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라틴아메리카 신화와 전설 - 고대 문명의 수수께끼에서 신화적 상상력까지
박종욱 지음 / 바움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라틴아메리카 지역이 우리와 가까워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서인지 이 지역에 관한 정보는 그리 많지 않은 편입니다. 특히 마야, 아즈텍, 그리고 잉카문명은 그저 신비에 싸여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느 사회나 신화나 전설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신화나 전설은 우선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너무 어려워 쉽게 기억되지 않는 한계도 가지고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 신화와 전설>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라틴아메리카의 신화와 전설이 맥락으로 보면 여타 지역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메조아메리카에 자리한 아즈텍문명과 마야문명은 비교적 늦게까지 인신공양으로 길흉을 점치거나 신을 위로하였는데, 공양의 제물을 얻기 위하여 다른 부족을 습격하는 일이 일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족들이 서로 연대하여 같이 발전하는 모형이 아니다보니 15세기 스페인 침략자들에게 수월하게 무너지는 비극을 맞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즈텍과 마야문명의 전설은 포로로 잡혀온 용사나 여인들이 슬프게 스러져간 흔적이 꽃으로 별로 남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부족간의 전투에서 잡혀온 희생물도 있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부족 안에서도 제물을 바치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즈텍의 수선화 전설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이웃 부족과의 전투에 나선 남편이 절체절명의 순간 신에게 딸을 제물로 바치겠다고 맹세한 순간 전황이 바뀌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개선한 아버지는 아내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지키고 말았는데, 제물이 된 딸도 두려움에 떨며 슬프게 울었을 뿐 아니라 희생제를 지켜보는 어머니 또한 찢어지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결국 딸을 삼킨 호수로 나가 몸을 던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사라져간 물 속에서 황금빛 화관을 가슴에 품은 노란 달빛 꽃이 피어올랐는데, 이 꽃이 수선화라고 합니다.
마야신화에 등장하는 세상 끝의 뱀은 마야부족에 내려오던 것이라기보다는 스페인 식민시대에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 있습니다. 유카탄반도의 밀림에 흩어져 사는 야키 부족에게는 예언의 나무라는 보물이 있었는데, 어느 날 ‘세상 끝의 뱀’이 부족에게 들이닥쳐 사람들을 해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합니다. 부족사람들은 숲에 몸을 감추고 있다가 뱀을 처단할 수 있었습니다. 죽어가던 뱀은 다음과 같은 경고를 남겼다고 합니다. “지금 나는 소망(야키부족들을 모두 지배하겠다는)을 이루지 못한 채 죽어가지만, 내 백성이 될 수도 있었을 너희에게 일러줄 말이 있다. 너희가 지나다니는 오솔길과 샛길을 조심하라. 세월이 흐르면서 동쪽과 남쪽에서 하얀 얼굴의 사람들이 빛과 천둥 같은 무기를 손에 들고 오솔길과 샛길을 따라 너희를 치러 올 것이다. 너희가 그들의 무기를 빼앗아 그들에게 대항하지 못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들의 무기를 빼앗아 그들에게 싸우지 않는다면, 너희는 그들에게 짓밟혀 노예가 되어 숨죽이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151쪽)” 세상 끝의 뱀이 예언한대로 야키부족들은 스페인의 침략으로 노예같은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잉카의 창조신화에는 창조와 파괴가 순환하는 시간개념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시간과 공간이 순환하거나 회전하는 개념은 파차쿠티(Patchacuti)라는 말로 표현된다는데, 원주민 연대기작가 펠리페 구아만 포마는 1613년에 완성한 <새로운 연대기와 좋은 정부>에서 잉카를 둘러싼 세계의 역사를 5기로 구분하였다고 합니다. 제1기는 와라위라코차루나로, 사람들은 자연상태에서 생활했으며 알 수 없는 이유로 막을 내렸고, ‘와리’사람이라는 뜻의 와리루나라 불린 제2기에는 좀 더 진보한 인류가 살았으며, 그들은 비라코차를 창조자로 숭배했는데 대홍수로 막을 내렸다고 합니다. 제3기는 ‘난폭한 사람’이라는 뜻의 푸른 루나라 불렀고, 도시국가가 형성될 만큼 발달된 문명을 이루었으며 창조자인 파카카막을 숭배했다고 합니다. 제4기인 ‘호전적인 사람’이라는 뜻의 아우카 루나는 잉카제국의 초기에 해당되며, 조직과 체계가 중앙집권화되는 시대였는데, 어떻게 막을 내렸는지 알려지지 않았으며, 제5기는 잉카인들의 시기인데 십진법에 기초한 관료제도, 연령등급제, 제국의 종교 및 사회조직 등이 형성된 선진문명의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생소한 듯 하지만 이국적인 느낌의 라틴아메리카의 신화나 전설을 통하여 아즈텍, 마야, 잉카문명을 조금 더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