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인생
글로리아 스타이넘 지음, 고정아 옮김 / 학고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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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저 자신이 남성우월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페미니스트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극단에 치우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 탓입니다. 20세기 미국의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기수이자, 성별, 인종, 계층을 넘어선 시민운동가로 꼽힌다는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생소한 이유입니다. 80세가 넘은 지금도 여전히 역동적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그녀의 자서전 <글로리아 스타이넘 길 위의 인생>을 읽게 된 것은 전혀 우연입니다.


프롤로그에 실려 있는 배드랜드 사진과 브루스 채트윈이 <방랑의 해부학>에서 인용한 여행에 관한 구절 때문입니다. “진화는 우리를 여행자로 만들었다. 동굴이나 성에 정착해 살아온 기간이 얼마가 됐든, 진황듸 시간이라는 대양에서 그것을 물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저자는 자신의 긴 삶의 여정을 여행으로, 그리고 자신을 여행자라고 말합니다. 오랜 세월 자신의 삶이 여전히 희망과 에너지 가득한 비결은 ‘여행을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여행이라 함은 그녀의 일상이 여행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포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행이 그녀의 삶의 일부가 된 것은 어렸을 적부터 익숙해있었기 때문일 듯합니다. 이 책을 쓴 첫 번째 이유가 가장 중요하고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지만 가장 덜 드러난 자신의 삶의 일부를 함께 나누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감추고 싶었을 성장기의 모습을 담담하게 고백합니다.


한곳에 뿌리내리고 살지 못하고 부평초처럼 떠도는 생활을 한 것은 부친의 성격 탓으로 보이는데, 그녀가 길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삶을 선택한 것도 어쩌면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두 번째 목적을 여행에 둔 것 아닐까 짐작합니다. 즉 이 책을 읽는 이들도 가끔은 여행을 하도록 부추기고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심심한 여행이아니라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를 권하는 것이 세 번째 이유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소망은 지금까지 남자들의 영역으로 믿어왔던 길을 열어 여성과 공유하자는 것입니다. 세 가지 이유는 쉽게 이해가 가는 바 있으나 마지막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되는 것 같습니다. 굳이 성적 역할론을 따지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세상의 모든 일을 남녀구분 없이 공유하자는 생각이 과연 최선일까 하는 생각은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삶이 된 시민운동을 이끌어가는 힘은 여행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특히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앞세우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일이야말로 성공의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시민운동에서 중요한 요소가 대중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대중에 대한 울렁증이 심한 저자였다고 합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저 역시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처음 발표하던 날 얼마나 떨었던지 거의 우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떠는 목소리로 발표를 겨우 마무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떠는 발표를 몇 차례 이어간 끝에 지금은 전혀 떨지도 않을뿐더러 제 이야기를 듣는 청중들과 눈을 맞추는 여유를 부리기도 합니다.


시민운동을 하던 분이 결국은 정치판에 서 있는 모습은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보는 일입니다. 저자의 삶의 후반부는 시민운동보다는 정치활동에 무게를 두는 것 같습니다. 아마 처음에는 염두에 두지 않았던 일이라 생각합니다. 시민운동을 시작하면서 정치를 꿈꾸는 분들이 계신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시민운동을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위한 징검다리로 삼는 분들이 늘어나는 것은 시민운동의 선배들이 초심을 잃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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