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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hH
로랑 비네 지음, 이주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1월
평점 :
1942년 6월 4일 프라하에서는 독일과 합병된 체코슬로바키아의 임시총독 라인하르트 하리드리히가 출근길에 레지스탕스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습니다. 나치의 제국보안본부에 소속된 게슈타포 및 SS보안방첩부의 수장을 지낸 하이드리히는 생전에 ‘프라하의 도살자’, ‘피에 젖은 사형집행인’ 등의 별명으로 불렸으며, 히틀러의 신임을 받는 존재였다고 합니다. 그는 유대인 대학살의 주도한 핵심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런던에 있는 체코망명정부가 기획하여 침투시킨 얀 쿠비츠와 요제프 가베크가 주도하였는데, 하이드리히가 죽은 날 152명의 유대인이 처형되었으며, 범인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SS의용산악사단 소속 부대가 출동하여 범인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 작은 마을 리디체를 섬멸했다고 합니다. 마을 주민 중 남자들 172명이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암살범은 성 카를 보르메우스 교회에 숨어있었는데, 변심한 동료 레지스탕스의 고발로 SS와 게슈타포가 습격하여 모두 사살되었습니다. 암살사건 이후 나치제국이 벌인 광란의 복수극은 나치제국이 벌리게 되는 인종청소의 잔악함의 전주곡이었습니다. 그때까지 가면 속에 숨어 있던 나치의 진면목이 조금 드러나면서 세상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렸다고 합니다.
<HHhH>는 프랑스 작가 로랑 비네가 다룬 하이드리히 암살사건의 전모입니다. 작가는 독특한 스타일로 사건을 재구성하였는데 바로 토대소설이라는 생소한 형식입니다. 토대소설(인프라소설)은 실화에 가상의 내러티브와 작가의 생각을 결합한 소설형식이라고 옮긴이는 설명합니다. 저자가 창안한 소설형식인데 실존 인물과 역사적 사건을 대상으로 하여, 오디오와 속기 자료를 토대로 에피소드와 대사를 구성하고, 여기에 저자의 취재 및 집필 과정까지 소설 내용으로 담아냈습니다. 심지어는 같은 사건에 대한 다른 작가의 소설에 대한 날선 비판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익숙하지 않은 형식인 탓인지 읽는 흐름이 깨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합병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고, 합병과정에서 나체제국은 체코슬로바키아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하였다고 합니다. 체코왕국이 잘나가던 시절 카를4세는 부족한 노동력을 독일에서 수입하였는데, 이때 이주한 독일인들이 나치제국이 성립하였을 때 동조하였다고 합니다. 하이드리히의 암살사건에서 보는 것처럼 체코인들은 독일점령군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하였는데, 보흐밀 흐라발의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http://blog.joins.com/yang412/14872494>의 주인공 흐르마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까지도 독일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한편 책의 제목 <HHhH>의 의미를 분명하게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미루어 보건데 히틀러, 하임러, 하이드리히, 그리고 홀로코스트의 머리글자를 따모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h’가 누구를 의미하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적어도 나치제국 정보라인의 수장이었던 하이드리히가 영국 정보부의 수장을 ‘M’이라고 부르는 것을 흉내내어 자신을 ‘H’라고 했다고 적은 것과 당시 나치제국의 서열을 따졌을 때 히틀러가 ‘h’에 해당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작가는 프라하의 유명한 골렘의 전설을 빠트리지 않습니다. “연금술사들이 살았던 옛 프라하의 이야기와 전설에 따르면 프라하가 위험해질 때 골렘이 다시 올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골렘이 돌아와 유대인들과 체코인들을 보호해 주지는 않았다. (…) 독일군이 사람들을 죽였을 때 (…) 철인은 오랜 저주에 갇혀 움직이지 못했다.(4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