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유혹 - 에코의 즐거운 상상 3
움베르토 에코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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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사람은 글쓰기에 관한 책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렵습니다. 움베르토 에코와 같은 글쓰기의 대가가 쓴 책이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제목에 낚인 느낌이 조금 남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거울과 그 밖의 다른 현상에 관해: 기호, 재현, 환상, 상상> 가운데서 이탈리아어 권 밖의 독자를 위해 따로 묶은 독일어판 선집을 옮긴 것이라고 옮긴이는 설명합니다.


저자는 ‘이 책에는 미학 논문, 대중문화를 분석하고 있는 글, 텍스트비평 논문 그리고 철학 논문과 기호학 논문이 들어 있다.(9쪽)’라고 설명합니다. 강연이나 학술대회, 혹은 청탁에 의한 기고문 등을 모아 엮었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글쓰기의 유혹’이라는 글의 제목에서 우리말로 옮긴 이 책의 제목을 따왔다고 했습니다. 학술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만큼 만만치 않은 책읽기였습니다. “부제인 ‘기호, 재현, 환상, 상상’은 이 책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적 상상력 문제(341쪽)”를 다루고 있다고 옮긴이는 설명합니다.


모두 14꼭지의 글을 세 묶음으로 나누었습니다. 서론부분에 해당하는 ‘예술과 매스미디어 우주의 시리즈 문제: 미학에서 시학으로’에서는 주로 현대의 매스미디어 문화에 관하여 논합니다. “현대의 매스미디어 문화가 제기한 몇 가지 예술적-미학적 문제를 검토하면서 이러한 매스미디어 문화를 조망할 수 있는 새로운 문제틀을 정식화(345쪽)”하고 있다고 옮긴이는 설명합니다.


기왕 유혹을 당했으니, 제1부 “세계를 얼마나 다양하게 서술할 수 있을까”에 들어있는 ‘글쓰기의 유혹’이라는 제목의 글을 생각해봅니다. 이 글은 파리의 갈레리 나쇼날 뒤 그랑 팔레에서 열린 글쓰기의 탄생을 주제로 한 전람회에 대한 단상을 적었습니다. 수메르, 아시리아, 그리고 바빌로니아의 상형문자가 기록된 점토판을 비롯하여 이집트의 상형문자 등을 전시한 전람회였던 모양입니다. 필자는 과연 글쓰기를 배운 사람만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지 고민해본 것 같습니다. 플라톤은 <파이드리아>에서 글자의 발명에 관한 파라오와 토트신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파라오는 토트 신이 글자를 고안했다고 질책을 했는데, 그 이유는 인간은 다시 자신의 생각과 기억을 계발할 수 없게 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글쓰기를 배우지 않은 소크라테스의 말도 플라톤에 의하여 채록되어 전해질 수 있는 것은 역시 글로 남겨질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필자가 기호학자임을 고려할 때, 당연히 인간의 생각을 남길 수 있는 기호, 즉 문자에 대하여 우호적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느껴지면서도 공감하는 대목입니다. 글쓰기의 유혹에 대한 저자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글쓰기는 정보를 기록하기 위해 고안되었으나 즉시 이데올로기적 기능도 넘겨받기 시작했다. 제의를 찬미하고 법을 확정하고 특권을 강조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글이 씌어졌다.(117쪽)” 즉 사람들이 글쓰기를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적을 수 있게 되는 것보다 특정한 목적의 글쓰기가 선행되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제3부 “세계에 대하 요모조모 생각해보기”에서는 보르헤스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보르헤스와 돈 이시드로 파로디가 함께 쓴 탐정이야기가 그때까지의 글쓰기와는 다른 창조적 글쓰기였다고 말합니다. ‘보르헤스의 우주는 다양한 사람과 정신이 도서관의 법칙에 따라 사고하고 있는 세계(273쪽)라고 정의한 에코는 그 법칙은 신실증주의 과학의 법칙이 아니라 비논리가 정신과 세계의 법칙을 모두 지배하는 역설적 법칙이라 했습니다. 보르헤스의 우주는 연출, 즉 픽션의 법칙에 다라 움직이는 것이었다고 보았습니다.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에 헌정하는 작품으로 이해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밖에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대한 에코의 설명도 남음이 있는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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