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 김영사 모던&클래식
존 스타인벡 지음, 안정효 옮김 / 김영사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젠가 오클라호마에서 콜로라도로 이어지는 주간도로를 달렸던 기억을 떠올려가면서 <분노의 포도; http://blog.joins.com/yang412/=13270230>를 읽던 기억이 있습니다. 황량하기 만했던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향하던 조드의 가족에게 희망은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그보다 앞서 읽었던 <찰리와 함께 한 여행; http://blog.joins.com/yang412/13260454>에서는 작가가 미국과 미국인에 대하여 품고 있는 사랑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기억들이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을 읽게 만들었던가 봅니다.

이 책에서는 번역을 맡으신 안정효교수님이 ‘존 스타인벡과 아메리카 다소간 개인적인 시각으로 살펴본 작가론’이라는 제목으로 쓴 꽤나 긴 해제를 덤으로 읽을 수 있기도 합니다. 안정효교수님은 이 책에서 생태의식과 자연숭배 성향을 실감하게 된다고 하였고, 그가 얼마나 조국을 사랑했으며, 아메리카의 역사를 얼마나 자랑으로 삼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스타인벡은 역설적으로 ‘이 책은 수치심을 초월한 개인적인 견해를 담고 있다’라고 머리말을 시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제목 하나하나에서도 옮긴이가 말한 조국에 대한 작가의 사랑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저자는 E Pluribus Unum(여럿에서 하나)라는 미국의 표어를 제목으로 하여 미국이라는 나라가 온갖 종족과 인종이 모여 이루어진 나라임을 되새깁니다. 또한 400여년에 걸친 고된 노동과, 피흘림과, 외로움과, 공포가 이 땅을 창조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다만 ‘인디언은 그들을 말살시키려는 우리의 노골적인 의도를 이겨냈다(103쪽)’라고 적은 부분은 그들을 미국인의 하나로 인식하지 않은 것인가하는 의구심을 남기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모순과 꿈’에서는 미국인들이 ‘불안정하고, 불만으로 가득차고, 항상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민족’이라는 생각이 편견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공적으로는 청교도적이지만 사적으로는 방탕자인 국민처럼 보일 때가 적지 않다(117쪽)’라고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명하고, 의롭고, 자비롭고, 숭고한 인간에 대한 막연한 열망을 여전히 꿈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가하면 미국인들은 ’예외 없이 정치적이거나 종교적, 관료적인 권력이 지속되면 두려움과 증오를 느낀다(136쪽)‘라고 적었습니다.

왕조시대에서도 민란의 형태로 이러한 두려움이 표출되기도 하였습니다만, 최근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도 권력이 교체되는 주기가 짧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우리 사회로도 전이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면 전이가 아니고 모든 사회에 내재된 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가 자연을 숭배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옮긴이가 짚었습니다만, ‘아메리카인과 땅’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이 땅으로 이주한 ‘초기 사람들은 이 땅을 마치 그들이 증오하기라도 하듯이, 일시적으로만 차지하고 있어서 당장이라도 쫓겨날 처지인 듯 약탈했다(227-228쪽)’라고 비판합니다. 뿐만 아니라 다수의 미국인들은 ‘아직도 조상이 한 행동을 그래도 되풀이해서, 확실한 현재의 이득을 얻으려고 미래로부터 도둑질을 한다(28쪽)’라고 비난합니다.

‘아메리카인과 세계’라는 글에서는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모든 예술과 모든 문화와 모든 지식이 유럽에서 기원한다고는 믿지 않는다’라고 적어 미국인들이 이룩한 문화적 학문적 성과에 자부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지막 ‘아메리카인과 미래’에서는 미국이 안고 있는 사회적 문제, 하나의 단어로 정의할 수 없으며 뿌리채 뽑아버리지 않으면 우리가 살아남지 못할 심각한 질병에 대하여 논합니다. 저자의 이런 생각을 읽으면서 작금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 역시 이와 같지 않나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는 스타인벡과 같은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