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 - 우리는 왜 여행을 떠나는가? 어떤 날 1
김소연 외 지음 / 북노마드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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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여행을 떠나는가’라는 부제 때문에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여행을 자주 다녀오는 편입니다만, 여행을 떠나는 이유를 물어보면 쉽게 답변을 드릴 수가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travel mook’라고 정리된 이 책의 성격처럼 모두 9분이 글과 사진 혹은 삽화를 맡아 묶어낸 책입니다. 제가 워낙이 세상물정을 모르는 탓인지 9분 가운데 뮤지션이라고 소개된 요조씨만 아는 분입니다. 요조씨의 경우는 년 전에 방송을 같이 한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네 분의 시인과 두 분의 작가, 한분의 아나운서와 일러스트레이터, 뮤지션입니다. 묵크지라는 성격 때문인지 기획이 참 독특합니다. 프롤로그라고 적힌 쪽은 텅 비어있고, 다음 쪽에는 임어당이 <생활의 발견>에 적은 “여행은 세상을 피하고 사람들로부터 도망치는 것이어야만 한다”라는 구절이 전부입니다.

첫 번째 주자인 일러스레이터 박서연님이 임어당의 말을 받아 ‘현실도피’라는 제목으로 한쪽도 안되는 글을 썼습니다. 그 일부를 소개하면, “(…) 나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내가 걱정할 일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현실도피를 즐기는 짜릿한 도망자가 되는거지. (…) 여행은 뭐, 그런 거지 뭐.(29쪽)” 그렇게 떠나는 여행도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여행이 과연 그런 경우밖에 없을까요?

두 번째 주자인 김소연시인님의 ‘낯선 사람이 되는 시간’에서는 역시 너무 익숙하지만 싫어서 서울을 떠난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래서 시인 정지용님의 이가락(離家樂), 즉 집을 떠나는 즐거움을 인용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집을 떠나면 낯선 내가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낯설지만 나를 되찾을 것 같아진다고, 내가 달라진다는 게 좋다고 합니다.

밤을 새워가며 13시간을 침대버스를 타고 인도의 우다이프루로 갔던 여행을 적은 성미정 시인님은 힘든 여행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이제니시인님은 과거에 다녀왔던 여행지들을 회상하면서, “지상의 곳곳에다 마음의 별점을 찍어나가는 것. 얼마간의 세월이 지난 뒤에 그들이 하나의 아름다운 이름을 지닌 별자리로 연결되는 것을 보는 것, 그리고 그것이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내가 그리려 했던 별자리의 일부로 계획된 채로, 어떤 내면의 장소를, 마음의 성소를 내내 여행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 그 장소의 이미지가, 그 여행의 여정이 바로 자기 자신의 본질이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 그렇게 세계의 오지를 헤매는 것이 제 마음의 오지를 헤매는 일이었음을, 결국 자기 자신에게 보다 더 가까워지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 어느 날 다시 멀어지기 전까지, 다시 자기 자신에게 가까워지기 전까지, 그 희미하고도 명확한 여정을 등불 삼아 현재를 걸어 나가는 것.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곳을 찾아가 그 모든 것을 마음의 눈에다 넣고, 그저 잊어버리는 것. 넓어지고 가까워지고 멀어지면서 다시 걸어가는 것.”이라고 적고 “/여행하듯이, 내내 여행하듯이. /마음의 비행운을 따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두고 온 그곳으로(87쪽)”라고 선문답하듯 적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요조님은 아침에 끓인 김치찌개 이야기로부터 여행이란 특별한 계기가 없어도 떠날 수 있는, 일상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 글에서 적은 경주에 다녀왔을 무렵 저와 함께 TV에 출연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해외여행도 만만치 않게 다녀왔다는 위서현아나운서님은 훌쩍 지하철을 타고 종로구 누하동을 찾아가는 여행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길을 걷는 일이 책을 읽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장연정 작가님은 왜 여행을 떠나는가 하는 의문에 대하여 “어쩌면 길 위에서가 아니라면, 여행이 아니었다면 평생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를 나의 다양한 면면들, 그 안에는 다시 마주치기 싫은 얼굴도, 반가운 얼굴도, 감동스러운 얼굴도, 자랑스러운 얼굴도 모두 들어있다. 결국 모두 다, 나였다. 여행은 그렇게 수많은 나를, 만나게 했다. 수없이 나에게 실망하게 하고, 나에게 놀라게 하고, 또다시 나를, 사랑하게 했다.(146쪽)” 즉 여행은 스스로를 알게 해주는 기회였다는 것입니다. 여행은 마법의 순간이었다는 최상희 작가님, 가슴에 명장면 하느쯤 간직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이병률 시인님의 글도 짧지만 울림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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