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연구4>에서는 ‘문명의 성장’과 관련하여 ‘성장의 분석’, ‘성장에 따른 분화’에
대하여 논하고 이어서 문명의 쇠퇴에 대하여 논의한 전편에 이어 문명이 쇠퇴와 해체에 관하여 논합니다. 문명의 쇠퇴의 원인으로 지목한
자기결정능력의 감퇴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창조성의 모방에 관한 설명을 마무리하고 군국주의의 성립이 문명 쇠퇴를 가속한다는 것과 문명의
절정에서 새로운 도약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자기만족에 빠지는 것을 경계합니다. 이어서 문명의 해체에 관하여 ‘해체의 성질’과 ‘사회체의 분열’을
논합니다.
자기결정능력의 감퇴에서, 창조성의 모방을 통하여 제도와 기술을 우상화하게 되는 것이 문명 쇠퇴의
원인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헬라스 문명의 후반에 그리스는 도시국가 숭배라는 우상을, 로마제국이 무너진 원인은 정교 그리스도 사회의 해악을
꼽았습니다. 더하여 왕과 의회, 관료나 성직자와 같은 지배계급을 숭배하는 분위기가 사회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기술의
우상화에 관하여 저자는 생물학적 진화사례를 인용합니다. 완벽한 기술이 있거나 어떤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하는 개체가 진화론적으로는 오히려 곤경에
처하는 경우가 많고, 덜 특성화되고 과도기적인 유기체가 더 강한 생존력을 보인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창조적 소수자에 의하여 이룩한 기술혁신에
안주하는 사회치고 살아남은 경우가 없다는 것입니다.
창조적 모방에 수동적으로 머물러 무사태평하게 지내다가 무너지는 사회가 있는가 하면 능동적 일탈 역시
쇠퇴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저자가 인용한 사례는 멀리 아시리아문명인데 군국주의의 대표격인 아시리아 사회는 꾸준하게 기술의 혁신을
이어갔지만, 그들에게 배태되어 있는 공격성으로 인하여 이웃을 끊임없이 공격하다가 스스로 지쳐버린 끝에 무너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우스트라시아의
프랑크왕국과 티무르제국의 사례 역시 이에 해당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런가하면 기독교가 번성한 끝에 쇠퇴한 것은 스스로 성공에 도취된 나머지 터무니없는 목표를 위해
정치권력을 남용한데서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문명의 해체에 관한 설명은 해체의 성질을 규정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문명쇠퇴는 필연적으로 문명의
해체를 가져오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중심사회는 지배적 소수자, 내부 프롤레타이라, 외부 프롤레타리아의 셋으로 갈라진다고 합니다. 이들이
분리하여 새로운 사회 질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투쟁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이들 세 집단은 각각 특징을 가지는데, 지배적 소수자는 세계국가를, 내부
프롤레타리아는 세계교회를, 외부 프롤레타리아는 야만족 전투단체를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이 부분의 설명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문명의 해체과정에서 나타나는 사회체의 분열에 대한 설명이 <역사의 연구4>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지배적 소수자들의 다양한 요소가 없지는 않으나 일반적으로 고정적이면서도 획일적인 면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지배적 소수자 특유의
유형으로는 군국주의자가 있고, 그 뒤를 따라다니며 야비한 짓을 하는 착취자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내부 프롤레타리아에 대하여, 헬라스문명에서는 사회가 격변에 빠졌을 때 주권을 빼앗기고 붕괴한
도시국가들의 시민, 피정복민, 노예거래의 희생자들이 내부 프롤레타리아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에게는 종교가 희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외부
프롤레타리아의 예로는 미노스문명에서의 아카이아인을 들었는데, 이들에게는 올림푸스의 신이 종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외래 및 고유의 영감에 대하여 논하면서 ‘문명이란 독자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역사적
단위’라는 전제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영국의 인도 통치에 대하여 온정있고, 더 많은 은혜를 베풀었다(로마제국의 통치과
비교한 것이기는 하지만)는 인식은 영국민의 시각이 여전히 남아있는 듯하다는 느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