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커리 정원의 여행자 - 어느 우퍼의 영국 여행 다이어리
문상현 지음 / 시공사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대우그룹의 총수 김우중회장님의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말로 젊은이들이 눈을 세상으로 향할 것을 격려한 바 있습니다. <루커리 정원의 여행자>는 새로운 형식의 외국생활을 체험을 소개하는 책자로 세상이 넓고 할 일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이 책에서는 한때 유행하던 워킹홀리데이와 비슷한 형식이지만 조금 더 의미를 둔 우프(WWOOF; 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 ‘유기농장에서 일하는 범세계적 기회’정도로 옮길 수 있을까요?) 활동경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체험 일꾼 문상현님은 일찍이 인권단체와 사회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해오다가 서른 즈음에 영국에서 우프활동에 나섰다고 합니다. 왕복여비 백여만원을 들고 떠나서 무려 반년을 살다왔으니 관심이 갈만한 것 같습니다.


영국의 우프는 물론 영국인들이 운영하고는 있지만, 체험일꾼은 다양한 나라에서 오고 있으니 영어도 배우고 세상을 아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영국여행을 앞둔 저도 영국과 영국인들에 대한 소중한 정보를 얻는 책읽기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영국 입국신고가 꾀까다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제가 영국을 다녀온 것이 오래전이라서 그 사이에 변화가 생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밖에도 새무얼 존슨이라는 작가가 ‘런던이 지겨워지면 그건 인생이 지겨워진 것이다(When a man is tired of London, he is tired of life)라고 했다는 말도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저자가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라셀라스>를 쓴 18세기 계몽주의시대의 최고의 문인 새무얼 존슨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선하려고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영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인식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어. 내가 어릴 적만 해도 하인으로 있던 동양인이나 아프리카인이 함께 식탁에서 밥을 먹다니.... 암. 난리가 날 일이지(143쪽)”라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영국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날씨도 빠트릴 수가 없습니다. “영국은 365일 중 2백일이나 비가 내릴 만큼 날씨가 고약하다는데, 십여년 전에 런던에서 2박3일할 때는 겨울이기는 했지만 화창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가 하면 영국의 의료제도나 복지제도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저자 역시 ‘빈곤계층의 비만인구에게 다이어트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 같은 것은 한국에서 꿈도 꾸지 못할 일이라고 예를 들었다는데, 정작 영국인들은 시큰둥하더라고 합니다. 빈곤계층에 비만인구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병주고 약주는 정책이라는 것입니다. 막연한 지원보다는 스스로를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갖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입니다. 복지에 대한 이런 철학은 우리도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의 우프체험은 주로 영국의 남쪽에 있는 라이게이트, 루커리, 몽크턴 등 세 곳에서 이루어졌던가 봅니다. 체험이 끝난 다음에는 런던, 에든버러, 맨체스터, 리버풀을 거쳐 귀국길에 올랐다고 하는데, 영국내 여행도 우프체험과정에서 만난 인연들을 통하여 이루어졌다고 하니, 옛날에는 꿈도 못 꿀 일입니다. 요즘이라면 저도 한 번 시도해보았을까요? 우프를 개설하는 영국 사람들도 다양한 성품을 가지고 있어서 영국 사람과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국에 도착해서부터 영국을 떠날 때까지의 일상을 인상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일기형식으로 적고 있어서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요즘 젊은이다울 수도 있는 문장을 조금 다듬었더라면 좋았겠다 싶습니다. 런던에 도착해서 시차적응을 하는 동안의 기록을 보면 멋들어진 글을 써야 하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지나쳐 보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내 담담한 필치로 바뀌었기 때문에 읽기에 부담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잔인한 운명, 가혹한 텃세, 런던을 정복하겠다는 배짱, 주모면밀, 호스텔로 퇴각 등은 전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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