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
장석주 지음 / 마음서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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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들고 보니, <조르바의 인생수업>으로 만났던 장석주 시인의 새로운 산문집이었습니다. 글을 써 책을 내는 것도 독특한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지렛대삼아 글을 써낸 것이 참 놀랍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권 분량의 글을 써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산문집 <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는 호주의 시드니와 뉴질랜드의 오크랜드에서 한 여름-우리나라가 한 여름이었고 그곳은 한 겨울이었답니다-의 몇 날을 보내면서 써낸 글이라 하니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저자는 노트북을 열면 한 꼭지의 글을 술술 써내는 마법 같은 글쓰기를 할 수 있나 봅니다. 다섯 번째 글에서 블루마운틴에 온 지 이틀째 아침이라고 적은 것을 보면, 하루에 네 꼭지의 글을 써낸 것 같습니다. 글마다 다양한 책을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저자가 들고 간 책이 몇 권 되지 않는다고 한 것을 감안하여 참 대단한 기억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저자는 시드니의 블루마운틴과 오크랜드의 바다풍경에서 얻은 느낌을 바탕으로 글을 써내려가면서도 여행기나 여행안내서가 아니라고 잘라 말합니다. 그저 ‘지도 없이 밤하늘의 별을 보고 방향을 가늠하며 떠도는 여행자의 사유 모음집’ 혹은 ‘살아 있음의 가장자리에 존재의 존재함에 대한 숙고를 보여줄 뿐(27-28쪽)’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너무 멋있으려고 뽐내는 것 아닌가요? 나아가 이 산문은 ‘당신에 관한 상상과 사유의 책’이라고 정의합니다. “세월이라는 안감 위에 아로새겨진 무늬와 같이 사랑한 ‘당신’, 혹은 사랑할 뻔 한 ‘당신’들 얘기가 새겨져있다(28쪽)”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한 꼭지의 글이 끝날 때마다 ‘당신, 잘 있어요’라고 마무리를 합니다.

그런데 그 당신의 정체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 당신은 서울에 있다가, 혹은 시드니에 있다가 합니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는 이를 지칭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문에 보면, 저자는 헤어진 지 오래된 누군가에게 부칠 수 없는 편지를 쓰듯 이 글을 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부재의 존재로써 저자의 마음에 그리움의 깊이를 만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젊었을 적에는 부치지 않은 편지를 여러 통 쓰기도 했습니다. 깊은 밤 무엇엔가 홀린 듯 써내려갔지만, 다음 날 아침 읽어보면 도저히 부칠 용기가 나지 않는 그런 편지 말입니다. 그런 편지에는 내밀한 마음의 한쪽이 담겨있기에 누구에게 읽어보라 할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호주나 뉴질랜드는 아직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저자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도 제대로의 느낌이 살아나지 않았던 것이 아쉽습니다. 때로는 읽는 흐름이 고르지 못한 탓도 없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숲속 여러 군데에 까만 캥거루 배설물들이 흩어져 있는데, 아침이나 저녁 무렵이면 서른 마리 안팎이 떼를 지어 나타난다고 해요. 캥거루들의 출현이 썩 잦은 듯해요. 그러니 이토록 많은 곳에 크고 작은 캥거루 배설물이 남아 있는 것이겠지요.(33쪽)“ 캥거루도 그렇고 배설물에 대한 설명이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드물지 않게 마주치는 생경한 느낌의 외래어도 그렇습니다. 제 경우는 어색하더라도 대부분의 외래어를 우리말로 써내려고 애를 쓰는 편이라고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적폐세력이라는 단어도 적절하게 쓰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지 않은 여행길에 한 권 분량의 생각을 글로 풀어낸 저자의 글쓰기와 사유의 깊이는 분명 놀라운 것입니다. 아마도 많은 책읽기에서 나온 내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참 제목에 담긴 의미는 책을 모두 읽고 나서도 미궁에 빠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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