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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서자들 1 -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
마린 카르테롱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나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에서는 중세 기사단을 잇는 비밀단체가 지금도 은밀하게 활동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음모론이나 비밀스러운 단체의 움직임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소재가 되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작가적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낼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소재이기도 합니다.
중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현대판 기사단의 활약을 다룬 <분서자들>을 읽었습니다. 비밀조직은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 무려 2500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세상의 진리를 담을 책들을 지키는 수호자들의 활약은 21세기의 분위기에 맞도록 현대화시킬 필요가 있었던가 봅니다. 그리하여 컴퓨터에 익숙한 어린이들로 연령을 낮추었습니다.
책을 지키려는 자들이 주로 기사출신의 명문가의 후예들이라면, 이들이 수호하는 책들을 찾아내 없애려는 비밀조직도 있습니다. 주로 성직자나 왕가 등 권력을 쥔 집단으로 보이며, 아무래도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듯합니다. 지키려는 자들이나 없애려는 자들 모두 오랜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하여 라틴어로 대화를 한다거나 로마시대의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따오기도 하였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균형을 유지하던 두 세력은 주인공의 아버지가 새로운 사실을 찾아낸 것이 빌미가 되어 충돌하기 시작합니다. 적이 누구인지 분명치 않으면 지키기도 쉽지가 않은 법입니다. 처음에는 지키는 자들이 불리한 상황을 맞게 되지만 언젠가는 반전을 맞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 같은 것이 있어 여유있게 읽기는 합니다만, 손에 땀을 쥐게 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들이 어린 탓인지 피가 튀는 싸움과 죽음이 난무하지만 끔찍한 장면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을 피하는 배려가 돋보입니다.
지키는 자들의 힘이 부족한 것을 고려한 때문인지 주인공 삼총사-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의 인물구성에서 따온 듯 합니다-와 이들을 지원하는 주인공의 여동생 세자린(카이사르의 불어식 여성 이름이라고 합니다)은 다양한 능력을 부여합니다.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이름을 딴 오귀스트와 컴퓨터의 천재인 네네, 그리고 적과의 동침이 되는 셈인 바르톨로메가 삼총사를 이루었다. 그리고 야스퍼거증후군을 앓는 세자린은 기억의 천재이며 돌아가신 아버지와 오빠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책을 지키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서인지 책에 관한 좋은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은 사상, 시대, 작가의 불멸을 의미한다. 책은 인류의 과거를 기술하고, 인류의 현재를 새기고, 인류의 미래를 예고한다. 가장 경이로운 것은 모든 문명의 사상가들이 책을 그렇게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류를 인쇄한 것. 그것이 책이다.(85쪽)”
여기서 모든 문명의 사상가들을 대표하여 이슬람 사학자이자 아랍 산문의 대가 알자히즈(767-869)의 말을 인용합니다. “책은 얼마나 놀라운 보물인가! 책이 허락하는 독립은 얼마나 대단한가! 고독한 시간의 동반자! 책이 제공해주는 양식! 수많은 정보와 경탄할 만한 장면은 또 얼마나 많은지! 유배지에서의 동반자! 책은 지식의 보고이자 기교를 담은 그릇이며, 진지한 말과 농담이 담긴 컵이다. 책이 아니면 의사의 방랑자, 비잔틴과 힌두, 페르시아와 그리스, 죽음과 불멸이 어떻게 동시에 공존할 수 있는가! 더 나아가 책이 없으면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을 대변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책은 모욕을 주지도 귀찮게 하지도 않는 동반자이다. 독서에 빠질수록 기쁨은 늘어나고, 정신은 더 예리해지고, 언어는 유려해지고, 어휘는 풍부해지고, 영혼은 열의로 가득 차고, 가슴은 충만해진다. 책은 어디서나 읽히고 그 내용은 모든 언어로 이해가 가능하며, 시대적 간극과 공간적 거리에도 그 지속성을 유지한다.(87쪽)”
전체 이야기의 3분의 1이 끝났음에도 벌써 주요 등장인물 가운데 유명을 달리하고 우리의 주인공들이 이야기의 중심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참, 이야기는 오귀스트가 알게 된 일과 세자린이 알게 된 일을 적은 일기를 교차시키면서 상황의 전개를 엮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