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투쟁 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 12
아돌프 히틀러 지음, 이명성 옮김 / 홍신문화사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전세계의 전쟁의 소용돌이이 빠트리고, 전쟁의 와정에 유대인을 비롯한 다양한 인종과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아돌프 히틀러가 남긴 대표작입니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젊은 시절 프라하로 도피해서 살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어서였고, 평범한 독일 사람들의 왜 그에게 홀딱 넘어가고 말았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히틀러는 1924년 4월 1일 뮌헨 국민재판소에서 금고형을 선고받고 레히 강변에 있는 란츠베르크의 요새에 수감되었는데, 뮌헨폭동과 관련된 죄목이었다고 합니다.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을 결성을 주도하면서 운동의 목표와 발전상을 정리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더불어 자신의 발전과정까지도 돌이켜보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나의 투쟁>은 반민주주의적, 독재주의적, 반유대주의적 세계관을 피력하고, 동유럽에서 유대인을 추방하고 게르만민족만의 대제국을 건설한다는 구상을 담았는데, 당시 1천만권 이상이 팔려나간 나치의 성전(聖典)입니다. 그는 독일과의 국경이 가까운 오스트리아의 브라우나우에서 태어났는데, 오스트리아에 살고는 있었지만, 독일인이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어려서 화가의 꿈을 키웠던 그는 아버지의 반대로 실업학교에 진학하였지만, 아버지 사후에 미술의 꿈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다음에 빈으로 가서 치른 미술대학 입학시험에서 회화과에 낙방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가 회화과에 입학했더라면 세계의 역사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20세기로 넘어오면서 빈의 사정은 부와 빈곤이 혼재되어 있는 복잡한 양상이었던 모양입니다.


그 시절 히틀러는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하는데, 독서하는 법에 관한 내용을 기억할 만합니다. “독서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첫째로 독서는 각 개인의 소질과 능력을 끌어내고 그 인격 형성을 충싥히 하깅 nl해서 조력하느 것이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독서는 각 사람이 자기 직업에 필요한 도구나 자재를 공급해야 한다. 둘째로 독서는 일반적인 세계상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나 독서는 그 책의 내용이 목차나 그 읽은 차례대로 기억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모자이크 무늬로 된 돌과 같이 일반적 세계상을 그 위상에 맞게 하며, 그것이 읽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형성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기억의 혼란만 불러일으킬 따름이다.(31쪽)”


최근에 읽은 움베르토 에코의 <프라하의 묘지>에서 소개된 유대인의 세계지배 음모를 파헤친 <시온의정서>가 20세기 초 러시아황제의 비밀경찰이 만들어낸 위서라는 것이 이미 밝혀졌다고 하는데, 그 파장이 히틀러에게 깊게 각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십대 무렵 이미 유대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자리하기 시작했다는 고백도 적었습니다. 곳곳에서 유대인에 대한 혐오감을 토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성장하면서 유대인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이 강화되어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바이에른연대에 입대하여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지만, 패전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고, 특히 파리강화조약으로 오스트리아가 부담하게 된 막대한 전비가 부당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군에서 선전(宣傳)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되고, 독일노동자당을 결성하는데 앞장을 서게 되는데, 초기부터 연설자로서의 자질을 드러내었던 모양입니다. 즉 타고난 선동가였던 것 같습니다. “기독교의 위대성은 어느 정도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던 고대의 철학적 의견과 타협 및 교섭을 시도한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교위를 전하고 그것을 위해 싸우는 불굴의 열광에 있었던 것이다(208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기독교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의외의 측면이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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