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의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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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작가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작품의 바탕이 되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그런 작품을 읽어보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제임스 조이스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합니다. 스티븐 디덜러스라고 하는 젊은 작가의 유년기에서 청년기까지의 삶과 정신세계를 그렸는데, 가정환경의 변화와 학교생활, 종교에 대한 생각, 당시 영국의 식민지배에 대항하던 아일랜드의 사회적 분위기 등에 대한 작가의 생각 등이 담겨 있습니다.


그 무렵 영국이나 아일랜드의 중등교육은 가톨릭 혹은 기독교회가 운영하는 기숙학교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당연히 학교의 분위기는 엄숙을 넘어서 엄격했던 모양인데, 요즈음 우리나라의 분위기 같으면 난리가 났을, 이유 없는 체벌도 자행(?)되었던 모양입니다. 오죽하면 주인공이 “사랑하는 어머니, 저는 지금 아파요. 집에 가고 싶어요. 제발 오셔서 저 좀 데리고 가주세요. 저는 지금 진료소에 있답니다”라고 편지를 썼겠습니까?


아일랜드는 가톨릭을 믿는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조이스가 젊을 무렵만 해도 그때까지 절대적 지위를 차지하던 가톨릭 신부님을 무조건적으로 받들던 분위기가 조금씩 변하고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특히 가톨릭신부가 정치에 간여하는 것이 교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마도 영국의 식민지배에 긍정적인 견해를 표명하였던 것은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주인공이 하급학년 때 다니던 학교의 교장선생님이 책상 위에 해골을 얹어두고 있었다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유럽의 미술작품을 보면 사람의 두개골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경화작가는 <스페인 미술관산책; http://blog.joins.com/yang412/13205419 >에서 “서양회화에서 해골이 등장하는 경우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너희도 곧 죽어서 이 해골처럼 될 테니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종교적 의미가 더해져서 “인간이 언젠가 죽게 되어 있으므로 생전에 회개하고 하느님을 잘 섬기라는 뜻의 라틴어구 memento mori를 교훈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런가하면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탄생한 정물화 가운데 해골이 등장하는 것을 바니타스 정물화라고 하는데, 허무, 무상, 허영이라는 의미의 바니타스에 해골이 등장하는 것은 죽음 앞에 인생은 무력하기 때문입니다. 메멘토 모리에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 즉 ‘신이 주신 삶의 순간, 지금 현재를 마음껏 즐기라’는 또 다른 해석이 숨어있는 것입니다. 세월따라 생각이 바뀌는 법이니, 어쩌면 조이스 역시 메멘토 모리하라는 교장선생님의 깊은 뜻을 카르페 디엠하라는 의미로 재해석한 것은 아닐까요?


‘담배도 안 피우고, 바자에도 안 가고, 계집애들과 시시덕거리지도 않는 모범청년 스티븐 역시 눈길을 주는 여성이 등장하고, 심지어는 홍등가에 드나들기도 하는데, 신부님의 강론을 듣고 갈등하던 순간도 적고 있습니다. 고해성사를 통하여 마음의 갈등을 풀어낼 뿐만 아니라 성직자의 길을 고려해보라는 신부님의 추천을 받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직을 포기한 것은 생각이 자유로웠던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보면 종교는 병을 주고 약도 주는 미묘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스티븐이 친구들과 주고받은 대화를 보면 가톨릭에 대한 회의가 감춰져 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유년시절의 엄격한 학교생활과 아버지의 파산으로 학교를 떠나있는 동안 생각의 자유로움을 얻었고, 이어서 죄악을 범하고 번민하는 모습과 회개 이후 성직의 길을 권유받는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성직의 길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조국의 현실을 거부하고 새로운 길의 모색에 나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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