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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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도 그렇지만, 직업적 특성 때문에 죽음에는 아주 익숙한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죽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평범한 사람의 삶과 죽음을 냉정하게 뒤쫓은 이야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입니다. 책의 제목 그대로 보통사람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21세기 초 어느날 뉴저지 턴파이크 가까운 있는 유대인 공동묘지에서 시작합니다. 장례식에는 고인의 첫 번째 부인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 두 번째 부인과 딸, 형과 형수, 그리고 그의 간호사를 비롯한 지인들입니다. 장례의식은 딸 낸시의 주제로 진행이 됩니다. 그녀는 아버지가 좌우명처럼 하던 말을 아버지에게 돌려줍니다. “현실을 다시 만들 수는 없어요.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13쪽)” 그의 형 하위가 동생의 삶을 기억해냅니다. 비범한 듯 평범한... 이들의 장례식도 우리네와 많이 비슷합니다. 아니 우리네 장례식이 닮아가는 것인가? 하관을 하면 직계가족들이 돌아가면서 흙을 뿌리고 고인과 작별을 하는... 재미있는 것은 전통 유대식 장례절차에서는 평토작업까지도 고인의 가족들이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대개 뒷마무리를 하는 전문가들이 맡아 하는 일입니다만.


‘그’는 미국 뉴저지에서 ‘에브리맨’ 이라는 이름의 보석상을 운영하는 유대계 아버지와 온화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결혼식에 예물이 있어야 한다면서 외상으로 해주기도 하는 마음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모험을 싫어한 그는 미술학교에 들어갔다가 때려치우고 광고회사에 취직하게 되는데, 덕분에 주변에 여자들이 꼬이고, 그 또한 여자 꼬시는 일에 적극적입니다. 이런 그의 성품이 세 번에 이르는 결혼을 망가뜨리고 후회하는 결과를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두 번째 부인과 그 사이에서 난 딸 낸시와는 가까이 지내면서 왕래하지만, 첫 부인 사이의 아들과는 데면데면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작별을 할 때도 ‘편히 주무세요, 아버지’라고 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부드러움, 애통함, 사랑, 상실감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어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병원신세를 자주 졌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탈장수술을 받기 위해서 입원한 것이었는데, 옆 침상의 어린이가 죽는 것을 보면서 병원에 대한 공포 같은 것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심혈관이 좁아서 스텐트를 넣거나, 경동맥이 좁아서 역시 스텐트를 넣는 등 병원신세를 지지만 그때마다 큰 문제없이 수술을 마칩니다. 물론 마지막 입원에서는 살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어렸을 적 병원에서 죽음을 느낀 이래로, 젊어서도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 같은 것을 가지고 살았던 모양입니다. 두 번째 부인과 해변 데이트를 할 때도... “유일하게 불안한 순간은 밤에, 해변을 따라 함께 걸을 때 찾아왔다. 힘차게 쿵쿵거리며 밀려들어오는 어두운 바다와 별이 가득한 하늘 때문에 피비는(둘째 부인) 환희에 젖었지만 그는 겁을 먹었다. 바로 몇 미터 밖에서 천둥소리를 내는 바다-그리고 광기에 사로잡힌 뭍 밑의 검디검은 악몽-와 만나면 망각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그들의 아늑하고, 환하고, 가구가 별로 없는 집으로 달아나고 싶었다.(37쪽)” 사실 한 밤중에 썰물이 빠져나간 긴 모래사장을 걸어 바닷가로 내려가다 물가가 한없이 멀게 느껴지고, 갑자기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와 그 속에 휩쓸릴 것만 같은 공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작가는 여자와의 관계에서도 거칠 것이 없는 그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남의 시선을 의식한다거나 남을 배려하는 모습은 전혀 없는 독불장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자녀와 부인, 그리고 형님까지 참석하는 가운데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다는 것은 그의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화목한 부모 밑에서 성장한 그가 불행하게도 자신의 가정은 화목하게 가꾸지 못한 것은 의외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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