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유령
밀로스 포먼.장 클로드 카리에르 지음, 이재룡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흔히 고야 하면 <옷 입은 마하>와 <옷 벗은 마하>를 떠올리는 분도 많을 것 같습니다. 기울어가는 스페인 왕조의 카를로스3세, 카를로스4세, 페르난도 7세 시절 궁정화가의 전통을 이은 고전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대가이자, 전통적 양식의 회화형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해석을 시작한 근대적 화가라고도 합니다. 년전에 스페인의 마드리드에 있는 프라도 미술관에 갔을 때, 물론 <옷 입은 마하>와 <옷 벗은 마하>도 감상했습니다만, 그의 초기작품과 말기 작품을 두로 감상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특히 <1808년 5월 2일>과 <1808년 5월 3일> 연작은 나폴레옹의 침공에 대하여 무기력한 스페인 교회와 귀족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폴레옹이 그의 형 조세프를 스페인의 왕으로 세우자 그를 위한 그림을 그렸고, 영국의 웰링턴공이 들어와 나폴레옹을 몰아내자, 역시 그를 위하여 그림을 그렸다고도 합니다.

밀로스 포만과 장 클로드 카리에르가 쓴 <고야의 유령>은 도미니크 수도회 소속의 로렌조신부와 무역업을 하던 빌바투아 가문의 딸 이네스 빌비투아 등 가공의 인물을 내세워 고야의 삶과 당시의 시대상을 엮었습니다. 영화화할 것으로 고려하여 쓴 소설작품이었으니 영화로 친다면, 로렌조의 비중이 크지만 고야와 투톱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당시 프랑스혁명의 영향을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스페인 교회는 종교재판을 강화하게 되는데, 그를 주도한 로렌조가 오히려 이에스 빌바투아와 엮이면서 파멸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 이야기의 줄거리입니다. 고야 역시 <옷 벗은 마하> 등의 작품이 종교재판에 회부되는 등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그를 아끼는 고위층이 돌보아서 위기를 벗어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티치아노가 샤를 켕 황제의 초상화를 그리다가 붓을 떨어뜨리자 황제가 붓을 직접 주워주었다거나 티치아노가 교황의 초청으로 로마를 방문할 때 마차의 행렬이 7킬로미터에 달했다거나, 라파엘로가 산책할 때, 추기경들이 곁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목소리를 죽여 안내했다거나, 다빈치는 프랑수와 1세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두었다는 등의 회화의 대가들에 얽힌 이야기도 나옵니다.

빌바투아 가문과 로렌조는 고야를 고리로 악연이 엮이게 되는데, 종교재판에 회부되는 사례들이 모호한 죄목으로 붙들어다가 일상적인 심문이라는 이름의 고문을 가하여 자백을 유도한 것인데, 막 열여덟이 된 어린 여성이 일상적인 심문을 견뎌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로렌조가시행한 일상적인 심문을 아네스의 아버지 토마 빌바투아는 로렌조에게 가하는데, 그도 별 수 없이 짜여진 내용을 자백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의 구명운동이 오히려 로렌조로 하여금 이네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감옥안에서 불미스러운 관계를 맺게 되는데, 그 결과 이네스는 임신을 하고 그녀를 닮은 여자아이를 출산하게 됩니다. 토마의 구명운동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결국 로렌조는 종교재판소에서 쫓겨나게 되지만, 프랑스로 달아나서 구명을 하고 오히려 나폴레옹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됩니다. 결국 나폴레옹의 스페인 공략을 도와주고 조제프가 왕위에 오르면서 그를 자문하는 역할을 맡아 과거보다 더 많은 권력을 쥐게 되지만, 이네스에게 저지른 악행이 결국은 그의 발목을 잡아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한편 고야는 토마 빌바투어의 부탁으로 이네스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면서 그녀에게서 느끼는 독특한 분위기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소개로 상황이 꼬여가는 것이 안타깝고 그녀를 자유롭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로렌조에 대한 종교재판 결과 사형이 집행되고 그 곳에는 고야를 비롯하여 이네스, 그녀의 딸 알리시아도 참관하게 되는데, 로렌조가 처형된 다음에 고야의 유령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 나옵니다. 이네스가 그의 유령이었다는데, 작품을 구상할 때 가다듬었던 이미지들은 작품이 완성되면 망각으로 떨어지기 마련인데, 이네스의 경우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들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이런 존재를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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