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여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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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는 영문학에서 마르지 않는 창작의 샘이 되는 것 같습니다. 기욤 뮈소의 장편소설 <종이여자>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피그말리온과 칼라테아 사이의 사랑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공전(空前)의 인기작품으로 등단한 작가가 후속작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운동에서 치면 ‘2년차 불운’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종이여자>의 주인공은 ‘천사 3부작’으로 인기작가의 반열에 들어선 톰 보이드가 잘나가는 피아니스트오로르와의 사랑이 깨지면서 갑자기 글쓰기를 더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집니다. 이 책에서는 ‘작가의 백지 공포증’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당연히 기획담당자로서는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상황이지요. 설상가상으로 그 역할을 해오던 죽마고우인 밀로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두 사람은 파산할 지경입니다. 새 소설을 써야만 문제가 해결될 터인데, 톰은 오로르를 잊지 못해 폐인이 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더는 추락할 곳이 없는 상황에서 톰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빌리라는 여성이 나타납니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셈입니다. 상황은 인쇄 과정의 실수로 소설이 중간까지만 인쇄된 것인데, 중단된 이야기가 완성이 되지 않으면 사라질 존재로 그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목을 <종이여자>로 정한 것 같습니다. 빌리는 소설을 완성해달라는 주문을 하고 그 대신 오로르와의 사랑을 되돌려주기로 합니다. 떠난 사랑을 되돌리는 방법도 있나요?

톰으로 하여금 다시 글을 쓸 수 있도록 밀로는 정신상담을 받도록 예약을 했지만, 톰은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는 것으로 지레 짐작하고 탈출을 하고 빌리와 함께 오로르가 새 애인과 있다는 멕시코로 향합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의 출입국관리가 그토록 허술할까 싶습니다만, 어떻든 무사히 멕시코에 입국을 하게 되고, 오르르도 만나게 됩니다. 파산지경인 톰이 들고 온 그림 한 점을 팔아서 경비를 마련한다는 것도 가능할까 싶은 설정입니다.

멕시코에서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 빌리를 진찰하는 과정이나 프랑스로 데려가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 등에서 톰은 빌리가 소설에서 튀어나온 존재가 아니라 실제 사람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볼 수는 없었을까요? 판타지소설이라면 가능하겠습니다만, 그렇지 않다면.... 기욤 뮈소의 소설의 특징 가운데 영화처럼 깜짝쇼와 같은 반전이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처럼 이라고 적고 보니, <종이여자>가 영화화되었다는 소문도 있는 것 같습니다. 2012년작 <루비 스팍스>라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영화의 구성을 보면 백지 공포증에 빠진 2년차 불운에 빠진 작가가 창조한 여성 등장인물과 사라에 빠진다는 설정이 <종이여자>와 흡사한 듯하지만, 전체적인 이야기의 줄거리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이 책에서는 책읽는 이에 대한 저자의 인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책은 읽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서 생명을 얻는거야. 머릿속에 이미지들을 그리면서 주인공들이 살아갈 상상의 세계를 만드는 것, 그렇게 책에 생명을 불어넣는 존재가 바로 독자들이야” 그래서 저자는 ‘책이 서점에 깔리는 순간부터 나의 소유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한국 독자들에 대한 저자의 특별한 배려도 볼 수 있습니다. 잘못 인쇄된 책들을 모두 수거하여 파쇄했지만, 빌리가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로 남겨놓은 한 권의 소설책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는 과정에서 한국여성 박이슬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로마의 스페인광장 23번지에 있는 바빙턴의 티룸에서 이 책을 발견하게 되는군요. 로마에서 시간이 되면 저도 바빙턴의 티룸에 한번 가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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