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묘지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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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읽기에 <프라하의 묘지> 하나를 더합니다. 에코는 이 작품에서 ‘거짓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남는가!’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잘못된 편견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비판도 일었다.’라는 평도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시온 장로들의 프로토콜>이 있습니다. 유럽의 반유대인 정서를 자극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이 문서에는 유대인들이 세계지배를 획책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1921년 런던 타임스에 의하여 허위임이 밝혀졌음에도 나치의 유대인 박해의 근거가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사실로 믿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에코는 시모니니라고 하는 가상의 인물을 통하여 반유대인 정서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확산되었는지를 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시모니니를 제외하고는 모두 실존인물이라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시모니니가 가상의 인물이니 그가 실존인물과 주고받은 관계 역시 허구라고 하겠지만, 어디까지가 허구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옮긴이 역시 같은 생각이었던 듯 책의 말미에서 읽는 이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으로 보아 이 책에 등장하는 사건들의 연표를 제시하면서 책읽기에 참조하기를 권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담긴 이야기로 인하여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의구심같은 것이 새롭게 생겨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1830년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에서 태어난 시모네 시모니니는 조부의 슬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데 조부의 영향을 받아 유대인과 예수회 그리고 프리메이슨을 증오하게 됩니다. 그는 남의 글씨체를 모방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정보기관의 주목을 받아 그들의 주문에 따라 활동하게 됩니다. 문서를 위조하여 누군가에게 불이익을 주는 일을 하는 만큼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도 간단하게 생각하는 괴물이 되어갑니다. 이러던 가운데 자신이 살아온 날들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는 사건을 만나게 되고, 시간이 흐른 다음에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기억을 매일 정리하기 시작한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프라하의 묘지>를 읽다보면 매일 글을 쓰다보면 책이 한권 만들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느 행인이 있어 1897년 3월의 그 우중충한 아침나절에....’로 시작되는 첫 문장은 이 긴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 앞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고백은 1897년 3월24일 시작하여 4월 19일까지 매일 적은 기록을 바탕으로, 자신의 기억을 재구성합니다. 그리고 중단되었다가 1898년 11월 10일이 이어졌다가 12월 20일 기록을 마지막으로 합니다. 화자는 시모니니인데, 중간에 달라 피콜라신부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시모니니의 글을 반박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기도 합니다. 달라 피콜라신부는 결국 화자 시모니니의 제2의 인격인 것으로 드러납니다.


<시온장로의 프로토콜>이 프라하의 게토에 있는 공동묘지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지난 동유럽여행에서 게토까지는 가보았지만, 공동묘지는 보지 못해서 실감을 더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 아쉽기만 합니다. 찾아보니 <시온 의정서>라는 제목으로 두 종의 책이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는데, 하나는 시온 의정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된 것으로 시온 의정서의 내용대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는 섬뜩한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시온의정서의 허구를 파헤치는 비판서입니다. <푸코의 진자>에서도 성전기사단이 등장합니다만, <프라하의 묘지>에서도 프리메이슨과 성전기사단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들의 실체의 유무를 떠나 유럽 사람들이 이런 단체가 존재할 수도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음모론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낼 수 있는 좋은 이야기감이 아니겠습니까? 요즈음 우리사회의 분위기도 이를 닮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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