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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드르 화가들 - 네덜란드.벨기에 미술기행
금경숙 지음 / 뮤진트리 / 2017년 7월
평점 :
프랑스어로 플랑드르(Flandre)지방은 네덜란드어로는 플란데런(Vlaanderen)이라고 부르는데, 시대에 따라서 영역이 바뀌어왔다고 합니다. 보통은 중세 시대 플랑드르백작이 다스리던 프랑스의 북부 노르파드칼레에 속하는 노르 주의 일부, 벨기에의 서부 저지대의 베스트플란데런 주와 오스트플란데런 주 그리고 네덜란드의 남서부 제일란트 주의 남방 일부를 포함하는 백작령을 말한다고 합니다.
근대 유럽 화단에서 걸출한 화가들이 벨기에와 네덜란드 지역에서 활동했다고는 알고 있었습니다만, <플랑드르 화가들>에서 소개한 열두 명의 화가들이 모두 이 지역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얀 판 에이크, 히에로니무스 보스, 피터르 브뤼헐, 루벤스, 프란스 할스, 렘브란트,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반 고흐, 페르낭 크노프, 제임스 엔소르, 피트 몬드리안, 르네 마그리트 등 열두 명의 화가들은 그림에 대하여 잘 모르는 저도 대부분 익숙한 이름입니다. 이들은 15세기 초반에 프랑드르화풍의 새지평을 연 얀 판 에이크로부터 20세기 중반에 활동한 르네 마그리트에 이르기까지 연대순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플랑드르 화가들>를 쓴 금경숙님은 2006년부터 네덜란드 남쪽의 작은 지방도시 루르몬트에 살며 네덜란드는 물론 벨기에 등을 돌아보면서 얻은 것들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열 두명의 화가들의 작품활동은 물론 생애에 관한 이야기들을 그들이 생활했던 장소를 직접 찾아가 확인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생생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요즘 책읽기에서 흔히 만날 수 없는 맛깔스러운 단어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얀 판 에이크가 활동했다는 마세이크를 마스 강이 크게 돌아가는 물동이 마을이라고 비유한 부분, 누구의 것인지 딱히 집어낼 수 어금지금한 그림들, 향수를 눅여주고 자아낸다는 표현, 성벽 아래를 물길이 굽이감고, 레스토랑 옆 조붓한 골목에 있었다는 등입니다. 예쁜 우리말을 제자리에 꼭 맞게 쓰고 있어서 놀라는 한편, 마음에 새겨두기로 했습니다.
이야기도 다양하게 전개하는데, 책을 통해서 얻은 것으로 보이는 사실이나, 미술가들이 살았다는 장소를 직접 찾아가서 확인한 내용. 화가들의 대표작들을 직접 소개하면서 작품에 얽힌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역시 처음 만나는 표현방식이었습니다만, 렘브란트의 경우는 작가의 설명이 아니라, 렘브란트, 그의 부인 사스키아, 그의 아들 티투스, 그의 후처 헨드리케 등이 교대로 화자로 등장하여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맨 마지막에 마무리하는 부분을 저자의 목소리로 요약한 것입니다. 갑자기 바뀐 화자 때문에 놀라기도 했지만 얼마나 신선하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조금 모호한 부분이 없지는 않았는데, 하에로니무스 보스의 <쾌락의 정원>이 네덜란드 건국의 아버지 빌럼 판 오라녀 공의 소유였는데, 네덜란드가 스페인에 맞서 일어났을 때, 스페인이 알바공을 보내 항쟁을 진압하였고, 이 때 오라녀공의 궁정에 있던 그림이 스페인의 펠리페2세의 손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입니다. 프라도미술관에 걸려있는 소장품에 대한 스페인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박물관처럼 약탈해온 것은 하나도 없고 스페인 왕가가 사들인 것이라는 데 기인한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화가들의 흔적을 뒤쫓기 위한 여행이 잦았던 때문인지 여행에 대한 작가의 감정선이 아주 섬세한편입니다. “여행길에서는, 매일 움켜쥐고 살던 마음이 있던 자리를 더 강렬하고 더 압도적인 감각이 점령해버릴 때가 잦다. 그러도록 마음을 내어주는 의지가 아무 곳에서나 생겨나는 것은 아니고, 서서히 비집고 들어와 어느새 마음을 차지해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브뤼허에서는 그런 여행자 모드로의 전환이 단박에 이루어졌다.(30쪽)” 정말 다양한 면에서 마음을 풍성하게 해주는 책읽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