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인생 최고의 책> 때문에 읽게 되었습니다. 10명의 회원들로 구성된 북클럽 회원들 가운데 아내를 여윈 존이 선택한 책입니다. 아내와의 인연을 엮어준 책이었기 때문에 존은 인생의 최고의 책으로 <제5도살장>을 꼽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하지만 그녀는 돌아보았고, 나는 그 때문에 그녀가 좋다. 얼마나 인간적인가’라는 대목을 뽑아 10월의 글로 삼았습니다. 한편 작가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하기 위해서입니다.


무명의 SF작가 커트 보네거트를 주목받는 작가로 만들어준 소설입니다. 아마도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사회를 휩쓸고 있던 반전 분위기 덕을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모티프는 스무살이 되던 1943년 징집되어 유럽전선에 투입된 작가가 1944년 12월 22일 벌지전투에서 포로가 되어 드레스덴에 있는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 수용소가 바로 ‘제5 도살장’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렇게 종전이 되었으면 이 특별한 책이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1945년 2월 13일부터 17일까지 미국과 영국의 항공기 800대가 대대적인 폭격을 가해 무려 13만명이 죽고 아름다운 도시가 초토화되었습니다. 보네거트를 비롯하여 <제5 도살장>의 등장인물들은 지하의 고기 저장고에 있었던 덕분에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드레스덴의 참사를 목격한 보니거트가 평화주의자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내 인생 최고의 책>에서는 <제5 도살장>에서 주목해야 할 장치가 바로 빌리 필그림의 ‘시간으로부터의 이탈’입니다. 빌리가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낸 환상의 세계가 트라팔마도어 행성입니다. 지구로부터 500만km 떨어진 트라팔마도어행성의 사람들은 4차원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시간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모든 시간은 시간일 뿐 변하기 않습니다. 즉,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순간이 시간 속에서 일어나고 또 일어나곤 합니다. 트라팔마도어행성은 드레스덴의 충격으로 PTSD를 앓게 된 빌 리가 현실세계로부터 도피하려고 만들어낸 환상의 세계일뿐입니다. 작가는 빌 리가 시간과 장소를 마음대로 이동하는 것으로 그렸습니다. 인간은 자유의지로 움직이는 존재임을 드러낸 것입니다.


<제5 도살장>에는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 죽음과 추는 의무적인 춤’이라는 부제가 달려있습니다. 작가로서는 드레스덴의 충격적인 학살을 정리하기 위하여 많은 글을 쓰고 버렸던 것인데, 드레스덴의 수용소생활을 같이한 전우 버나드 V. 오헤어의 부인 메리가 ‘당신들은 그때 젖비린내 나는 애들에 불과했어요’라는 비난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철부지였을 10대에 겪은 참상을 어른의 시각에서 재구성할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시각에서 작품을 구성하겠다는 의지의 표시로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이라는 제목이 정해진 것입니다. 물론 제목이 되지는 못했습니다만....


‘십자군’이란 단어에 숨어 있는 의미는 그들이 단지 무지하고 미개한 사람들이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동기 역시 편협하기 이를 데 없는 신앙이었으며, 그들이 지나는 길은 피와 눈물의 길이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200만 유럽인들이 수백만의 재화를 투입한 십자군전쟁에 나서서 얻은 것이라고는 고작 팔레스티나를 100년여를 소유한 것 뿐이라고 합니다.


사실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활자로 옮기면 책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책이 읽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 것입니다. 저자 역시 이런 점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입니다. “23년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드레스덴 파괴에 대해 쉽게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목격했던 것을 그대로 보고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또 그것이 명작이 되거나, 그렇게까지 못 되더라도 큰 돈벌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제가 워낙 거창했으니까(11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그리 많은 말이 떠오르지 않았고, 취재 끝에 썼다가 버린 원고만도 엄청났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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