 아내도 아프게 되니 나 아픈 것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아픈게 더 서럽다.’라는 대목이 실감이 납니다. 치료에 전념하고 완치된다는 신념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아팠을 때 성심껏 간병해준 것처럼 소소한 부분까지 챙겨주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떠나간 자리라는 제목의 글, “나를 가득 차지하고 있던 사람이 떠나간 자리엔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 누구도 대신 채울 수 없는 구멍이. 실은 애초에 구멍 난 사람을 바람 새어 들어올 일 없도록 당신이 막아주고 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누구보다 나를 많이 이해해 줬던 사람은 오래도록 나를 아프게 한다. 나조차 나를 이해할 수 없을 때 나보다 나를 믿어 준 사람이라서.”라는 대목을 미리 실감합니다.


불행을 버텨 냈으니 이제 행복할 수밖에 없겠다라는 말보다는 힘들어도 불행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이런 과정 조차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지금 내가 불행하다고 인정하면서 행복해질 수는 없을 터이니 말입니다. 물론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지금을 견뎌내면 언젠가는 행복할 수 있겠다는 희망회로를 돌리라고 하는 것은 잔인한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행복은 고생 끝에 오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라 하면서도 지금 불행하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해보자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많이 아프겠지만 잠시뿐일 거라고. 오늘처럼 힘겨운 날들을 지나 보내야만 더욱 단단한 행복이 찾아올 거라고. 거쳐야만 하는 시련이라고. 그렇게 기뻐질 내일을 믿어야 한다.(32)”라는 대목이 대표적일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제목이 말하는 행복할 거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는 앞날의 행복을 기대하는 희망을 담은 이야기일 뿐일까 싶습니다. 소소하겠지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는 묘약일 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지금 힘들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조금만 참고 견디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 올 것이라고 믿게 하는 마법을 펼쳐보이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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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사랑
베로니크 드 뷔르 지음, 이세진 옮김 / 청미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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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서 홀로되면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일이 쉽지가 않은 모양입니다. 당사자가 새로운 인연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더하여 자녀들의 입장도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만난 사랑>은 프랑스에서의 일입니다만 나이 들어 시작하는 사랑이 어떻게 발전해가는 지에 대하여 생각해볼 기회가 된 이야기였습니다.


<다시 만난 사랑><체리토마토파이https://blog.naver.com/neuro412/223217409901>의 작가 베로니크 드 뷔르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체리토마토파이>는 리옹과 리모주의 중간프랑스 중부지역에 있는 완전한 시골에 사는 과부 잔이 90살이 되는 해 춘분에서 시작하여 꼭 1년간 써내려간 일기입니다시골이라고는 하지만 딸과 아들이 수시로 찾아와 함께 지내는 것을 보면 행복한 만년을 보내는 잔입니다


<다시 만난 사랑>이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합니다만, 이야기에 등장하는 어머니가 작가인지 아니면 화자인 딸인지는 분명치가 않은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화자의 어머니가 70살 생일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갑자기 생긴 호흡부전이 악화되면서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급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홀로된 어머니였지만 충격을 딛고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평소 엄마와 속이야기도 거릴 것 없이 나누던 화자가 엄마더러 재혼할 거라고 물어보면 , 지금 세상 편하고 좋다. 남자를 데려다 뭐에 쓰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하지만 세상사는 모를 일이지요.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4년이 지날 무렵 첫사랑이었던 그자비에로부터 편지를 받게 됩니다.


그자비에 역시 엄마와 석연치 않게 헤어진 뒤에 결혼한 미셸과 사별한 상태였고, 엄마가 혼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 찾아오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재회한 두 사람은 400나 떨어져 살고 있는 서로의 집을 오가면서 새로운 사랑을 키워가고, 화자는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아빠의 흔적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자비에의 집을 처음 찾아가는 엄마를 배웅하면서 가세요, 엄마. 기분 전환도 되고 좋을 것 같아요. 아빠가 돌아가신 후로 거의 아무 데도 안 갔잖아요.”라고 하면서 등을 떠밀었던 것과는 달리 배신감 같은 감정이 생겼던 모양입니다.


화자의 생각이 바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딸의 생각까지 고려하지 못할 정도로 첫사랑과의 사랑을 키워가다가 결국은 사제를 모시고 서약을 맺기에 이르렀습니다.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 것은 아니나 두 사람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절차를 가진 것입니다.


서로의 비밀스러운 일까지도 속속들이 알고 있던 엄마와 딸 사이에 알리지 않는 이야기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심지어는 서로에게 상처가 될 말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엄마가 감정이 폭발해서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거야! 내 인생이니까. 나는 평생 해야 하는 일만 하고 살았어. 내 의무를 다한 지금, 드디어 나를 위해 살 수 있게 됐어! 너희가 기분 나빠도 할 수 없다! 나도 행복할 권리가 있어!”라고 선언하기도 합니다.


딸의 생각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바는 아니나 엄마의 변화가 긍정적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엄마가 여전히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상황이니 스스로의 앞날을 결정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입니다. 엄마와 그자비에가 신부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의 말씀에 담겨있는 다음 구절이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애정은 상대가 일어설 수 있도록 돕습니다.(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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