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바람이 되다 - 집시처럼 떠돈 289일, 8만 3000Km 아메리카 유랑기
김창엽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최근 몇 년 사이에 늦바람이 불어 세상구경을 하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25년 전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틈만 나면 가족들을 차에 태우고 대륙을 누비며 구경에 나서던 때가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미국을 돌아다니면서 구경한 이야기를 써볼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주로 자연경관을 보러 다녔던 것 같습니다. 본토의 48개 주 가운데 오른쪽 위아래 귀퉁이 몇 곳을 제외하고는 서른 몇 개의 주에 발자국을 남길 정도로 바쁘게 돌아다녔는데, 가족들과 함께 하다 보니 볼거리를 찾아 구경하는 것 말고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 그런 여행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려 289일 동안 미니밴을 타고 8만3천km나 되는 길을 혼자서 한 여행을 담은 <글 위의 바람이 되다>를 읽고서는 ‘정말 이런 일이 가능할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어쩌면 서울과 부산 거리의 세배나 되는 거리를 하루에, 그것도 혼자서 운전해서 달린 기억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에 300km도 안되는 거리를 달린다면 크게 무리가 가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또 하나의 차이는 누군가를 만나 공동의 화제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젝 케루악의 <길 위에서>보다는 존 스타인벡의 <찰리와 함께 한 여행>에 더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당연히 자연경관에 대한 느낌과 함께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이 책의 큰 줄거리입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사진도 볼거리입니다.

가보지 않은 땅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 일단 저질러놓고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모험심이 넘치는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은 표시를 이렇게 나타냈던가 봅니다. LA에서 시작한 여정은 북동쪽으로 나가 미네소타에서 북쪽 끝에 도달한 다음 동쪽으로 나아가 미국 동부해안을 따라 내려왔가가 뉴올리언즈에서 미시시피강을 따라 북상해서 다시 미네소타에 갔다가 내려와 남쪽 해안을 따라가다가 멕시코국경을 따라 서쪽으로 나아가 서해안에 도착해서는 알래스카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 워싱턴주에서 끝나는데, 몇몇 도시에서는 만나지만, 제가 지나갔던 길과는 거의 겹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미국이라는 거대한 땅덩어리를 누비고 다녔기 때문인지 저도 겪었던 그런 상황을 맞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멕시코국경 인근 마을에서 생각지도 않게 여권제시를 요구받는 상황 같은 것입니다. 국내여행이라서 별 생각 없이 여권을 집에 모셔두고 떠난 여행길 고속도로에서 여권을 보여달라는데 답답한 노릇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것도 마치 뺑소니를 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 끝이라서 더욱 난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서 휴일에 누구와 연락을 취할 사람도 없었죠. 결국 사정사정을 해서 양해를 받아낼 수 있었던 것도 천행입니다. 고속도로에서 과속을 하다가 미끄러져 길가 도랑으로 빠진 것도 꼭 같은 상황입니다.

아쉬운 점은 유타주의 국립공원 가운데 브라이스 캐년, 캐년랜드, 자이언캐년 등을 그저 전설 가득한 ‘마법의 땅’이라고 정리해버리기엔 너무나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장소라는 것입니다. 여행길에서 만난 흑인들에게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다고 했습니다만, 제 경우는 그들마저도 우리를 차별대우하는 것은 씁쓸한 추억도 적지는 않습니다. 제 경우는 사우스다코타에서 대평원이 어떻게 생겼는지 실감했습니다만, 저자는 캔사스가 그랬던 모양입니다. 동화 <오즈의 마법사> 탓이었을까요? 대평원에서 바람을 실감했다는 것입니다. “대평원의 바람이 전하는 말은 거의 예외 없이 원초적이다. 때론 부드럽게 쓰다듬듯 말하고, 때론 광폭하게 절규하듯 얘기를 풀어놓는다. 그러나 그 물음의 요지는 언제나 ‘산다는 게 무엇이냐’ 한가지로 들린다”라고 했습니다. <길 위에서 바람이 되다>라는 제명이 여기에서 나온 모양입니다.

자연에 관하여, 아니면 유적과 역사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다보면 건조할 수밖에 없는데, 역시 사람들과 만난 이야기를 풀어놓으니 따듯함이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