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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즈 강가에서 - 인도를 품는 어머니강 갠지즈의 사람 깨우는 이야기
김나미 지음 / 고즈윈 / 2005년 5월
평점 :
인도에 대한 생각은 이중적인 것 같습니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는가 하면 잘 다녀올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같은 것이 뒤섞이는 것 말입니다. <갠지스 강가에서>의 저자 역시 서두에 ‘인도에 다녀온 사람의 반응은 두 가지로 뚜렷하게 나뉜다.’라고 말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꼭 다시 가보고 싶은 나라, 그리고 죽어도 다시는 가지 않을 나라’ 아마 저는 이도저도 아닐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가보고 싶은 데가 너무 많아서 한번 가본 곳을 다시 찾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왠만하면 죽어도 다시는 가지 않을 곳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독특한 면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인생 초반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두었으니 잘 모르겠지만, 뒤늦게 불교와 철학을 공부하시면서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참스승을 찾아다니셨다니 말입니다. 다양한 종교인들을 만나다보니 종교전문 작가라고 하나봅니다. 논어(論語) 「술이(術而)」에서 온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길을 가면 그 가운데 내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반드시 있다’라는 뜻입니다. ‘스승’이라하면 지덕(知德)을 갖춘 사람을 연상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택기선자이종지(擇其善者而從之) 기불선자이개지(其不善者而改之)’라고 하신 것을 보면, 공자께서는 누구로부터도 배울 수 있다고 보셨던 것 같습니다.
저자 역시 공자님 말씀을 잘 새겼던 까닭인지 인도에서 만난 다섯 명의 어린이로부터 배웠던 것들이 인상적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가 하면 인도사람들의 중심사상이 되고 있는 힌두교의 민낯을 가감없이 소개합니다. 이런 깨달음이 있기까지 저자는 몇 번이고 인도를 찾았다고 하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여전히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인도에 가게 만드는지, 무엇을 찾아 헤매는지 난 정말 모른다’라고 고백합니다.
얼마 전에 읽은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만, 유일신을 믿는 몇몇 종교와는 달리 힌두교는 다양한 신을 믿는데, 심지어는 기독교의 하느님까지도 힌두신의 하나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가히 종교의 도가니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힌두교인을 개종시키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고 합니다. 이런 토양에서 어떻게 불교가 생겨나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는지 궁금하기까지 합니다. 그런가 하면, 힌두신을 정성스럽게 모시면서도 타인(특히 외국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그들이기도 하다니 읽는 저도 이해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떻든 인도사람들은 시바신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합니다. 현생의 어려움을 들어주지 않더라도 다음에는 더 나은 생으로 태어나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신에게 선물을 드리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윤회의 업을 끊어내서 다시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는 것이 삶의 목표라는 구도자도 있다고 합니다. 환생을 결정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전생에서 행한 모든 업, 카르마에 따르기 때문에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자의 인도여행은 무언가를 찾는데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인지 정해진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사정이 되는대로 머물다가 그 상황이 마무리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그런 식입니다. 종교유적을 찾아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 깨달음을 얻으려함이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 많은 인도여행을 통하여 저자가 얻는 깨달음은 ‘당연히 누리던 것들에 대한 새삼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라는 것이라는데, 글쎄요. 꼭 인도여야만 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