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기억의 현상학 - 안치운 연극론
안치운 지음 / 책세상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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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평론가 안치운교수가 쓴 <연극, 기억의 현상학>을 읽어보기로 한 것은 제가 붙들고 있는 화두 가운데 하나인 ‘기억’과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을 했던 ‘연극’이라는 주제가 사이좋게 제목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두 주제를 어떻게 연결해냈는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책을 받아 서문을 열었더니 ‘나이가 환갑을 맞이할 때쯤이면, 스스로를 돌아보는 책을 꼭 내고 싶었다’라고 글을 시작하고 있어 마음 한 구석에 ‘쿵’하는 울림이 생겼습니다. 저 역시 같은 생각을 오래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시기가 환갑이 아니라 ‘일을 놓고 시간이 나면’입니다. 아무래도 일을 하다보면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환갑이 지난 지 꽤 됐지만, 아직 시작도 못하는 것은 하고 있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다가 이러저런 글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이미 출간된 책들에 들어가지 않고 서랍에 누운 채 오늘을 기다린 논문들을 담았다’라는 구절이 나오면서 책읽기에 상당한 공력을 들여야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책을 많이 읽다보니 이런 예감은 틀린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역시 이 책은 저자의 이름을 붙여 ‘안치운 연극론’이라는 부제가 달린 것처럼 상당한 수준의 연극 이론서이기도 해서, 아마추어로 연극 맛을 조금 본 제 수준으로는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두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저자가 연극을 삶의 일부로 해온 과정을 정리한 서문 역시 논문에 가까운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긴 서문에 담긴 저자의 논지 가운데 배운 점도 많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의 현대연극은 서양 연극의 기원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양 현대 연극에 많은 부분 기울고 있다(40쪽)’고 적고 그 이유로 유치진과 같은 친일연극인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연극 가운데 어떤 것이 현대연극으로 발전했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서술되지 않고 있어 헷갈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연극에 관심을 둘 무렵 전통 마당극이 활성화되면서 다양한 영역에서 공연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기억됩니다만, 그런 움직임이 스러지게 된 것이 서양연극을 전공하신 분들 때문이라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자 역시 우리의 현대연극을 대상으로 평론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의문이 더하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친일연극론에 관한 책을 써보려 하신다니 기대가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시대에 연극을 비롯한 예술의 몫은 점점 작아지고, 연극의 몫도 마찬가지로 축소되고 있다.(45쪽)’는 부분도 좀 더 생각을 해볼 부분입니다. 제가 연극에 관심을 두었을 무렵의 사정은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던 것으로 기억되기 때문입니다. 공연장은 물론 검열(?) 등 표현의 영역까지도 비교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공연은 관객의 관심 속에 커가는 것 아닐까요? 특히 요즈음 같이 팬덤이라는 문화적 현상이 있는 시기라면 관객과의 간격을 좁히지 못하는 이유가 꼭 연극과 자본주의와의 관계만이 되어야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긴 서문 다음에는 모두 열두 편의 논문이 ‘연극의 기억: 멀리서인 듯이’와 ‘기억의 연극: 저주받은 몫’이라는 제목 아래 나뉘어져 있습니다. 열두 편의 논문 가운데는 기억이 주제가 되는 것은 3편에 불과합니다. 연극과 기억 사이의 관계를 이어가는 저자의 상념은 기억을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부분입니다. “연극에 나타난 기억에 관한 연구는, 서구 고전 희곡부터 현대 희곡에 이르기까지 ① 비극에서 기억과 망각의 문제, ② 기억하는 고통의 문제, ③ 기억의 공간, ④ 보이는 현실과 보이지 않는 거억의 거리와 차이, ⑤ 망각할 수 있는 권리와 기억해야 하는 의무 사이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133쪽)”

저자는 기억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불변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만, 자연과학적 관점에서는 기억은 왜곡되고, 변화하는 오류투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연극이 기억의 저장장치가 될 수도 있다는 저자의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작가가 만든 대본으로 공연을 올려도 매회 마다 출연 배우는 물론, 스태프, 심지어 관객의 반응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연극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연극과 기억의 관계는 논의의 대상이 되기에는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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