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아파트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큰 아이 덕분에 읽게 되는 기욤 뮈소의 신간 <파리의 아파트>를 읽었습니다. 그동안 읽었던 그의 작품들은 대체로 단숨에 읽어낼 정도로 흡입력이 뛰어난 편입니다. 작가가 이 작품에서 보여주려 한 주제는 뜨거운 부성애였습니다. 천재 화가가 젊은 날 맺은 악연 때문에 아들이 납치되어 살해되는 참척(慘慽)을 당했는데, 그는 아들이 살아있다고 믿고 추적에 나섰지만, 불행하게도 심장질환으로 급사하고 말았습니다.

우연히 그가 남긴 집을 빌어 쓰게 전직 영국경찰 매들린과 미국의 희극작가 가스파르가 의기투합하여 화가가 마지막으로 그렸다는 세 점의 그림의 행방을 뒤쫓다가 급기야는 화가의 아들이 살아있을지 모른다고 추정하면서 이야기는 사뭇 긴박감을 띄게 됩니다.

젊을 시절 그래피티에 빠져들었던 숀 로렌츠는 우연히 만난 모델 페넬로페를 따라 파리로 건너가면서 천재화가의 재능이 꽃을 피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미술가가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 구상을 화폭에 제대로 옮기기 위하여 물감은 물론 화폭까지도 섬세하게 고른다는 사실도 덤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베테랑 수사관과 창의력이 뛰어난 극작가의 조합은 전작에서 보는 주인공들의 조합과는 색다르지만 환상적인 조합이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여주인공인 매들린이 등장하는 프롤로그가 생뚱맞아 보이지만, 역시 처음 만난 매들린과 가스파르가 의기투합하여 사건해결에 나서게 되는 이유를 나중에는 깨닫게 됩니다. 사실 남녀 주인공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면 결국 연을 맺기 위한 과정이라는 공식을 이 작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처음 듣는 이야기도 없지 않은데, 일본인이나 중국인 관광객들이 파리에 도착했다가 정신의학적 문제로 입원했다가 본국으로 송환되는 ‘파리 증후군’ 같은 것입니다. 파리에 대하여 막연하게 품고 있던 이상적 이미지와 실제로 경험하게 된 파리의 모습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서 받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여 생기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똑똑한 인간은 어리석은 자들 사이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따금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다(40쪽)”라는 헤밍웨이의 말을 인용하여, “그에게 술은 살다보면 생기게 마련인 균열을 메워주고, 삶을 조금은 덜 비극적으로 만들어주는 완충제 역할을 해주었다. 술은 제어하기 어려움 감정들과의 거리를 유지하도록 해주는 방패이고, 불안감으로부터 그를 보호해주는 갑옷이며, 가장 성능 좋은 수면제이기도 했다.”라면서 주인공 가스파르의 술버릇을 변호하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12월 20일 시작하여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끝이 납니다. 불과 6일 동안 전체의 이야기가 숨 가쁘게 전개되는데, 초반에는 생판 초면인 남녀주인공이 대면하여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비교적 느리게 진행하지만, 일단 집주인이었다는 천재화가 숀의 신비로운 삶과 미궁에 빠진 그의 작품의 행방에 두 사람의 관심이 합치되면서 급류를 타기 시작하여 종국에는 화가가 숨겨두었던 작품들을 찾아내는데 성공합니다.

문제는 다음 단계인 화가의 아들의 죽음에 감추어진 비밀인데, 그 부분에서는 수사전문가와 이야기를 창조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극작가의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다양한 전문가적인 견해를 통합해가는 과정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야기 끝에 붙여둔 옮긴이의 말에서도 생각거리를 발견합니다. 기욤 뮈소의 작품들을 보면 다양한 모습을 한 주인공들을 볼 수 있는데, 그 안에 담긴 주제는 ‘사랑’ 혹은 ‘사랑의 부재’라고 했습니다. 초기작에서는 젊은 남녀 주인공 사이의 사랑을 주로 다루었지만, 작가가 나이 들어가는 탓인지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특히 부성애가 강조되는 경향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옮긴이는 부성의 위기에 대한 경종을 울리려는 것 아닌가 하는 해석을 달아놓았는데, 거기까지는 아직 아닌 듯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