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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눈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평점 :
오래 전에 읽었던 단편 ‘킬리만자로의 눈’을 다시 읽은 것은 킬리만자로 가까이 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림자도 볼 수 없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가왕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노랫말처럼 ‘구름인가 눈인가’ 구분할 수 없는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의 흔적을 보았을 뿐입니다. 노랫말에 등장하는 표범과 하이에나의 정체를 밝혀보기 위하여 ‘킬리만자로의 눈’을 다시 읽었습니다. 표범은 제목 아래 적힌 글에만 등장합니다. “킬리만자로는 해발 19,710피트의 눈 덮인 산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그 서쪽 봉우리는 마사이어로 ‘응가예 응가이’, 즉 ‘신의 집’이라고 부른다. 서쪽 봉우리 가까운 곳에 얼어서 말라붙은 표범의 사체가 있다. 이 표범이 무엇을 찾아 그 높은 곳까지 왔는지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초원에서 먹이를 뒤쫓을 표범이 그 높은 킬리만자로에 올라갈 이유는 분명 없어 보입니다. 작은 초식동물을 뒤쫓는 일상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최고봉에 올라보려는 고상한 꿈을 가졌던 표범일까?
하이에나는 ‘킬리만자로의 눈’의 끝 부분에 죽음의 사자를 따라서 등장합니다. 하이에나는 스스로 사냥도 하지만 포식자가 먹고 남은 썩은 고기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로 하이에나를 죽음의 그림자로 그려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이에나와 함께 온 죽음의 사자가 그의 몸에 올라타자 숨을 쉴 수 없게 됩니다. 그의 죽음을 마중 나온 사람은 오랜 친구 콤프턴입니다. 퍼스 모스 기종의 2인승 경비행기를 몰고서 말입니다. 그리고는 ‘온 세상처럼 넓고, 크고, 높고, 햇빛을 받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하얗게 빛나는 킬리만자로의 평평한 꼭대기’로 갑니다. ‘신의 집’으로 말입니다.
해리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건은 사소하기만 합니다. 큰 영양무리의 사진을 찍으려고 접근하다가 가시에 무릎이 긁혔고, 바로 소독약을 바르지 않은 까닭에 염증이 생겨 다리가 썩어 들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소한 것에 부주의하면 심각한 사태를 당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합니다.
작가는 생사의 기로에 선 해리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려냈습니다. 킬리만자로에 오기 전에 갔던 장소와 사건들을 떠올리며, 그것들을 구성하여 글로 남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합니다. 1차 발칸전쟁 기간 중인 터키의 카라가치, 오스트리아 슈룬츠에서 맞이한 크리스마스 등등.... 어쩌면 자신의 이야기를 빗대어 그려낸 것은 아닐까요?
이어지는 단편 ‘프랜시스 머콤버의 짧고 행복한 삶’에서도 주인공 남자의 죽음을 다루었습니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는 부자 여성과 결혼한 해리의 죽음을 다루었다면, ‘프랜시스 머콤버의 짧고 행복한 삶’에서는 부자 남성 프랜시스 머콤버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머콤버는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총에 설맞은 물소가 달려드는 순간 그를 구하려는 생각에서 아내가 쏜 소총에 맞은 것이다. “그는 물소의 거대한 몸뚱어리가 그를 거의 덮치는 상황에서 코를 앞세우고 다가오는 머리와 거의 수평이 되게 총을 놓고 신중하게 겨냥을 한 다음 다시 쏘았다. 그는 사악한 눈과 머리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그 순간 갑자기 눈을 멀게 하는 백열의 빛이 머릿속에서 폭발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그가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느낀 것이었다.(119쪽)”
사실 머콤버는 며칠 사자사냥을 하다가 비슷한 상황을 겪었는데, 역시 설맞은 사자가 수풀 속에서 튀어나오자 그만 등을 돌려 달아났던 것입니다. 그런 그를 두고 아내가 비웃었다고 생각한 머콤버는 자존심을 회복할 계기가 필요했던 것인데, 결국 사고로 이어진 것입니다. 사자사냥을 앞두고 소말리아의 속담을 알았더라면 머콤버도 실수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용감한 남자는 사자 때문에 세 번 겁을 먹는다. 처음 사자의 발자국을 볼 때, 처음 사자가 울부짖는 소리를 들을 때, 처음 사자와 마주할 때(75쪽)” 의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게 되면 어떤 생각이 들까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누구도 답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죽음에서 돌아온 사람이 없으니 말입니다.
두 편의 단편은 아프리카를 무대로 한다는 점과 등장인물의 죽음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나름대로 곱씹어 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11편의 단편들은 유럽, 혹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여기에서는 논외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