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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ㅣ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21
윌리엄 워즈워스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17년 4월
평점 :
지난 달 여름휴가를 받아 다녀온 영국여행 두 번째 날 리버풀에서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로 가는 길에 캠브리아주의 블록홀국립공원의 호수지역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윈더미어호수에서 유람선을 타고 앰블사이드까지 50여분을 항해하였습니다. 호수 위에 부는 삽상한 바람을 맞으며 호수로 흘러내리는 완만한 산록의 흐름을 바라보면서 워즈워스가 되어 봅니다. 앰블사이드에 워즈워스가 살았던 도브 코티지가 있는 그래스미어까지는 버스로 잠깐입니다. 영국의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글래스미어에 살면서 그의 대표작 ‘수선화’와 ‘서곡’을 썼다고 합니다.
원더미어호수에 도착했을 때, 선착장을 가득 메운 관광객을 보면서 놀랐습니다. 워즈워스의 영향을 받은 하드윅 론슬리(Hardwicke Rawnsley) 신부, 로버트 헌터(Robert Hunter) 그리고 옥타비아 힐(Octavia Hill) 등 세 사람이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 지역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철길을 깔아 기차를 운행하려는 계획을 저지한 것입니다.(요코가와 세쯔코 지음, 토토로의 숲을 찾다; http://blog.joins.com/yang412/15152542) 호수지역의 자연환경을 보존하자는 취지였는데, 그렇게 지켜낸 곳이 버스를 타고 몰려든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알랭 드 보통 역시 호수지방을 여행하면서 워즈워스가 여기 살면서 자연으로부터 얻은 영감을 시에 담았음을 확인하기도 합니다.(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http://blog.joins.com/yang412/13104741) 보통이 “오, 나이팅게일이여! 그대는 진정 / 불의 심장을 가진 생물이로다……. / 그대는 마치 포도주의 신 덕분에 발렌타인 같은 순교자라도 된 듯이 노래하는구나.”라는 워즈워스의 시구절을 인용한 것을 보면 호수지역의 숙소에 머물던 어느날 아침 창밖에서 나이팅게일이 우짖는 소리를 들었던 모양입니다.
워즈워스의 시선집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에서 첫 번째 만나는 시는 그의 대표작이기도 한 「수선화」입니다. 첫 번째 연, “산골짜기 넘어서 떠도는 구름처럼 / 지향 없이 거닐다 / 나는 보았네 / 호숫가 나무 아래 / 미풍에 너울거리는 / 한 떼의 황금빛 수선화를.(7쪽)”을 음미하다보면 원더미어의 호수에서 바라본 호숫가 풍경 그대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밋밋한 언덕 위로 몇 점 구름이 떠있고, 잔물결이 이는 호숫가에는 수선화가 피어있는 듯한....
그런데 시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다시 쓰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I wandered lonely as a cloud’인 원제목이 ‘수선화’로 옮겨진 것이라든가, 같은 시구를 ‘구름처럼 지향 없이 거닐다가’로 옮긴 것이라든가, 시구의 배열 역시 원작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물론 외국어로 된 시를 우리말로 옮기는 것 자체가 시를 다시 쓰는 셈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전체의 느낌을 오롯하게 느낄 수 있으면 좋은 시번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선집의 원제목은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입니다. 우리말 제목은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입니다. 선집의 제목이기도 한 시는 세 번째로 실려있습니다. 이 시는 길지 않으니 전체를 소개할 수 있겠습니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 내 가슴 설레느니, / 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 다 자란 오늘에도 매한가지, / 쉰 예순에도 그러지 못하다면 / 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 /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 바라노니 나의 하루하루가 / 자연의 믿음에 매어지고자.” 시인의 말처럼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가슴이 설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도시에 살다보면 무지개를 볼 기회가 많지 않지만, 여행을 하다 무지개를 볼라치면 언제나 호들갑을 떠는 것을 보면 무지개는 여전히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무엇이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