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과 쌀람, 장벽에 가로막힌 평화 - 유재현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기행
유재현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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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공부하던 실험실에는 팔레스타인에서 온 친구가 있었습니다. 장난을 좋아하고 밝은 표정의 그였지만, 고국 팔레스타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입에 담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거둔 놀라운 전과에 홀려있을 때였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에 대하여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샬롬과 쌀람, 장벽에 가로막힌 평화>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하여 그동안 보고 들으면서 긴가민가했던 것들에 대하여 분명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플로리다에서 만난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통하여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유대인들이 당했던 끔찍한 희생에 대하여 안타까움과 함께 인류차원에서 속죄할 이유가 있다는 생각 같은 것 말입니다. 하지만 당시 나치는 유대인 뿐 아니라 집시, 공산당 등에 대하여도 유대인들과 꼭 같은 만행을 저질렀고, 그 규모가 만만치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입은 피해를 세상에 알리는 사람들의 힘이 유대인들보다는 미약했던 점도 작용해서 유대인들의 피해만 유독 부각되어왔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게 된 것을 말하는 디아스포라는 그 기원이 페르시아에 의한 바빌론의 유수로 거슬러 올라갑니다만, 로마제국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초토화되고 유대인들을 흩어놓기 전인 기원 70년 무렵에 이미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보다 밖에 사는 유대인이 더 많았다고 하니 ‘디아스포라’를 부정적으로 떠올릴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떻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의 영토를 비집고 들어온 유대인들이 그곳에 이미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부대낀 70년의 갈등의 실체를 저자는 추적하고 있습니다. 시집살이를 심하게 했던 며느리가 더 심한 시어머니가 된다고 했던가요? 오랜 세월을 타민족의 영역에서 살면서 핍박을 받아온 유대인들이 역시 남이 살던 땅을 차지한 유대인들이 그곳에 이미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핍박하는 정도는 자신들이 당한 것 이상이라는 것이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저자의 주장입니다.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일으킨 테러만이 부각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테러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감춰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이스라엘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제3공화국이 국민들에게 요구했던 애국심과 근면 성실과 같은 요소들을 이스라엘에서 가져올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저자가 만난 이스라엘의 보통 사람들은 세상사람들과 크게 다를 것은 없더라고 했습니다. 전투의 위기가 상존하고 있는 군대는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어한다는 일반적인 심리 같은 것 말입니다. ‘애국심과 희생정신으로 불타는 청년들에 의해 수호되는 무적의 이스라엘 군(24쪽)’이라는 이미지는 파씨스트적 애국주의로 색칠한 신화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합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피해만을 부각시키다보니 나치의 죄악을 오히려 경감해주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종주의의 광기에 휩싸인 나치는 유대인 뿐 아니라 집시, 장애인, 폴란드사람, 공산주의자들 역시 학살했던 것이므로 나치의 인종주의를 심판대에 올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전후 독일은 나치가 저지른 만행에 대하여 사죄를 거듭했는데, 대부분 유대인들에 대한 사죄에 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피해자들은 잊혀지고 있는 것입니다.


건국 이후 이스라엘이 보여준 것은 민족주의에 기반한 또 다른 인종갈등이었고, 그 정도는 인류의 역사에 이미 기록된 파시스트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저자는 직접 경험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편견, 혹은 무관심을 벗고 그들이 저지르고 있는 잘못을 제대로 파악하고 지적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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