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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크하기 읽다보면 그 장면이 손에 잡힐 듯한 ’글로 쓴 사진‘ (공감0 댓글0 먼댓글0)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2025-03-11
북마크하기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는 길 (공감1 댓글0 먼댓글0)
<생의 마지막 당부>
2025-03-10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존 버거 지음, 김우룡 옮김 / 열화당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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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여행지에서 만나는 아름다움을 붙드는 방법을 존 러스킨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소개하였습니다.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며, 그것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스스로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심리적이고 시각적인) 요인들을 의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의식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것에 관해 쓰거나 그것을 그림으로써 예술을 통해서 아름다운 장소들을 묘사하는 것이다.(277)”라는 것입니다.


러스킨은 또한 여행을 하면서 스케치를 하는 것에 더하여 아름다움에 대한 인상을 굳히려면 말로 그려야한다고 했습니다. 즉 글로 써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러스킨이 말하는 말 그림은 어떤 장소의 생김새를 묘사하는 방법일 뿐 아니라, 심리학적 언어로 그 장소가 우리에게 주는 영향을 분석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고 합니다.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이야말로 러스킨의 말로 그리기의 전형을 보게 되는 책읽기였습니다. 존 버거는 자신이 직접으로 만났거나, 아니면 사진을 통해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마치 사진을 찍듯이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이 책의 원제목이 Photocopies(사진복사)인 것은 피사체를 사진찍듯이 복사한다는 의미입니다. 원제를 글로 쓴 사진이라는 절묘한 우리말로 옮겨놓은 편집자의 재치도 대단합니다.


11번째 이야기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남자에서는 사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사진은 적확한 순간에 방아쇠를 당기는 일, 손가락을 누르는 일일 뿐이에요.(62)” 화자는 하나의 사진을 찍는 순간, 당신의 이른 바 결정적 순간은 계산될 수도, 예고될 수도, 사고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란 쉽게 사라지는 것 아닌가요?(64)” 이야기 끝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사진은 끝없는 응시로부터 나오는 무의식적인 영감이다. 사진은 순간과 영원을 붙든다.(68)” 이 대목을 읽고 보니 제가 찍는 사진은 아무 생각 없이 순식간에 찍는 것이라서 영혼이 없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존 버거가 글로 쓴 피사체로 삼은 인물들은 멕시코 사바티스타의 마르코스 부사령관,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철학자 시몬 베유 등처럼 유명한 인물도 있지만, 명성에는 무관심한 채 오로지 그리기에만 몰두하는 무명 화가, 런던의 어느 광장에서 병든 비둘기를 돌보는 노숙자 여인, 아일랜드의 시골 버스에서 만난 수다스런 소녀, 라이플총을 빗겨 맨 열세 살의 인도 소년, 소련의 강제수용소를 백스물네 번이나 옮겨 다닌 남자처럼 무명인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존 버거는 피사체가 놓인 환경은 물론 그 사람의 내면까지 면밀하게 관찰하여 글로 그려냈습니다. 그가 그려낸 피사체의 풍경을 묘사한 대목 가운데 테이블에 던져진 주사위처럼 계획 없이 우연히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마을들이 있다. 하지만 좀 더 분명한 이유를 지니고 이루어진 마을도 있다.(19)”처럼 풍경에 대하여도 사유의 깊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아마도 마을은 실제보다 더욱 행복해 보인다. 교회이 첨탑은 아름답다. 묘지는 마치 그 위에 자리한 발코니처럼 보인다.”는 대목이 이어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런가 하면 13번째 이야기 시편 139: “당신은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니에서는 막 일어나고 있는 듯 엉거주춤한 자세의 사람이 그려지고 여백에는 글씨로 가득 채워진 그림 한 장만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어쩌면 말보다 그림으로 전하고 싶은 무언가를 담아낸 듯합니다만, 저자가 이 그림을 통해서 전하려고 한 자신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가늠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여백에 쓰인 글씨는 작거나 흘려 써서 내용을 식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존 버거의 글쓰기는 사물에 대한 면밀한 관찰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느낀 마르셀 프루스트의 그것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물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글로 옮기는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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